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크게 작게 작게 메일
페이스북 트윗터
(무비게이션)‘인디아나 존스5’, 재미와 아쉬움 공존하는 ‘마침표’
시간 ‘역행’ 속 존재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마지막 ‘흐름’ 선택
입력 : 2023-06-26 오전 7:00:27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이 정도로 호불호가 뚜렷하게 갈릴 것이라 확신되는 결과물. 정말 오랜만이고 또 흔치 않을 듯 합니다. 1982레이더스를 시작으로 무려 42년 간 이어져 온 할리우드 대표 어드벤처 블록버스터 인디아나 존스시리즈. 이 시리즈는 상당히 독특하고 또 특이할 정도로 주목해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과거입니다. 주인공 인디아나 존스박사가 고고학자이기에 당연하기도 하지만 장르 상업 영화가 주목하는 판타지의 기본 전제는 미래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그것도 더 멀리그리고 좀 더 멀리를 외쳐 왔습니다. 시리즈 가운데 3최후의 성전에선 기원전 예수의 성배를 찾아나서는 얘기로까지 시간을 되돌립니다. 바꿔 말하면 이 시리즈, 그리고 이 시리즈 주인공이자 상징 인디아나 존스에게 시간은 흐름이 아니라 역행이었습니다. 그걸 위해서 였을까. 오는 28일 개봉하는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은 시간의 역행을 위해서만 존재하고 살아온 고고학자 인디아나 존스가 삶의 흐름 속에서 느껴야 하는 성찰의 진심을 담았습니다. 이번 5편 연출이 마블 변종 히어로 인기 끝판왕 울버린의 마지막을 담은 로건의 감독 제임스 맨골드임을 감안하면 톤 앤 매너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이 시리즈, 1편부터 4편까지 스티븐 스필버그가 맡았으며 그는 이번 5편에선 총괄 제작자로 한 발 물러 났습니다. 스필버그 색채까지는 아니지만 인디아나 존스특유의 유머와 페이소스는 이번 5편에서도 분명 충분히 녹아 있습니다.
 
 
 
