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정부가 '칩(Chip)4' 예비회의에 참석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이 제안한 '칩4'는 팹리스, 파운드리 등 반도체 각 분야에 강점을 보유한 한국, 미국, 대만, 일본이 참여하는 공급망 협력체다. 정부는 이번 예비회의에서 공식 참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한다.
'칩4'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지만, 반도체 산업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미국의 제안을 당연히 따를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사실상 '칩4' 참여를 기정사실로 하는 분위기도 있다. 차세대 반도체 개발과 산업 경쟁력을 위해 참여는 필수적이란 주장도 나온다.
이와 더불어 우려도 나온다. 세계 최대의 반도체 시장인 중국의 보복이 있을 것이란 우려다. 현지에서 보유하고 있는 반도체 점유율이 있으니 다른 산업으로 규제가 내려질 것이란 걱정도 있다. 대만, 일본과는 달리 이미 5년 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로 각종 수출 규제의 어려움을 겪었던 우리나라로서는 '칩4' 참여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사드와 관련된 갈등이 있었던 당시와 현재 우리나라의 무역 규모, 중국 시장 내 구축한 반도체 경쟁력 등을 고려할 때 그러한 우려는 기우일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아직 출범하지도 않은, 어떠한 성격도 명확하지 않은 현시점의 '칩4'를 두고 중국의 보복을 거론하기에는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처럼 다양한 가능성을 미뤄볼 때 '칩4'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 반도체 산업에는 발전을 위한 기회가 될 수도, 일부 산업에는 억울한 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만큼 이번 예비회의에 참여하는 우리 정부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현재 정부를 향한 갖가지 훈수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지만, 결국 모든 결정과 책임은 정부의 몫이다.
새 정부는 출범 전 대통령선거 때부터 "명실상부한 '반도체 초강대국'을 이룩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는 등 반도체 산업을 활성화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고 강조했다. 어느 정부에서도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을 모르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현 정부의 방안은 공약(空約)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연구·개발과 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를 확대하고, 반도체학과 인력을 확대하겠다는 등의 방안은 이미 대선 당시부터 정책공약집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최근 이러한 정부와 여당의 방안에 대해 반대 또는 비판하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지만, 적어도 반도체 산업과 관련해서는 정부가 공약을 실천하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주요 반도체 국가의 산업 육성과 공급망 재편에 대응한 통상 협력과 동맹을 강화하겠다는 방안도 공약에 포함된 내용 중 하나다. 공약집을 만들 당시 조 바이든 행정부의 제안을 예견하지는 못했겠지만, 적어도 '칩4' 참여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정부가 약속을 지키는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정부 출범 후 100일이 채 되지 않았지만, 대통령 지지율은 최악의 수치를 보인다. 어느 인기 드라마의 시청률과 비교해 보자는 웃기면서도 슬픈 이야기도 떠돌고 있다. 잇따른 실책으로 사실상 무정부 사태란 치욕스러운 공격도 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권을 잡기 위해 국민에게 내놓은 수많은 약속 중 적어도 지킬 수 있는 것은 지키길 바란다. '칩4'에 대응하는 정부의 현명한 판단과 행동을 기대한다.
정해훈 재계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