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준익 기자]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제정으로 한국에서 생산된 전기차는 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된 가운데, 국내 전기차 시장에도 차별적 보조금 지급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테슬라 등 수입 전기차와 중국산 전기 상용차가 국적에 관계 없이 지급하는 국내 보조금 정책에 무임승차하면서 빠른 속도로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24일 업계 및 소비자주권시민회의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부가 올해 상반기 수입 전기 승용차 업체에 지급한 보조금은 전체 전기차 보조금의 20% 수준인 822억원에 달한다. 이 중 절반 이상인 약 447억원이 미국산 전기차 업체에 지급됐다.
현재 국내 전기차 보조금 지급 기준은 승용 모델의 경우 기본 모델 판매가격을 기준으로 5500만원 미만은 보조금 지급 비율이 100%, 5500만원~8500만원은 50%를 적용한다. 8500만원이 넘으면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서울 시내 테슬라 매장 모습.(사진=뉴시스)
전기버스도 성능 및 차량 규모를 고려해 중형 최대 5000만원, 대형 최대 7000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한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 보조금 최대 규모도 중형 5000만원, 대형 7000만원이다. 가격이나 주요 부품의 원산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반면 미국은 IRA 발효로 북미에서 조립하지 않은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중단했다. 여기에 '한 브랜드당 보조금은 누적 20만대까지만 지급한다'는 제한까지 풀리면서 테슬라, 제너럴모터스(GM) 등은 미국 시장에서 한층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 아직 미국에 전기차 생산 공장이 없는
현대차(005380)그룹으로선 가격 경쟁력을 상실했다.
중국 역시 자국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중국으로 수출하는 한국산 전기차는 중국으로부터 보조금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반대로 우리나라 정부는 중국산 전기 승용차에 상반기 151억600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했다.
중국은 국내 보조금 정책에 힘입어 한국으로의 자동차 수출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국 자동차 수입액은 2억75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80% 늘었다. 독일과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수입규모다.
BMW나 볼보·폴스타 등 유럽 브랜드가 중국 내 공장에서 생산한 완성차를 한국에 팔기 위해 수출하는 물량이 늘어나면서다. 최근 중국 브랜드의 전기차를 중심으로 수입물량도 꽤 늘었다. 특히 국내 중국산 전기상용차(버스·화물) 판매는 지난해 상반기 159대에서 올해 상반기 1351대를 기록하며 749% 증가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실상 국민 세금으로 수입 업체들의 전기차 판매를 지원하고 있는 셈이 된다.
이호중 한국자동차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자국산 제품의 특성을 고려한 전기차 보조금 지급 방식을 만들어 보이지 않는 장벽을 세울 수 있다"며 "국내에서도 전기차 보조금의 실익을 높일 수 있는 합리적인 정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미국이나 중국처럼 보조금을 통한 전기차 시장을 보호하기에는 사실상 어렵다고 지적한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한국 시장이 크지 않고 미국이나 중국처럼 강대국도 아니기 때문에 노골적으로 차별적 보조금을 지급하게 큰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며 "보조금을 편향되게 지급해도 '저렇게 줄 수 있네'라고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되는 게 지금 시점"이라고 말했다.
황준익 기자 plusi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