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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제주에서 바티칸까지-23)아세안은 경제 요충지다
입력 : 2022-11-16 오후 6:16:39
우리 민족은 분명 남방계와 북방계가 혼합된 민족인데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단일민족이라고 자칭하고 북방의 원류만 주장하였다. 우리 역사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남방계는 가야의 허황옥이 유일하다. 지금 휴전선이 막혀 북으로 뻗어 나가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고집스럽게 북으로 진출하려 했지 3면이 바다인데도 남으로 진출하려고 하지 않았다. 역사 시간에도 먼 서구의 역사는 열심히 공부했지만 가까운 동남아시아는 애써 외면해왔다. 그래서 우리는 동남아시아에 대하여 잘 모른다.
 
마침 지금 캄보디아에서 아세안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다.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버마,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 필리핀 등 아세안(ASEAN)회원국 10개국을 포괄하는 동남아지역 경제공동체를 지향하며 활발한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동남아시아만큼 같은 지역이면서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다양한 지역은 없을 것 같다. 우선 종교가 유교, 도교, 대승불교, 소승불교, 이슬람, 힌두교, 기독교 등 주요 종교가 골고루 존재한다.
 
우선 아세안을 만만한 시장, 싸구려 관광지로 여기는 얄팍한 인식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아세안은 인구 6억5000만 명(세계 3위), 35세 이하 65%, GDP 2조6000억 달러(6위), 연 5~6%의 빠른 경제성장 등만 눈여겨 볼 것이 아니다. 아세안은 한·중·일이 각축하는 경제 요충지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남방정책은 ‘어떻게(how)’에 대한 대답 없이 사라져갈 위기에 처해 있다. 중국과 일본은 물량공세가 밀고 들어오는데 우리만 전략이 부재하다.
 
동남아 지역은 무역풍대에 속한다. 년 중 반은 북동풍이, 반은 남서풍이 주기적으로 바뀌는 순한 바람을 이용해 무역선들이 동북아시아와 서역을 오가며 교역을 할 수 있었다. 해상실크로드의 중요 길목이다. 동남아시아는 동서양을 잇는 무역의 중심지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내 발걸음은 한달 보름을 뛰어서 베트남 남부의 나짱을 지나고 있다. 나짱을 방문한다면 베트남엔 아름다운 해변이 없을 거라는 선입관은 파도에 휩쓸려 가듯 사라지고 말 것이다. 나짱 해변은 프랑스의 식민지 시기부터 휴양지로 개발되기 시작해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의 휴양지로 자리 잡으며 다낭보다 일찍 유명세를 떨치게 되었으며 지금은 외국 자본의 대대적인 투자로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서쪽에는 드높은 산, 동쪽은 긴 백사장으로 이어졌고 바다는 섬으로 둘러싸였다. 나짱은 도시의 구조가 복잡하지 않다. 백사장을 따라 콘도형 아파트먼트와 호텔이 늘어서 있어 한 달 살기를 즐기는 여행자들에게는 선호도가 가장 높은 도시 중 하나다. 
    
나짱의 상징이라 불리는 포나가르 참탑이라 불리는 유적이다. 미군의 무자비한 폭격으로 대부분이 파괴된 미선 유적과 달리 현재도 힌두교 사원으로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었다. 내부에는 아들을 점지해 준다는 시바의 상징물인 '링가'가 있어 많은 참배객들이 찾는다고 한다. 일생에 한번 볼 기회가 있을까 말까한 유적지를 지척에 두고도 스스로 기회를  날려버릴 만큼 피곤함은 내게는 전쟁에 버금가는 현실적인 고통이다. 
 
참파는 푸난과 마찬가지로 인도의 영향을 받았다. 참파의 건국 주도세력은 2,500년 전에 보르네오 혹은 칼리만탄 섬 등 동남아시아에서 무역풍을 타고 인도차이나 중부해안으로 배를 타고 흘러들어 오고 있었다. 이들은 피부가 검고 머리가 곱슬머리에 눈이 깊고 코는 높다. 참파가 시작된 베트남 중남부는 서양문화와 동남아, 인도, 중국 등 무역 상인들이 거래하는 곳이기 때문에 해양문화가 발달되어 있었다. 참파의 수도는 인드라 푸라이였으며 지금의 꽝남지역으로 지금까지 미썬 유적지가 남아있다. 
 
참파왕국을 지탱하는 지배이념은 국왕을 힌두교의 3대 신과 동일시하는 신왕사상이다. 신왕사상은 왕이 곧 지사에 내려온 신의 화신이며, 그 상징인 링가를 숭배하는 사상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참파 왕국은 하나의 강력하고 중앙집권적인 정치체제는 아니었다. 여러 호족들이 연합하여 왕국을 구성했고 그중에서도 중부의 미선 지방과 남부의 판두랑가에 뿌리를 둔 두 가문이 결합하여 나라를 운영하였다. 참파의 신화에 따르면 북쪽은 빈랑나무(아레카) 가문이 다스렸고, 남쪽은 야자나무(코코넛) 가문이 다스렸고 왕국의 완성은 두 가문의 결합에 의해 유지되었다.
 
베트남의 남반부에서는 인도화된 두 개의 국가가 흥기하였다. 하나는 푸난 왕국으로 이는 메콩 강의 삼각주와 오늘날 캄푸치아의 대부분을 장악했다. 다른 하나는 참파 왕국이다. 인도차이나의 남동지역을 지배했다. 푸난의 상류사회는 인도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어서 산스크리스어를 사용하고 시바와 비쉬누를 경배하였다.
 
참파왕국의 주요 경제활동은 농업이 아니라 무역이었다. 중간 무역 뿐 아니라 주 거래상품은 침향, 전향 등 향과 코뿔소 뿔, 용뇌, 바다거북, 비단 등으로 송나라 와 일본 등에서 수요가 많았다고 한다. 각 호족 세력은 항구를 중심으로 정치, 종교, 경제의 중심 도시가 있었다. 아마라바티는 호이안항구, 비자야는 뀌년, 남부 판두랑가는 판랑 등이 국제 교역을 담당했던 주요 항구이다.
 
이 항구들은 중국, 일본, 크메르, 인도, 말레이,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중해 연안의 서구인들까지 드나들었다. 자연히 상인들과 현지인 사이에 국제결혼도 빈번하였다. 당시 참파왕국은 중국-인도-지중해를 연결하는 중요한 중간 기착지로 역할을 담당하였다. 
 
참파왕조는 2세기에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여 1832년 완전히 멸망할 때까지 1600여 년을 유지한 장수 왕국이다. 참파의 역사가 이렇게 길게 유지될 수 있었던 요인은 경제력이다. 베트남 중부 지역은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쯔엉썬 산맥 때문에 평지가 협소하다. 하지만 해운관 남쪽의 꽝남지역은 넓고 비옥하다. 거기에 무역풍을 타고 오고가는 배가 정박할 수 있는 천혜의 항구가 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고원지대에서 생산되는 보석, 침향, 꼬뿔소 뿔, 상아, 등 각종 임산물이 풍부하다. 해안가에서 솟아나는 물은 왕국을 지탱하는 또 다른 힘이었다. 좋은 물은 긴 항해를 떠나는 무역선에 매력적인 요소이었다. 도자기와 직물 또한 품질이 좋았다.
 
강명구 평화마라토너가 평화달리기 45일차인 지난 14일 베트남의 한 도로에서 만난 주민과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강명구 평화마라토너)
 
강명구 평화마라토너
 
최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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