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이 8일 발표한 건축디자인 혁신의 성패는 규제 유연성과 건축비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날 오 시장은 “외국에서 가능한 것이 서울에 가능하지 않을 리는 없는데 문제는 어떤 장애요인, 어떤 방해물이 있었느냐”라며 “비용과 규제의 문제만 해결하면 외국에 지어진 건축물보다 더 멋진 건축물을 짓는 게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해외 유명 건축물, 규제에 막혀 국내 구현 불가능
서울의 특색없고 획일적인 건축물들을 새롭게 하기 위해 창의적 설계를 도입하려면 기존의 규제들을 완화하고 디자인을 우선해 적용하는 유연성이 무엇보다 핵심입니다.
오 시장은 이날 발표에 앞서 지난 10월 유럽 출장을 다녀오며 유럽의 주요 도시들의 건축물들을 둘러보고 왔습니다. 오 시장은 스페인 세비야의 메트로폴 파라솔,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마켓 홀·플로팅 오피스, 암스테르담의 슬루이슈이 빌딩·더 밸리 같은 곳들을 건축디자인 혁신 사례로 예를 들었습니다.
그럼 해외 유명 건물을 지을 정도로 건축기술이 뛰어난 우리는 왜 정작 서울엔 이렇게 못 지을까요. 무엇보다 딱딱하고 경직된 규제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힙니다.
스페인 세비야의 메트로폴 파라솔. (사진=서울시)
스페인 세비야의 메트로폴 파라솔, 세계 최대의 목조건축물입니다. 지하에는 역사의 유적이 있고 지상에는 전통시장과 광장이 균형을 이루며, 옥상에서는 세비야 시내를 조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국내에 적용하려면 국토계획법상 용도지역에 따라서 건축 가능한 용도가 제한돼 있기 때문에 이러한 구조물이나 건축물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아예 시도나 상상 자체가 불가능한 현실이죠.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마켓 홀. (사진=서울시)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마켓홀은 전통시장에 혁신적인 건축디자인을 더해 지역의 랜드마크로 변신한 사례로 꼽힙니다. 전통시장, 슈퍼마켓, 공동주택이 함께 어우러진 복합용도 건물이지만, 국내에선 용도 제한과 건폐율 제한때문에 이렇게 다양한 기능이 융화된 건축물을 짓는 게 사실상 어렵습니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FOR. (사진=서울시)
떠있는 사무실이라는 의미를 가진 로테르담의 FOR, 플로팅 오피스입니다. 물 위에 수상 건축물을 사무실로 활용하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 사례이지만, 한강의 경우에는 용도가 제한이 돼 있어서 이동식 매점만 운영을 할 수 있습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슬루이슈이 빌딩. (사진=서울시)
암스테르담의 슬라우스 하우스는 공동주택으로 하천과 대지의 경계를 허물고 수변과 공유수면을 대지로 설정한 혁신적인 사례입니다. 국내에선 하천의 범람을 고려하는 하천법의 규제로 이러한 고정식 구조물은 허용이 안 되는 상황입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더 밸리. (사진=서울시)
더 밸리는 공동주택으로 개별 외부 테라스가 입체적으로 설치돼 외부인에 대한 개방까지 고려해서 공간계획이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국내의 경우 건축법상 건폐율 및 동 간 간격 제한 규정이 있어서 이러한 혁신적인 디자인은 실현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011년 4월11일 오전 DDP 공사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건축비 2~3배까지 증가, 공공이 선도, 민간엔 인센티브
또 하나의 고비는 건축비 증가입니다.
두 번째는 공사비 증가입니다. 공공 건축물에는 표준 건축비라는 개념이 적용됩니다. 이러한 건축디자인 혁신은 당연히 공사비 증가가 뒤따르게 됩니다. 2배, 3배까지도 건축비가 늘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오 시장은 잘 지은 건축물은 늘어난 건축비 이상의 부가가치를 만들기 때문에 공공부문부터 선도할 필요가 충분하다고 얘기합니다. 공사비 위주의 건설 문화를 바꿔 ‘디자인이 먼저고 건축비는 나중’이라는 풍조를 확산시키겠다는 방향입니다. 민간 부문은 대신 충분한 인센티브로 유도한다는 전략입니다.
오 시장이 예론 든 국내 사례가 DDP입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비정형 건축물인 DDP는 특수공법이 필요해 4000억원이 넘는 건축비가 투입됐습니다. 상당한 건축비가 투입됐고 비판도 있었지만, 현재 서울의 랜드마크 중 한 곳으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 장소로 자리잡았습니다.
오 시장이 10년여만에 디자인 서울을 꺼냈습니다. 당시에도 디자인 서울을 꺼내들었으나 채 끝을 보지 못하고 미완성으로 남았습니다. 다시 디자인을 통해 도시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오 시장, 이번 포부는 건축비와 규제라는 과제를 뚫고 이뤄낼 수 있을 지 주목됩니다.
DDP 전경. (사진=뉴시스)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