이번 5편은 현재 시점으로만 봐도 과거, 그리고 그보다 더 과거, 나아가 2000년 전으로 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운명의 다이얼이란 부제를 통해 담아낼 시간의 흐름과 역행의 상관 관계를 어드벤처 형식을 통해 풀어낸 장르적 재미, 충분히 탁월합니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이번 영화 속 현재 시점은 1969. 미국이 달 탐사선 아폴로 11호를 쏘아 올린 시기. 미래로 나아갈 발판이 마련된 기념비적 시기입니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존스 박사는 이제 우리 기억 속 인디아나 존스가 아닙니다. 매력적 외모와 터프함은 없습니다. 근육들은 늙고 힘 없이 처졌습니다. 그를 상징하는 페도라 속 금발 헤어는 온데간데 없습니다. 새하얗게 서리가 내린 듯 하얀 머리, 군데군데 빠진 채 듬성듬성합니다. 아래 층 청년의 시끄러운 아침 음악 소리에 큰 소리 쳤지만 이내 고개 속이는 존스 박사. 이제 그는 힘 없고 평범한 노인일 뿐입니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현재 그는 뉴욕 한 변두리 대학에서 고고학 강의를 합니다. 달 탐사 시대에 그의 수업은 따분하고 지겹습니다. 학생들 가운데 누구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학생이 눈을 반짝입니다. 공교롭게도 그 학생이 참관한 이 수업, 존스 박사의 마지막 수업입니다. 이날은 존스 박사의 정년퇴직일. 직원들에게 받은 기념품을 거리의 노숙자에게 건낸 존스는 단골 바에서 위스키 한 잔으로 자축의 시간을 갖습니다. 그때 들어온 여성, 아까 수업 시간에 눈빛을 반짝이던 학생입니다. 그는 존스의 죽마고우 바질 쇼(토비 존스) 박사의 딸이자 대녀인 헬레나 쇼(피비 월러 브리지). 헬레나는 죽은 아버지가 남긴 유물 안티키테라의 나머지 반쪽이 있는 곳을 알아 냈다며 존스에게 함께 찾아 나서자 제안합니다. 참고로 안티키테라25년 전 존스 박사와 바질이 함께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 잠입해 훔쳐 내려던 고대 그리스의 유물.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아르키메데스가 만든 이 장치는 선박의 뱃길을 알려주는 일종의 나침반입니다. 하지만 이 장치, ‘시간의 틈위치를 잡아내는 기능도 있습니다. 쉽게 말해 이 지구상 어딘가에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시공간이 왜곡된 지점이 있고 그 위치를 찾아내는 기능입니다. 하지만 이 장치, 둘로 나눠져 있습니다. 하나는 헬레나와 존스에게, 그리고 나머지 하나를 찾아야 합니다. 그걸 찾아 자신의 학자적 위치를 증명하려는 헬레나. 그때 누군가 이들을 습격합니다. 독일인 물리학자 위르겐 폴러(매즈 미캘슨). 그는 안티키테라의 숨은 기능을 아는 또 다른 인물. 그는 CIA와 함께 이 물건을 손에 넣으려 헬레나와 존스 박사를 추적 중이었습니다. 이런 모든 상황을 직면한 존스. 잃어버렸던 삶의 목적을 되찾은 듯합니다. 헬레나와 함께 안티키테라나머지 반쪽을 찾아 떠납니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이 시리즈를 사랑하고 좋아하고 또 기다려온 4050세대라면 분명 기대하는 기본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목구멍이 컬컬하게 흩날리는 흙먼지와 모래 바람, 내리 쬐는 뙤약볕에 흠뻑 젖은 셔츠의 찝찝함. 때로는 끔찍하게 더러운 늪지대에 목덜미까지 빠진 채 허우적대고, 온 몸에 소름 돋게 하는 정체 불명 벌레 떼를 지나야 하는 곤욕까지. 이런 과정을 참고 또 참아가며 지나온 그 끝에서 마주하게 되는 찬란한 결과와 뚜렷한 권선징악까지. 이래야 인디아나 존스가 아닐까 싶을 정도라는 어떤 그것이 있습니다. 이런 설명과 의미 부여에 부인하고 반박할 원조 시리즈 마니아가 있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할 이번 5편이 그걸 부인하고 그걸 반박합니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영화 그 자체를 기준으로 이 세계관의 안과 밖, 다시 말해 영화 속 시대와 영화 밖 제작 시스템의 변화. 동시에 진화했고 동시에 발전했습니다. 과거 이 시리즈 1편과 2편 그리고 3편에서 보여 준 조악한 특수 촬영과 CG는 사실 지금 기준과 시선에서 실소를 터트리게 할 결과물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이 시리즈 정체성이 과거의 조악함으로 타격 받았다면 지금의 영광은 분명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건 다시 말해 이 시리즈가 조악함을 담보로 발전했다는 걸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아날로그적 관점으로서 이 영화가 가진 판타지의 자극점, 다시 말해 관객이 그려낼 수 있는 상상의 폭을 넓혀주는 방식의 옳고 그름에 대한 얘기입니다. 사실상 할리우드 영화, 나아가 전 세계 상업 영화 시장에서 인디아나 존스시리즈의 이런 방식은 굳이 사례를 거론하자면 톰 크루즈가 매번 불가능한 액션에 직접 뛰어드는 미션 임파서블시리즈의 카타르시스와 닮은 꼴이라 하면 가까울 듯합니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전작인 4편 개봉 이후 무려 15년 만에 등장한 이번 5편은 이 시리즈 정체성인 아날로그적 액션과 그 액션의 빼어남에 집중하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아쉬움은 이런 것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제임스 맨골드 감독이 이 시리즈를 사랑해 온 원작 마니아들의 기억과 추억을 관성으로 취급해 버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월의 역행이 아닌 흐름 속에 인디아나 존스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던 것, 느껴지고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의문이고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 시리즈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이 시리즈를 사랑하고 기억하고 추억하는 원작 마니아들에게. 굳이 인디아나 존스의 화려하지 않지만 평범하고 편안한 퇴장을 선사하는 방식을 보고 싶진 않았습니다. ‘인디아나 존스스스로도. 원작을 좋아하고 사랑했던 수 많은 마니아들 중 한 명으로서도. 분명 아쉽고 안타까운 마무리입니다. 관객들에게 꿈에서 깰 시간이라 외치는 듯한 이 시리즈의 마지막과 그걸 선택한 제작진의 결정. 42년 역사에 대한 예의는 분명 아니라 봅니다. 개봉은 오는 28.
 
영화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P.S 덧붙이자면 이런 느낌을 더욱 올곧게 한 설정이 바로 이번 5편의 여성 캐릭터 헬레나입니다. 흔히 기능적이란 말을 사용할 때가 있습니다. ‘구색 맞추기로 뭔가를 등장시킬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이번 시리즈에서 헬레나가 그랬습니다. 하나 더하자면 이번 시리즈 속 아랍계 소년이 한 명 등장합니다. 누가 봐도 시리즈 2편에 등장한 키 호이 콴을 빗댄 설정입니다. 거대한 시리즈의 마지막의 상상이 너무 얄팍해져 버렸다는 걸 증명하는 단적인 예입니다. 또한 이런 게 기능적이란 장치이기도 합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김재범 기자
SNS 계정 : 메일 페이스북


- 경제전문 멀티미디어 뉴스통신 뉴스토마토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