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홍연 기자] 최근 증권사들이 잇달아 신용거래융자 이자율 인하에 나서고 있습니다. 은행들이 고금리 이자 장사로 실적 잔치를 벌인다는 비판 여론이 금융투자업계로까지 번져가자 부랴부랴 대응책을 내놓은 것인데요. 은행들처럼 금리가 오르자 신용융자 금리는 빠르게 올리고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등 수신금리에는 더디게 대응한다는 지적이 있었죠. 시중금리에 따른 적정한 신용거래융자 이자율 적용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진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됩니다.
한투·삼성·KB 신용융자 이자율 인하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에 이어 KB증권과 SK증권이 이날 신용융자 이자율을 낮추기로 했습니다. 영업점과 비대면 고객을 대상으로 3월1일부터 신용융자 이자율과 주식담보 대출 이자율의 최고 금리를 현행 연 9.8%에서 연 9.5%로 연 0.3%포인트 인하 하는데요. 주식담보 대출은 내달 1일 신규 대출분부터, 신용융자는 체결일 기준 내달 2일(결제일 3월 6일) 매수분부터 적용됩니다. SK증권도 이날부터 91일 이상 구간에 대해서 이자율을 현 9.8%에서 9.6%로 낮췄습니다.
표=뉴스토마토
앞서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도 신용융자 이자율을 최고 0.4%포인트 인하했습니다. 삼성증권은 지난 17일 비대면 계좌 개설 고객을 중심으로 신용융자 이자율을 구간별로 0.1~0.4% 포인트씩 낮춘다고 밝혔습니다. 한국투자증권 역시 은행이나 비대면 계좌 개설 고객을 대상으로 신용융자 최고구간(30일 초과) 이자율은 9.9%에서 0.5%로 0.4포인트 낮췄습니다.
현재 내부적으로 신용융자 이자율 인하 여부를 검토 중인 곳은 미래에셋증권, 신한투자증권, NH투자증권, 한화투자증권, 대신증권, 교보증권, 메리츠증권, IBK투자증권 등입니다. 미래에셋증권은 이달 중 회의를 한 뒤 인하 폭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나머지 증권사들의 경우 구체적인 인하 시기는 아직 결정된 바가 없습니다. 키움증권, 이베스트투자증권은 인하를 검토하고 있지 않으며 하나증권은 지난해 인상 폭이 비교적 낮아서 올해 1분기까지는 인하 계획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연초 이후 양도성예금증서(CD)와 기업어음(CP) 금리 등 시장금리의 안정세에도 증권사들은 이자율에 이를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여론이 악화할 기미를 보이자 이자율을 '찔끔' 낮춘 것이지요. 증시 상황 악화에도 불구하고 29개 증권사 지난해 3분기 신용거래융자 이자수익에서 누적 기준 1조2467억원을 벌어들였어요. 개인투자자들의 금융 부담이 가중되는 동안 높은 이율을 적용해 고스란히 이익을 거둔 것입니다.
증권사들이 연이어 대출 이자를 내리면서 '빚투(빚내서 투자)'도 급증할 것으로 전망돼요. 연초 이후 국내 증시가 호조를 보이면서 개인고객들의 신용융자 잔고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최근 주식시장 전체 신용융자 잔고가 1월 말 16조944억원에서 지난 16일 기준 17조1423억원으로 약 2주 만에 1조 479억원이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개인투자자들의 이자 부담이 경감되면 앞으로 융자 잔고 증가 속도는 더 빨라지겠죠.
금융당국은 최근 증권사들을 대상으로 신용거래융자 이자율 현황을 점검했습니다. 아울러 내달까지 이자율 및 고객 등급 산정방식을 상세하게 안내하고 1분기 중에 공시 화면과 서식 개정을 추진한다는 방침입니다. 이자뿐 아니라 성과급 체계도 점검해 내부 보상 시스템 적정성 여부를 따져볼 예정입니다.
신용거래융자는 증권사가 개인투자자에게 주식 매수 자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일종의 대출입니다. 신용거래융자 이자율은 단기 자금시장 지표인 CD나 CP 금리를 토대로 산정하고 신용프리미엄, 업무 원가, 목표이익률, 자본비용 등의 가산금리를 더해 결정합니다. 증권사들은 회사별 고유 기준과 경영 환경에 따라 이자율을 산출한 것이며, 기준금리 적용하는 데 시차가 있다는 설명입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최근 투자심리가 개선되는 가운데 계속 (이자율이) 높다고 하니까 분위기를 맞춰 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고객 예탁금'으로 돈 잔치…이자는 찔끔
신용융자 이자율뿐 아니라 증권사가 고객 예탁금으로 벌어들인 수입도 엄청나요. 국회 정무위원회 양정숙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30개 증권사가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 동안 고객 예탁금으로 벌어들인 수입은 총 2조 4670억원에 달했고, 같은 기간 고객에게 지급한 이자는 5965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어요.
예탁금 금액이 50만원 미만일 경우 평균 0.1%~0.2% 수준이고, 50~100만원 미만은 평균 0.2%~0.3%, 100만원 이상일 때는 평균 0.2%~0.4%로 평균 0.2%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증권사들이 챙긴 수익률이 최저 0.8%에서 최고 1.94%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고객에게 수익금을 되돌려 주는 비율은 약 4분의 1 수준인 거죠. 증권사들이 고객이 맡긴 예탁금과 고금리 이자로 상당한 수입을 올리면서도 고객에겐 인색하다는 논란은 당분간 피해 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여의도 증권가. (사진=뉴시스)
홍연 기자 hongyeon1224@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