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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규제완화 외치는데 꿈쩍않는 환경부…업체들은 '냉가슴'
일해 "감귤박 골판지 활용 원해…절차 과정 너무 복잡"
입력 : 2022-10-17 오전 11:04:32
[뉴스토마토 이보라 기자] "버려지는 감귤박을 박스로 만드는 것은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일 없고, 모두에게 좋은 일입니다. 인증을 받는 절차나 과정이 까다롭고 너무 복잡해 답답할 따름입니다"
 
지난 14일 제주도 제주시 조천읍에서 만난 김영훈 일해 대표는 감귤박을 순환자원으로 인정해 골판지로 활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중소기업옴부즈만에 건의했지만 결국 절차대로 진행하라는 환경부의 회신을 받았다며 안타까워했다. 감귤박은 감귤 착즙 공정 중에 생기는 껍질과 부산물을 가리킨다. 감귤 가운데 60%는 착즙액이 되고, 나머지 40%가 감귤박으로 처리된다. 그는 20여년째 제주도의 대표 농산물인 감귤을 이용해 주스나 초콜릿 등을 만드는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탐라원'이라는 자체 브랜드를 론칭했으며 대기업 등에 주스 등을 OEM 납품하고 있다. 제주도에서 감귤을 이용해 가공식품을 만드는 기업 가운데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최대 규모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일해는 지난해 매출(6월 결산)은 130억, 올해는 11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다만 내년 매출은 100억원 가량으로 줄어들 것 으로 전망된다. 감귤 주스의 소비가 줄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병문안에 애용되던 선물 소비까지 감소한 타격도 컸다. 김 대표의 공장에서 8000톤의 감귤박을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이 약 4억~5억원 가량이다. 감귤박을 사료에 섞는 농가에서도 굳이 돈을 내고 이를 가져가지 않아, 그가 직접 돈(운반비)를 들여 감귤박을 처리하고 있다. 일해의 감귤농축액 관련 매출이 연간 60억원인데 이 가운데 10% 가량을 감귤박 처리에 쏟아붓는 것이다. 감귤박은 현재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그밖의 식물성잔재물'로 분류돼 현재 비료와 사료로 활용되거나 폐기물로 버려지고 있다. 김 대표는 환경부가 감귤박을 순환자원으로 인정해주길 바라고 있다. 감귤박이 순환자원으로 인정된다면 사료나 비료뿐 아니라 종이 및 친환경 포장재 제품의 원료로 활용 가능해진다. 감귤가공업체와 제지업체가 '윈윈'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이같은 내용을 중소기업옴부즈만에 건의했다.
 
감귤주스 착즙공정에서 생겨나는 감귤박. (사진=중소기업옴부즈만)
 
지난 13일 제주도에서 열린 'S.O.S. Talk'에서 전달된 환경부의 답변은 결국 절차대로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우선 유기성 폐기물의 사용 용도 확대를 위해 순환 자원 인정기준을 기존 9개에서 2개로 완화하는 자원순환기본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 중이라며 '일부 수용'이라는 답변을 보내왔지만 이를 뜯어보면 결국 '절차대로 진행하라'는 내용과 다를 바 없다. 환경부는 "감귤박을 순환자원으로 인정하는 것은 감귤박 외에 '그밖의 식물성잔재물'까지 재활용 허용을 확대하는 의미한다"면서 "감귤박을 비롯한 식물성잔재물이 친환경 포장재 원료로 사용되기 위한 기준이 없어, 위해성과 품질 등의 검증이 필요하다"고 전해왔다. 그러면서 환경부는 재활용되기 이전의 자원에 대한 유해성 등을 평가하는 '재활용 환경성 평가'를 소개했다. 최소 8개월에서 1년 이상이 걸릴지 모르는 재활용 환경성 평가를 무사히 넘긴다해도, 환경부 장관이 '친환경 포장 원료'로의 용도를 인정하지 않으면 무용지물된다.
 
그는 "결국 (감귤박을 친환경 포장재 제품 원료로 활용하는 용도로) 인정해주지 않겠다는 얘기랑 동일했다"며 낙심했다. 현재 재활용 환경성 평가를 위한 '컨설팅'을 진행 중이고, 이를 신청한다해도, 결과가 언제 나올지 모르는 일이다. 11월에서 2월까지 감귤이 생산되고 감귤박이 나오는 상황에서, 인증 절차가 최소 1년에서 최장 2년까지도 미뤄질 수 있다. 김 대표는 "이 기간 내에 저희가 정확히 인증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도 없는 상태에서 그만한 시간과 노력을 2년 넘게 쏟아부어야 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속이 타는 것은 김 대표뿐만이 아니다. 감귤박을 이용해 골판지용 원지 특허를 취득하고, 양산체제를 갖춘 제주도의 제지기업 월자제지도 마찬가지다. 이창용 월자제지 대표는 "감귤박을 이용한 친환경 종이로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양산체제를 갖췄고, 거래처도 확보해뒀다"면서 "화학물질을 퇴출하고 감귤박을 포함한 친환경 종이로 시장을 대체해, 선진화된 포장문화를 만들어 가고싶다"고 아쉬워했다. ESG경영이 강화되면서 대기업 등에서 친환경 종이를 납품해주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감귤을 먹고 남은 재료가 감귤박인데, 이를 종이로 만드는 일을 몇 달에서 일년이나 걸릴 일이냐"면서 "절차와 과정으로 인해 사회적 비용이 오히려 증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왼쪽부터) 박스 폐지 원료로 만든 제지, 감귤박과 박스 폐지 원료를 넣어 만든 제지, 감귤박과 펄프를 섞어 만든 제지. (사진=중소기업옴부즈만 기자단)
  
이보라 기자 bora11@etomato.com
 
이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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