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선과 악을 넘나들고 장르를 넘나드는 연기. 이건 배우라면 최고의 수식어가 될 수도 있고, 최고의 찬사가 될 수도 있으며 최고의 존재감이란 대체 불가의 타이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이런 타이틀은 배우라면 탐낼 수밖에 없고, 또 탐내야 합니다. 그런 이유에서 배우 김강우는 정말 복이 많은 연기자인 듯합니다. 일단 그는 장르에 국한된 배우가 아닙니다. 멜로부터 코미디 그리고 액션과 사극 공포와 호러까지. 그가 출연해 보지 않은 국내 상업 영화 장르는 없는 듯합니다. 여기에 선과 악. 일단 주인공으로 출연한 작품, 정말 많습니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그는 주인공, 즉 선역을 연기했습니다. 그 반대도 꽤 됩니다. 김강우 특유의 날카롭고 날이 선 악역. 이미 충무로에선 일품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런 김강우, 그가 로망을 만났습니다. 일단 그가 로망이라 부른 대상. 감독입니다. 국내에서 캐릭터 구축 1인자로 불리는 박훈정 감독. ‘신세계’ 그리고 ‘마녀’ 시리즈를 히트시킨 연출자입니다. 박훈정 감독은 국내에서 남녀 배우를 불문하고 ‘함께 하고 싶은 감독 0순위’에 꼽혀도 이견이 없는 연출자입니다. 그런 박훈정 감독이 김강우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악역입니다. 그런 박훈정 감독 영화에서 악역 캐스팅 제안을 받았습니다. 김강우의 말을 빌리자면 ‘이런 제안을 거절하는 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라고 설명해도 됩니다. 영화 ‘귀공자’ 속 김강우를 보면 그의 설명 이해가 됩니다. 속된 말로 ‘날라 다니는’ 김강우를 볼 수 있습니다.
배우 김강우, 사진=스튜디오앤뉴
앞서 설명한 대로 김강우, 그에게 박훈정 감독이 직접 캐스팅 제안을 했었답니다. 배우라면, 그 가운데에서도 남자 배우라면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연출자가 바로 박훈정이란 확신. 부인할 배우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싶습니다. 그런 박훈정 감독의 제안에 가슴이 뛰었답니다. 하지만 박훈정 감독의 제안은 일단 별 다른 설명이 없었답니다. 그럼에도 당연히 출연을 할 생각이었지만 어떤 배역이고 어떤 장르인지 너무 궁금하긴 했었답니다.
“처음에는 진짜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으시고 그냥 ‘시나리오 한 번 읽어봐라’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받아 본 시나리오. 우선 당연히 재미있었죠. 그리고 무엇보다 눈에 들어온 건 캐릭터들의 색깔이 너무 분명했어요. 각각의 인물들을 따로따로 서사를 부여해 주인공으로 작품을 구상해도 될 정도였죠. 아직도 기억 나는 인상적인 설며이, 제가 감독님에게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요’라고 여쭤보니 ‘그냥 놀고 가세요’라고 하셨어요(웃음).
배우 김강우, 사진=스튜디오앤뉴
박훈정 감독, 일단 충무로 유명 작가 출신입니다. 그리고 외모적으로 굉장히 날카롭게 또 예민할 것 같다는 선입견도 있습니다. 작가 출신이기에 생긴 선입견입니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 낸 작품 속 남자들은 하나 같이 마초들입니다. 선역과 악역 구분 없이 모두가 마초 중에서도 극상의 마초, 다시 말해 ‘상남자’들 뿐입니다. ‘귀공자’에서 가장 악독한 악역 ‘한 이사’를 연기해야 할 김강우에게도 박훈정 감독이 요구한 건 그 지점입니다.
