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1650만 달러(5일 환율 기준 한화 2975억원)+이자.
우리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론스타에 물어줘야 하는 배상금이다. 환율 상승 추세 속 국고를 들여 지급해야할 배상금은 소송비용까지 3000억~4000억원대 규모로 추산된다. 결코 적지 않은 돈이다.
국내 기업뿐 아니라 대한민국 국가까지 겨냥한 론스타의 먹성은 대단했다. 2003년 1조3800억원으로 외환은행(지분 51%)을 사들인 론스타는 2013년 하나은행에 외환은행을 3조9157억원에 넘기고 한국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론스타의 ‘먹튀’ 성공은 한국에 ‘국부 유출’이라는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당시 우리 정부는 대주주 증자나 공적자금 대신 손쉬운 길을 택했다. 당장의 외환위기 그늘을 빠져나가고자 공적 기능을 갖춘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팔아넘긴 정부의 결단은 두고두고 아쉬운 선택이다.
외환은행 매각 차익뿐 아니라 10년여 간 배당금까지 4조6000억원이 넘는 이득을 챙긴 론스타는 우리 정부에 6조1000억원(46억8000만달러)에 달하는 금액까지 내놓으라며 투자자-국제분쟁(ISDS)를 제기했다. 우리 정부가 외환은행 매각 승인을 지연해 자신들이 손해를 봤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산업자본(비금융주력자)인 론스타는 처음부터 외환은행을 인수할 자격이 없었다.
게다가 우리 정부와의 ISDS에 자신들이 패소한 2019년 국제상공회의소(ICC) 산하 국제중재 결정문을 증거로 제출했는데 여기에는 중대한 ‘절차적 하자’가 있다.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가 ‘2019년 론스타-하나금융지주간 ICC 결정문’ 관련 론스타 측 주장을 일부 인용하는데 있어 우리 금융당국에는 소명의 기회조차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론스타가 우리 정부에 내놓으라고 청구 배상액은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금액이었다. 이를테면 자신이 사들인 아파트를 매수인 A씨에게 넘겨 큰 차익을 보고도, A씨와의 거래성사 전 더 높은 값을 불렀던 B씨에게 팔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며 그 금액까지 다 내놓으라는 격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한국-론스타’ ISDS는 6조원대 소송이 아닌 사실상 6000억원대(하나은행에 넘긴 외환은행 매각가 인하 액수) 중재 절차였다는 주장이 나온 배경이다.
한국 정부 때문에 줄곧 손해를 봤다는 론스타가 실제로 손해를 본 것은 없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우리 정부가 ‘선방’했다는 자평을 내놓으며 판정 불복 절차를 밟겠다고 했지만, 중재인들이 제 손으로 기존 판정을 뒤집을지 미지수다.
배상 판정이 유지된다면 론스타는 또 한 번 우리 국민 호주머니를 털어 수천억원의 배상금을 가져갈 수 있게 된다.
한국 정부를 겨냥한 해외 투기자본들의 ISDS는 6건에 이른다. 앞으로는 엘리엇과의 1조원 규모 ISDS 판정에 주목된다. 엘리엇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승인 과정에서 당시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이 찬성 압력을 행사해 손해를 봤다며 우리 정부를 상대로 7억7000만달러(한화 약 1조560억원) ISDS를 제기했다.
ISDS는 외국인투자자만이 제기할 수 있는 제도다. 국가는 원고가 될 수 없다. 이번 판정을 계기로 미쓰비시중공업 등이 한국을 겨냥해 ISDS를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까닭이다.
한국 정부가 ISDS에서 패소하면 상대 투기자본에게 억단위, 조단위 배상액을 물어주는 자는 사건의 책임자가 아닌 우리 국민이다. 투기자본들이 ‘ISDS 막차’에 올라타는 가운데 이제는 법무부를 비롯한 우리 정부의 과감한 결정이 필요하다. ISDS 폐지 방안을 적극 검토할 때다.
박효선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