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크게 작게 작게 메일
페이스북 트윗터
(시론)청바지를 입는 교수들
입력 : 2022-11-01 오전 6:00:00
오는 11월4일에 마곡동 서울창업허브 엠플러스에서 벤처창업학회 학술대회가 열린다. 불확실성 시대의 스타트업 혁신방안이라는 주제로 학계와 업계 전문가들이 모여 격변하는 경제상황에서 스타트업 혁신의 방향을 제시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이색적인 것 중 하나는 드레스 코드가 청바지라는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오늘날 청바지를 만든 사람은 리바이스(Levi’s)의 창업자 리바이 스트라우스이다. 샌프란시스코의 무역상 스트라우스는 군내 납품을 위해 빚까지 지며 천막 천을 주문했다. 하지만, 납품은 무산되었고, 창고에 쌓인 청색 데님 천을 처리할 방법을 궁리했다. 그 때, 때마침 골드러시(Gold rush)로 캘리포니아로 몰려든 광부들이 질기고 튼튼한 바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 그는 천막천으로 바지를 만들었다. 그의 생각대로 청바지는 큰 인기를 끌게 됐고, 리바이스는 세계적 기업이 되었다. 리바이스에서 일하다 나중에 대표가 된 월터 하스는 UC 버클리 대학에 큰돈을 기부해 UC 버클리 경영대학원 이름을 하스 경영대학원으로 바꾸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여성들이 사회에 많이 진출하면서 청바지는 직업과 성별을 초월한 패션이 됐다. 전쟁 이전에는 편리한 작업복이었다면 전후에는 자유와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 이미지가 두드러졌다. 록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 반항의 아이콘 제임스 딘도 청바지를 즐겨 입었다. 1960년대 히피 문화에서 청바지는 뺄 수 없는 아이템이었다. 반전 시위와 우드스탁 록 페스티벌에도 청바지가 함께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미군 구제 청바지가 남대문시장으로 처음 들어왔다. 통기타 가수들과 멋쟁이 젊은이들이 미제 청바지를 입었다. 70 ~ 80년대 들어 자유를 갈망하던 대학생들은 저항정신을 가지고 포크송을 부르고 청바지를 입었다. 교복 자율화가 이루어지면서 청바지는 대학생뿐만 아니라 중고생들의 학생 패션이 되었다.
 
한편, 실리콘 밸리에서는 은행원 또는 변호사 말고는 양복을 입는 사람들을 찾기 힘들다. 교수들도 대부분 양복을 입지 않고, IT 기술자들은 캐주얼하게 옷을 입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변화를 이끈 대표적인 사람은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다. 그는 언제나 검은 터틀넥과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었다. 애플이 크게 성공하면서 잡스의 옷차림은 혁신가의 유니폼이 되었다.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도 항상 후드재킷에 청바지 차림이다.
 
실리콘밸리의 IT 기술자들이 원래부터 양복을 입지 않은 것은 아니다. IT 기술자들이 캐주얼한 옷차림을 하게 된 것은 PC의 개발 및 게임산업의 발달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IBM을 비롯한 컴퓨터 기술회사의 직원들은 짙은 색깔의 양복을 입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PC가 개발되고 많이 판매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비싼 돈을 주고 산 PC는 일반 사용자들이 쓰기에는 너무 어려운 물건이었다. 사용자들은 PC에 명령어도 일일이 입력해야 했고 프로그래밍도 할 줄 알아야 했다. PC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무용지물이 되어갈 무렵, PC를 게임기로 쓸 수 있게 하는 게임 소프트웨어가 인기를 끌게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많이 필요했지만, 능력 있는 개발자를 구하기는 어려웠다. 이에 대형 IT 회사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파트타임으로 게임 개발을 했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가 낮에는 미스터 앤더슨으로 정장을 차려입고 저녁엔 캐주얼한 옷으로 해킹 알바를 하던 것처럼 말이다.
 
시간이 지나고 게임회사들이 많아지면서, 개발자들을 우대하는 분위기를 가진 게임회사들은 이전의 회사들과는 아주 다른 기업문화를 갖게 되었다. 비디오 게임 분야를 개척한 게임회사인 아타리에서는 개발자, 그래픽 디자이너들 모두 캐주얼한 옷을 입었고, 당시 이 회사의 임시직이었던 잡스 역시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실리콘 밸리의 옷차림은 우리나라 IT붐과 함께 테헤란 밸리에 모인 벤처회사들에 전달되었다. 이제는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도 캐주얼한 옷차림이 대세인 듯하다.
 
얼마 전 스타트업 행사가 있어 참석한 자리에서 기념 촬영을 했는데, 여전히 주요 인사들은 모두 양복을 입고 있었다. 이번 벤처창업학회 학술대회에서 처음으로 청바지 드레스 코드를 제안해 보았는데 얼마나 많은 교수님들이 청바지를 입고 오실지 궁금하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벤처창업학회 회장
 
이종용 기자
SNS 계정 : 메일 페이스북


- 경제전문 멀티미디어 뉴스통신 뉴스토마토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