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유미 기자] 금융당국이 은행권의 투자일임업 전면 허용 여부에 대한 검토에 들어가면서 은행권과 증권업계가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습니다. 각 업권 전문가들은 소비자 보호를 명분으로 찬반 논쟁을 벌이고 있는데요. 은행권에서는 금융소비자들의 자산관리 수요를 효과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다고 보는 반면 금투업계에서는 소비자의 잘못된 판단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 10일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 제8차 실무작업반 회의'에서 은행들이 ‘비이자이익 확대를 위해 투자일임업을 전면 허용해달라고 건의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전면 허용이 어렵다면 공모펀드와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한 투자일임에 한해 일부 허가해달라고 했습니다. 업계는 투자일임업을 통해 자산관리서비스 대중화 및 경쟁·혁신에 따른 소비자 선택권이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현재 은행에는 투자일임업은 허용돼있지 않고, 투자자문업만 가능합니다. 투자자문업이 말 그대로 투자에 관한 자문을 해주는 것이라면, 투자일임업은 고객의 자산으로 직접 투자를 운용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은행은 지속적으로 투자일임업 허용을 요청했는데요, 현재는 일임형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에 한해서만 투자일임이 가능합니다.
은행이 투자일임을 할 수 없는 건 전업주의 때문입니다. 전업주의는 은행 업무를 고유업무(수신·여신·외국환)와 연관성이 있는 경우로 제한합니다. 미국의 영향으로 우리나라는 1950년 은행법이 제정된 후 전업주의를 택하고 있습니다. 이후 2000년 금융지주회사법이 제정되면서 금융지주 내 별도 자회사 형태로 겸영이 허용됐습니다. 가령 신한금융지주 내에 신한은행과 신한투자증권, 신한라이프가 있는 식입니다. 금융당국은 2003년 은행의 보험 판매 허용(방카슈랑스), 2014년 복합점포 개설 허용 등 지속적으로 은행의 겸업을 확대해왔습니다.
업종 간 진출에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만큼 금융투자업계는 반발하고 있습니다. 금융투자협회 고위 관계자는 "규제의 틀을 다시 짜는 형태로 논의해야 한다"며 "특정업권의 수익성 다변화를 위해서 업무를 나눠준다는 건 현재 금융시장의 기본 틀인 전업주의와 맞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지금도 금융지주 내에 증권회사가 있는데 은행에서도 같은 업무를 수행하는 건 이상한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성복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은행이 실제로 보는 혜택보다 증권사나 자산운용사가 수익성 감소로 얻는 충격이 더 크다"며 "금융의 균형 발전 차원에서도 맞는지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은행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신뢰감이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금융소비자들이 고위험상품임에도 오판을 할 여지가 있다는 겁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 교수는 "은행은 일반 대중을 상대로 예금 수취업무를 하기 때문에 투자일임의 위험성이 더 클 수 있다"며 "원금 보장을 기대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성 교수는 "가령 증권회사에서 투자를 한다면 손실 가능성을 염두에 두겠지만, 은행에서 하게 될 경우에는 리스크에 대해서 투자자가 인지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습니다.
은행의 업무범위 확대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이 이자장사를 한다고 비판받지만, 사실은 그것이 은행 본연의 업무"라면서 "이것이 안 좋은 일로 인식되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소비자 입장에서는 수수료 같은 비이자 수익을 늘리는 게 더 좋지 않을 수도 있다. 은행이 중개업체가 되어 유통업자와 같은 수수료를 받는 셈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 영등포구 한국금융투자협회 앞 황소. (사진=뉴시스)
신유미 기자 yumix@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