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네가 고데기 열 체크 좀 해줄래?"
고등학생 시절 고데기를 이용해 학교폭력을 저질렀던 가해자가 자신의 딸 담임이 피해자임을 알게된 후 초조하게 딸을 기다립니다. 딸이 방과후 집에 도착했을 때 가해자가 처음 한 행동은 '딸의 몸'을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본인은 친구에게 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행사했지만 자신의 딸이 같은 일을 당하게 될까봐 두려워진 겁니다. 가해자는 아마도 처음으로 자신이 무슨짓을 했는지 인지하게 된 것 같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이야기입니다. 송혜교가 주연을 맡아 연기하고 있는 피해자 문동은의 복수극이죠. 첫회에 등장한 폭력장면은 보기 힘들정도로 끔찍했습니다. 특히 고데기 온도 체크를 하겠다며 온몸에 화상을 입히는 장면 묘사는 매우 잔혹했습니다.
현실에서도 '고데기'...17년전 청주 중학교 사건과 유사
문제는 이같은 사건이 드라마 속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점이죠. 17년 전 유사한 사건이 국내에서 실제로 일어났다고 하는데요. 더 글로리에 나온 고데기 학폭 장면이 과거 청주 한 중학교에서 벌어진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겁니다.
이 충격적인 학폭은 2006년 청주 한 중학교에서 실제 발생한 사건과 유사합니다. 당시 청주 소재에 한 여중생 3학년이었던 피해자는 같은학교 동급생들에게 폭력을 당합니다. 동급생들은 고데기·옷핀·책 등으로 고문을 해 피해자는 팔·다리·허벅지·가슴에 상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피해자는 나중에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꼬리뼈가 튀어나오고 화상 정도가 심해 5~6주간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고 해요.
당시 피해자는 "수일 간격으로 고데기 온도 체크가 진행됐기 때문에 상처가 아물 틈이 없었다"며 "심지어 아물던 딱지를 손톱으로 떼어버리는 의식 같은 형벌도 있었다"고 합니다.
피해자와 가해자, 학폭의 악순환 고리 제대로 끊어야
이 이야기를 접하고 33살이 됐을 청주 피해자와 가해자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혹시 드라마속 송혜교처럼 복수를 준비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그 고통에서 벗어나서 잘 살고 있을까요. 가해자는 자신의 과거를 잊고 드라마 가해자처럼 현모양처인척 딸을 키우고 있지는 않을까요.
다시 드라마로 들어가봅니다. '더글로리' 가해자가 복수를 위해 찾아온 송혜교를 만난 후 딸이 같은 복수를 당할까봐 두려워하면서도 자신의 이미지가 실추될까봐 전전긍긍해 합니다. 기상캐스터로 일하는 공인인 자신에게 쏟아질 비난이 두려워진 거죠. 실제 이 드라마 때문에 태국에서는 유명스타 '옴파왓'이 과거에 학폭 가해자임이 드러나 사과를 하게 됩니다. 국내에서도 '학폭 연예인'들의 근황이 재조명되고 있다고 합니다.
중고등학생들은 '학폭'이 나쁜 짓임을 잘 압니다. 절대 사라지지 않는, 더 악랄한 방향으로 가하는 학폭이 끊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본인뿐 아니라 자녀세대까지 이어질 지 모르는 '학폭'의 세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가해자의 잘못을 솜방망이 처벌이 아닌 확실한 죄값을 받게 하는 방법이 가장 현명하지 않을까요. 학폭의 학폭이라는 악순환 이제는 끊어야 할 때입니다.
김하늬 사회부 법조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