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여정에서 가장 주요한 장면은 무굴 제국의 동화 속 궁전 같이 그 화려하다는 타지마할을 관광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세기적인 사랑이란 수식어에 귀가 솔깃해서도 아니었습니다. 남국의 강렬한 태양 아래 반짝이는 하얀 대리석 돔 위로 화려한 공작새가 날고, 녹색의 앵무새가 날아다녀서도 아닙니다.
타고르는 타지마할을 ‘영원의 얼굴 위에 떨어진 눈물 한 방울’이라했다지만 그것은 시인의 허풍일 뿐, 제왕 사자 한이 사랑하는 왕비 뭄바즈 마할을 추모하기 위해 불쌍한 백성을 동원하여 세운 토목공사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을 짓는데 소요된 경비는 사 자한의 개인 재산에서 현금으로 지급했으며 공사 기간 동안 세금을 한 푼도 올리지 않았다는 말이 흥미를 끌었습니다.
그러나 말이 그렇지 제왕이 곧 국가이던 시절이었습니다. 제국의 재정 상태가 휘청했음은 말할 것도 없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음이 불을 보듯 훤합니다. 제국의 수도 아그라에 타지마할이 축조하는 22년 동안, 페르시아,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서 유명한 기술자와 장인들을 모조리 불러 모았습니다. 미얀마는 물론이고 멀리 중국과 오스만 제국, 이집트에서까지 온갖 건축자재가 수송되었습니다.
문화 유적이라는 것이 대개가 다 백성들의 고혈을 짜서 만든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발길을 유혹하는 것은 그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정교한 양각과 음각의 상감 기교를 예술품 감상하듯이 그렇게 감상하고플 따름이었습니다. 거기엔 인도인들의 보편적 삶이니 정신세계가 어려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최고 문화유산 앞에서도 뾰로통한 심산을 감추지 못하는 방랑자의 피곤한 발길을 끌어당기는 마력은 그것이 최고의 예술품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처럼 완벽한 기하학적 비율과 좌우대칭의 조형미, 아무나 강 등 주변 경관과의 조화는 감탄을 자아냅니다.
인도와 페르시아, 터키, 이슬람, 프랑스의 보르도, 이태리의 베네치아의 건축가까지 참여했으니 세계적인 건축 양식과 기술이 총체적인 조화를 이루어 신비롭고 찬란한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수입된 대리석, 청금석, 홍옥석, 공작석, 터키석 등의 석재를 사용했고 외벽은 루비, 사파이어, 옥과 같은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했으며 500킬로그램 이상의 금이 사용되었습니다.
하얀 대리석으로 지어진 건물이 해가 뜨고 짐에 따라 그 자태가 변하는 건축물은 유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위대한 예술을 창조한 사람들의 예술혼과 거기에 강제 동원되어 고통적인 노역을 담당했을 백성들의 수고를 생각하는 나의 이중적인 감성은 헷갈리기 일쑤입니다.
왕비를 너무 사랑한 황제 사 자한은 전쟁터에까지 왕비와 함께 출정하였습니다. 열네 번째 공주 라우샤나 아라 베굼을 출산한 직후 뭄타즈 마할은 39세의 나이로 숨지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죽자 사 자한은 큰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깨어난 뒤에는 “뭄타즈 마할! 뭄타즈 마할!”을 부르며 실성한 사람처럼 울부짖었다고 합니다.
비탄에 잠긴 사 자한은 2년 동안 기름진 음식을 먹지 않았고, 화려한 황제의 복장도 하지 않았으며 음악과 연회를 베풀지 않았다고 합니다. 타지마할은 사 자한이 사랑했던 왕비의 죽음 앞에서 순애보적 집념만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지를 만들어 줄 것을 약속하고 지은 묘당입니다.
정복왕 사 자한은 본래 남다른 예술적 재능을 타고났고 특히 건축을 사랑했습니다. 그런 그가 사랑하는 아내가 죽자 예술적 정열과 국력을 쏟아 세상에서 기장 아름다운 묘당을 지으려고 전쟁도 안 하고 오로지 그 일에만 몰두하였습니다. 타지마할을 짓는 22년간은 남중앙아시아에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그러니 사랑과 전쟁은 상극이요, 사랑과 평화는 상생입니다.
마침내 사 자한은 셋째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폐위되었습니다. 아우랑제브는 아버지 사 자한이 무차별한 국고 낭비로 왕국을 위험에 빠뜨렸다는 이유로 반란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했습니다. 이방원처럼 불효막심한 아들은 아버지의 소원 두 가지는 들어주었습니다. 하얗게 빛나는 위대한 사랑의 증거 타지마할을 아그라성에서 내려다볼 수 있게 배려한 것입니다.
그는 타지마할이 바라다 보이는 아그라성의 작은 방 무심만버즈에 갇혀 8년을 타지마할을 바라본 후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리고 부왕의 사후 그를 그렇게 생전에 사랑하던 어머니 곁에 안장해주는 최소한의 효도는 했습니다.
내가 인도 여정 중 가장 보고 싶었던 것은 찬델라 왕국의 성(性)스러운 에로틱한 조각상도 아닙니다. 사람들은 사원 외벽에 조각된 남녀 교합상을 보면서 참지 못하는 웃음을 키득키득 웃거나 그걸 기대하고 왔으면서도 때로는 너무나 외설적이라며 눈을 가리기도 한다지만 내가 그곳에 간다면 나는 어떤 표정일까요? 나는 아무튼 이번 여정 중에 그곳을 갈 일은 없지만, 송 교수가 그리로 간다고 갔으니 표정이 어떨지 궁금합니다.
찬델라 왕국이 건축한 수많은 사원과 그 사원을 장식하는 미투나 상에 대해 마하트마 간디 같은 성(聖)스러운 사람은 “모두 부숴 버리고 싶다.”고 했으니 이런 말은 성(聖)스러운 사람의 언어는 아닐지 싶습니다. 그리고 어떤 성(性)스러운 이들은 아름다운 예술 조각상이라며 탄성을 자아내기도 한다고 합니다. 나는 다만 인도인들의 삶 속에서 성(聖)스러움과 성(性)스러움의 구분이 어떻게 구분되어지는지 살짝 궁금하긴 합니다.
나는 다만 인도의 여정 중에 살아 숨 쉬는 인간의 원형을, 그들이 어떻게 수많은 민족과 종족, 수많은 종교와 풍습과 언어가 다름에도 같이 어울려 평화를 이루고 화합하고 사는지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기쁨은 외부환경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쁨은 평화로운 삶에서 옵니다. 기쁨과 평화는 언제 어디서나 스스로 찾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기쁨과 평화야말로 혼란한 세상에서 우리가 꼭 되찾아야 할 가치이며,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갈 힘입니다.
강명구 평화마라토너가 평화달리기 155일째인 지난 5일 인도의 주민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강명구 평화마라토너)
강명구 평화마라토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