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변소인 기자] 손때 묻은 아티스트의 애장품을 직접 만질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될까. 일룸의 팝업스토어 '레이어드 일룸'에서는 아티스트가 머무는 공간을 그대로 옮긴 곳에서 아티스트의 손길이 닿은 제품을 본래 놓였던 위치 그대로 감상이 가능했다. 사람이 머무는 공간의 분위기까지 고스란히 전달하겠다는 의도가 반영된 결과다.
12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일룸 팝업스토어 '레이어드 일룸' 모습. (사진=변소인 기자)
일룸은 지난 8일 성수동에 팝업스토어 레이어드 일룸을 열었다. 리빙가구 분야에서 취향을 켜켜이 쌓는다는 독특한 콘셉트의 팝업스토어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가구업계에선 주로 침대업체 위주로 팝업스토어가 열린 바 있다.
12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일룸 팝업스토어 '레이어드 일룸' 내부 모습. (사진=변소인 기자)
12일 영업 시작 시간에 찾은 레이어드 일룸에는 평일 오전임에도 이미 방문객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방문객들은 매장 안내원의 설명을 경청한 뒤 스스로 향초를 조합해 다각도로 폰 카메라에 담아내는 데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혼자 방문한 남성, 무리지어 찾은 방문객 모두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일룸 관계자는 MZ세대들의 방문율이 높다고 귀띔했다. 당초 성수동에서 팝업스토어를 연 이유도 MZ세대들에게 일룸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해서였다.
얼핏 보기엔 감성적인 분위기가 더해졌을 뿐 별다른 특징이 없어보인다. 1층에 배우 김태리의 실제 취미생활을 엿볼 수 있는 '키덜트 컬렉션' 존만 해도 독특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하지만 이같은 첫인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레이어드 일룸 곳곳에는 일상에서는 결코 보기 힘든 특별한 아이템들이 숨겨져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 아티스트 컬렉션룸에 들어서면서 반전이 시작됐다. 십센치 권정열의 컬렉션룸에 펼쳐진 작업실은 실제 권정열의 작업실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실제로 권정열이 기획 때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해 자신의 작업실을 옮겨놓은 듯한 분위기 연출에 함께했다고 한다. 곳곳에 장식된 피규어와 유튜브 실버버튼, 기타, 키보드 모두 권정열의 소장품이었다.
12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일룸 팝업스토어 '레이어드 일룸'의 십센치 권정열 컬렉션룸. (사진=변소인 기자)
아티스트로서 작업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권정열이 키보드와 함께했을 희로애락을 생각하며 키보드에 손을 올리니 공간이 주는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왔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아티스트들이 생활하는 공간에 직접 들어와 그들의 일상을 상상해보는 일은 분명 특별한 경험이었다. 남을 엿보는 일종의 피핑 톰(Peeping Tom)이 된 듯한 기분마저 느껴졌다. 레이어드 일룸 오픈 초기에 권정열 컬렉션룸을 보려면 줄을 서야 할 정도로 팬들 다수가 몰려왔다고 한다. 한정으로 나온 십센치 LP판 커버는 이미 품절된 상태였다. 티코스터 역시 물량이 달려 LP판 커버와 함께 추가 물량 생산에 들어갔다.
옆방에는 스트리트 포토그래퍼 임수민의 컬렉션룸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톡톡 튀는 분위기를 즐기는 임 작가의 취향에 맞게 화사한 핑크톤 벽과 채도가 높은 색감의 아동용 가구가 배치됐다. 임 작가가 스스로 자신의 취향에 맞게 고른 가구들이다. 곳곳에는 임 작가의 손때가 묻은 카메라, 필름이 놓여 있었다. 세계를 다니며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작가의 세계관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번 팝업스토어 기획은 일룸 마케팅팀에서 담당했다. 팀장을 포함해 5명의 직원이 참여했는데 이 팀은 MZ(밀레니얼+Z)세대로만 구성됐다. 레이어드 일룸 카페 디저트 메뉴까지 '레이어드'라는 콘셉트에 충실하게 구성하는 등 MZ세대의 감성에 맞게 세심한 곳까지 신경쓴 흔적이 엿보였다.
관람 내내 가구 자체가 강조되진 않았다. 대신 취향에 맞게 가구가 공간과 어우러지는 모습으로, 가구 본연의 역할을 표현해냈다. 일룸 마케팅팀 관계자는 "가구를 전면에 드러내기 보다는 취향이라는 주제를 좀 더 강조하는 형태로 팝업스토어를 기획했다"며 "취향은 어느 연령대에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레이어드 일룸의 타깃은 1020세대다. 1020세대가 당장 가구를 구매할 수는 없지만 본인이 구매하는 시기가 왔을 때 브랜드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유의미하다"며 "1020세대도 자신의 공간에 대한 관심이 많다. 이들에게 일룸 브랜드에 대한 재미와 긍정적인 인식을 갖게 하기 위해 체험 요소들도 많이 넣었다"고 덧붙였다.
젊은 층 공략의 일환으로 일룸은 지난해 5월 브랜드 모델을 배우 김태리로 교체하기도 했다. 일룸은 올해부터는 개별 제품을 넘어 브랜드를 널리 알리고자 브랜드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는 중이다. 일룸 마케팅팀 관계자는 "일단 일룸 자체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면 그 관심이 제품까지 이어질 것으로 본다"며 "공간을 통해 메시지 전달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레이어드 일룸은 오는 31일까지 운영된다.
변소인 기자 bylin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