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은 기자] 망이용료를 놓고 글로벌 빅테크와 인터넷사업자(ISP) 간 논쟁이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망 유지와 관리 비용을 분담할 수 있는 기금 조성이 대책처럼 떠오르고 있다. 미국과 유럽(EU) 내에서 나오는 빅테크의 네트워크 구축 기여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처럼 국내에서도 '공적 기금'을 눈여겨보는 것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망 인프라 기금 논의 이전에 정산되지 않은 망이용료에 대한 해결이 우선순위라는 의견을 내고 있다.
2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구글과 넷플릭스 등 일부 글로벌 빅테크들의 국내 망무임승차와 관련 빅테크와 ISP간 이견이 지속되고, 국회에 계류 중인 콘텐츠사업자(CP)에 망이용료 부과 내용을 담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 대해 부처와 정당 내에서도 의견이 갈리면서 통신 인프라 기금 조성이 거론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9월20일 열린 망이용료 법안 공청회에서 "SBS는 공영방송이 아닌 데도 방발금(방송통신발전기금)을 내는데, CP든, ISP든 공적 기금으로 통신망 비용을 처리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며 "세금은 공적인 일에 쓰이는데, 이 부분도 그런 식의 접근을 해볼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이후 지난달 21일 열린 방송통신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서 무소속 박완주 의원도 "정부가 바람직한 인터넷 환경 조성을 위한 기금 조성 등을 보다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며 "관련 논의가 사업자 간 공전으로 끝나지 않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진전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글로벌 대표 빅테크 기업 로고. (사진=뉴시스)
통신 인프라 기금은 국내에서 발생하는 인터넷 트래픽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빅테크들이 비용을 출자해 망 유지·관리 비용을 감당하도록 하는 개념이다. 방송사와 통신사가 주로 부담하는 방송통신발전기금과 정보통신진흥기금처럼, 구글과 넷플릭스도 일정 비율로 분담금을 내야한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과 EU에서는 이러한 기금에 대한 논의가 구체화되고 있다. 비단 빅테크 대 ISP의 망이용료 갈등이 한국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며, 빅테크로 대변되는 CP도 망이용료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인터넷에 대한 공정 기여법이 상원 상무위원회를 통과해 입법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EU의 경우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 3개국이 망 투자비용을 부과하는 연결 인프라 법안을 발의하고 유럽집행위원회(EC)에 입법을 촉구하고 있으며, EC는 내년 글로벌 빅테크의 망 투자 기여 방안을 찾기 위한 협의에 나설 계획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국내에서의 통신 인프라 기금 논의는 해외시장과 달리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미국과 EU의 경우 글로벌 빅테크들이 이미 ISP나 콘텐츠전송네트워크(CDN) 업체에 어떤 형태로든 망 이용에 대한 대가를 내고 있기 때문에 기금 조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될 수 있지만, 국내에선 기금 조성 논의 이전에 망 무임승차 이슈가 선결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 간 진행되고 있는 소송이나 망 무임승차 관련 법안이 발의된 근본 원인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기가인터넷이나 5G 같은 통신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덜 구축된 미국과 EU에서는 정책의 방향을 인프라 고도화를 위한 글로벌 빅테크들의 기여에 법안과 정책적 초점이 맞춰진 것과 국내와 차이점"이라며 "통신 인프라 투자를 위한 기금 조성과 구글, 넷플릭스의 망 무임승차 이슈는 별개의 사안인 만큼 따로 다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