(사진=연합뉴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뉴스토마토 박창욱 기자]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선거 유세 중 피격당해 사망한 가운데 한일 양국 관계에 대해서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일본 자민당이 선거 압승을 거두면서 '우경화' 현상은 우려되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성향 상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신호가 보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11일 일본 NHK, 아사히 신문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자민당은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전체 125석 가운데 자민당(63석)과 연립여당인 공명당(13석)이 76석을 얻었다고 보도했다.
일본 참의원은 미국으로 치면 상원의원과 비슷한 개념이다. 임기는 6년이고, 3년마다 전체 의원의 절반을 새로 뽑는다. 총 의석수는 248석이다.
이에 따라 임기가 3년 남은 의원을 포함해 여당이 차지하는 참의원 의석 수는 146석으로, 과반인 125석을 훌쩍 넘겼다. 앞서 자민당은 지난해 10월 31일 치른 중의원, 즉 하원의원 선거에서도 전체 464석 중 절반을 훌쩍 넘은 261석을 확보했다.
이에 따라 기시다 총리는 중간평가 성격인 이번 선거에서 압승하면서 정치적 입지가 강화됐다. 향후 3년간 큰 규모의 선거가 없는 상황인 만큼 기시다 총리가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꾸릴 수 있게 됐다. 또한 '강경 노선'을 밟으며 보수 집단에서 이른바 '상왕' 노릇을 했던 아베 전 총리마저 없어지면서 유연하고 실용적인 노선을 가져가는 기시다 총리가 오히려 자기 정치색을 분명히 할 수 있는 상황이 주어졌다는 분석도 나왔다.
(사진=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선거 승리가 기시다 총리가 잘했다기보다는 아베 전 총리의 사망으로 우익세력이 결집한 효과라며, 오히려 기시다 총리가 목소리를 제대로 내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번 선거 결과로 인해 일본의 '우경화' 현상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북한 핵 위협 등 불안정한 세계 질서와 더불어 아베 전 총리의 사망으로 인한 자국 안보 불안 등이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한국에 대한 적대적인 분위기는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온건한 성향의 기시다 총리가 아무리 한국에 우호적인 행동을 취하려해도 당이 반대한다면 섣불리 나서기는 힘들다는 이야기다.
자민당이 선거에서 승리함에 따라 아베 전 총리의 숙원이었던 자위대 명기, 방위비 강화 등 4대 항목 개헌안 논의에도 물꼬가 트일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총리 역시 NHK에 “자민당이 제안하고 있는 4개 항목의 개헌안은 긴급한 과제"라며 "국민의 이해를 얻기 위해서라도 국회에서 논의를 심화시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 나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다만 개헌에 대한 일본 내 여론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분위기다. 일부 연립여당들도 거리를 두고 있는 형편이라 합의에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 역시 이번 아베 전 총리의 죽음으로 한일 외교 관계 개선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곧 주한일본대사관에 마련된 빈소를 조문할 계획이며 일본에 한덕수 국무총리와 정진석 국회부의장, 중진 의원들로 구성된 조문 사절단을 파견하기로 했다.
외교가 측에 따르면 사절단 파견은 애도를 표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국무총리가 방일하는 만큼 한일 양국 최고위급 관료 사이에서 대화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일본과의 공식적인 만남은 계속 미뤄지게 됐다. 앞서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일본을 찾을 계획이었지만 선거로 연기됐으며, 아베 전 총리 사망으로 이마저도 재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세이케이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82년 아버지의 비서로 정치에 입문했다 2006년 9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한 차례 집권한 뒤, 2012년 12월부터 7년 9개월간 장기 집권하며 일본 역사상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웠다.
건강상 이유로 스가 요시히데 당시 관방장관에게 총리직을 물려주고 퇴임한 후에도 일본 정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일본 보수정치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아베는 지난 8일 오전 11시 32분 나라현 나라시 야마토사이다이지역에서 연설을 하고 있던 도중 전직 해상자위대 장교 출신 40대 남성에게 피격당해 6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