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최수빈 기자]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약 5개월 앞둔 시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수능 관련 발언이 이른바 '쉬운 수능'을 주문한 것이란 해석이 나오면서 논란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권에선 논란의 원인을 교육당국으로 돌리는 등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양새입니다. 이는 지난해 교육부가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정책을 내놨다가 당시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책임을 지고 사퇴한 때와 유사한 일이 벌어진 겁니다.
이번 '쉬운 수능' 논란은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대통령실 내부 소통 문제를 또다시 보여준 것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충분한 논의나 조율을 거친 후 윤 대통령이 문제점을 지적하면 교육부에서 구체적인 대안을 이야기하는 대신 윤 대통령의 발언 공개된 이후 실무진이 수습하는 정책 엇박자는 지난해부터 지속되고 있습니다.
만 5세 입학·주 69시간 혼선…담당 부처 장관 사퇴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해 7월29일 당시에도 교육부 업무보고를 받고 "초중고 12학년제를 유지하되 취학 연령을 1년 앞당기는 방안을 신속히 강구하라"고 박 부총리에게 지시한 바 있습니다.
당시 사전 의견 수렴 절차가 없었던 상황인 만큼 당시 학부모들과 교육계에서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이에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자, 박 부총리는 대통령 현안 보고 열흘 뒤인 지난해 8월8일 사퇴하며 만 5세 입학은 사실상 철회됐습니다.
지난 3월 '주 최대 69시간' 근로시간 개편안 논란 역시 같은 양상이었습니다. 당시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주 최대 69시간 개편안에 대해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라는 비판이 들끓자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며 "상한 캡을 씌우지 않은 것을 유감으로 여기고 보완을 지시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나흘 뒤 대통령실은 "상한 캡을 씌우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면 대통령이 고집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입장을 번복했습니다.
당시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주 69시간제라는 극단적 프레임에 진의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며 '잘못된 프레임'을 탓했습니다.
유승민 "또 남 탓"…전문가 "대통령이 좌지우지"
여권 내부에선 최근 윤 대통령의 수능 관련 발언 논란의 책임을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수능을 150일 앞두고 본인의 발언이 학생과 학부모에게 심각한 혼란을 야기하자 그 책임을 교육부 장관에 떠넘긴다"며 "대통령이 또 남 탓을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대통령 본인이 잘못해 놓고 남 탓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만 5세 초등학교 취학, 주 69시간 노동 때도 그랬다. 문제가 불거지니 장관 탓을 했다. '바이든·날리면'은 청력이 나쁜 국민들 탓을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규민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원장이 이날 사퇴하면서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혼란은 더욱 극심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 원장은 "6월 모의평가와 관련해 기관장으로 책임을 지고 사임하기로 했다"며 "이는 2024학년도 수능의 안정적인 준비와 시행을 위함"이라고 밝혔습니다. 지난 16일에는 교육부에서 대학입시를 담당하는 이윤홍 인재정책기획관이 경질됐습니다.
지난해 8월8일 당시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거취와 관련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이 부총리를 직접 경고했다는 일부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고 선을 그으며 진화에 나서는 모습입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브리핑이 매끄럽지 못해 윤 대통령 지시가 와전된 부분이 있지만, 부총리 책임론으로 몰아붙일 일은 아니다"라고 전했습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뉴스토마토>와 한 통화에서 "최근 수능 발언 논란은 정부의 정책이 각 부처 전문가들의 손에 의해서 작동되지 않고 권위적인 대통령 개인에 의해서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이 가급적 구체적 현안에 대해 발언을 삼가면서 각 부처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가 바람직하다"고 조언했습니다.
박주용·최수빈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