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홍연 기자] 금융당국이 증권사 법인 지급결제 전면 허용을 검토하고 나서자 증권사들의 손익 계산이 빨라졌습니다. 법인 고객이 많고 자본 여력을 갖춘 대형 증권사는 직접적인 수혜자로 크게 반색하는 반면 중소형사의 경우 큰 실익이 없다고 판단해 미온적인 입장입니다.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 당국은 증권사 법인 지급 결제 업무 허용에 대해 검토하고 있습니다. 현재 증권사는 은행이 수행하고 있는 법인 고객 대상 지급 결제 업무를 할 수 없는데요. 금융투자업계는 법인지급결제가 되면 은행 연계망을 거치지 않아 개인과 법인 고객의 편익이 커질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기업은 조달, 투자, 결제 등을 증권사에서 원스톱으로 처리할 수 있는 데다 임직원 급여 지급 등의 계좌로 활용되면 IB(투자은행) 사업 기회도 확장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상대적으로 도입에 따른 수혜가 크지 않다고 예상되는 중소형사의 분위기는 대형사와는 사뭇 다릅니다. 시스템 구축이나 업무에 따른 제반 비용 부담을 고려했을 때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판단입니다. 지급결제 업무를 허용한다 하더라도 결국 대형 증권사에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한 중소형 증권사 관계자는 "법인 지급결제가 허용되면 대형사에서 주도적으로 목소리를 낼 테고 비즈니스 모델이 다르지만 (우리가) 결국 맞춰가지 않겠냐"면서 "할 수 있는 것은 늘어나겠지만 법인 고객을 유치하기는 쉽지 않아 파급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중소형 증권사 관계자는 "은행에 대한 수수료가 없어지는 대신 지급준비금이 설정될 텐데 해당 부분을 얼마나 감내할 수 있을지도 중요하다"면서 "고객 규모와 일일 정산 규모를 예측해 회사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 큰 니즈가 없을 것이고, 특히나 소형사는 생각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법인지급결제가 허용되면 각 증권사가 업무 영역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느냐에 따라 성과가 달라질 것으로 본다"면서 "최근 조직 개편을 통해 중소형사 증권팀을 만들었는데 논의가 본격화하면 중소형사 의견을 수렴하고 반영될 수 있도록 제도 정비에 힘쓰겠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와 유럽 크레딧 스위스(CS) 유동성 위기가 발발해 금융시장의 불안성도 높아진 상황인데요. 법인지급결제는 금융투자업계의 큰 숙원 사업이지만 도입에 따른 결제 안전성 리스크 역시 간과할 수 없습니다. 특히 자본시장은 변동성이 높고 증권사는 입출금 규모가 큰데, 증권사에 부실이 발생하면 유동성 리스크를 높여 금융 안정성을 헤칠 수 있습니다.
기대보다 자금이체 건수가 많을 때 해당분만큼의 담보를 제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높은데요. 향후 지급결제 시장에서 증권사의 점유율이 올라왔을 때 시스템이 요구하는 요건에 맞는 처리 여력을 갖추는 부분 등이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대기업의 지급결제 전문 기관화 문제도 있습니다. 대기업이 계열사·협력사들에 일부 증권사를 이용하도록 하는 시장 지배력 남용 행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또, 대기업이 은행에 있는 자금을 계열 증권사로 옮겨 사금고화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높습니다. 현행법이나 지급결제 집중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제한이 가능하다는 일부 의견도 있으나 통제가 쉽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이성복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 선임연구위원은 "시스템 리스크는 어느 쪽에서 나타날지 모르고, 실제로 증권사가 법인지급결제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질 때는 금융 안정성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여의도 증권가. 사진=뉴시스)
홍연 기자 hongyeon1224@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