“’한이사’에 대해 감독님과 정말 많은 대화를 했었어요. 물론 저에게 정말 많은 부분을 맡겨 주셨지만 그래도 연출자인 감독님이 생각하는 ‘한이사’를 알고 싶었죠. 감독님이 요구하신 ‘한이사’는 정말 확실했어요. 진짜 상남자 마초였습니다. 그때 제가 떠올린 이미지가 초원의 숫사자였어요. 진짜 무리의 왕이면서 카리스마가 이글거리는 숫사자. 극중 또 다른 악역이라 할 수 있는 선호씨가 젠틀한 느낌이라면 전 다듬어지지 않은 마초를 원하셨어요.”
배우 김강우, 사진=스튜디오앤뉴
사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김강우의 극중 마인드였습니다. 그는 ‘한이사’를 악역이 아니라 생각했답니다. 분명 악역입니다. 하지만 배우가 ‘악역’을 악역이라 생각하지 않고 연기했다는 단순한 논리가 아닌 실제로 악역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접근했답니다. 약간의 농담도 섞어서 표현을 했지만, 김강우는 극중 ‘한이사’를 두고 ‘좀 귀여운 면도 있지 않느냐’라고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그가 설명한 그 이유, 이랬습니다.
“출연하는 모든 인물들을 보면 선과 악의 구도가 명확하게 나눠져 있어요. 그들은 각자의 목적과 욕망을 위해 움직이잖아요. 근데 한이사는 좀 달라요. 자기 욕망에만 충실해요. 그 욕망을 위해 움직일 때 남에게 해를 끼친다고 생각을 안해요. 물론 결론적으로 해를 끼치는 데 그는 그걸 해를 끼친다고 생각 안해요. 그 정도로 목적이 단순하고 또 지향점 자체가 확실한 인물이죠. 그래서 전 한 편으론 굉장히 ‘짠’한 느낌도 있어요. 하하하. 이해가 안되실 수도 있는데 연기를 한 저는 그게 좀 많이 다가와요(웃음).
배우 김강우, 사진=스튜디오앤뉴
‘한이사’를 연기할 때 고민한 또 다른 한 가지. 바로 총을 쏘는 장면입니다. 극중 한이사는 서부극에서나 자주 등장하는 장총을 들고 나옵니다. 그리고 장총을 이리저리 마구잡이로 쏴 댑니다. 리얼리티적인 측면에서 사실 박훈정 감독이나 김강우 모두 가장 고민했던 지점이랍니다. 총기 소지가 현실적으로 불법인 국내에서 총을 쏘는 장면은 영화적 판타지로 처리하기에도 사실 애매한 지점이 꽤 많습니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 현실감을 극단적으로 떨어트리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총 때문에 고민도 많이 했어요. 아무리 영화이고 지금의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만들어 진 가상의 공간이라도, 총을 쐈을 때 관객들이 느낄 이질감은 분명 있게 마련이거든요. 그 지점에서 고민이 많았는데 그때 감독님이 조언해 주신 게 있어요. ‘그냥 자신 있게 쏘세요’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저도 그래서 생각을 해보니 어떤 악역이든 제가 현실에서 경험을 할 수는 없잖아요. 그냥 편하게 해야겠다 싶었어요. 마음 편하게 막 쐈죠. 하하하.”
배우 김강우, 사진=스튜디오앤뉴
김강우는 모든 배우들의 로망으로 불리는 ‘박훈정 감독’과 흔치 않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국내 배우와 상업 영화 감독으로선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경험입니다. 바로 연달아 두 편의 영화를 함께 작업하는 겁니다. 그것도 두 작품의 주인공이 같습니다. ‘귀공자’의 박훈정 감독과 김강우 김선호가 ‘폭군’이란 영화로 다시 뭉치게 됩니다. ‘폭군’ 역시 박훈정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맡았습니다. 촬영도 모두 끝마쳤습니다.
“진짜 흔치 않은 작업인데, 감독님이 ‘귀공자’에서 저와 작업이 나쁘지 않으셨던 것 같아요(웃음). 어떤 작품은 감독님에게 기대야 쉽게 풀어갈 수 있기도 하고, 어떤 작품은 많은 준비를 하고 들어가야 편한데. 사실 박 감독님 작품은 후자에요. 그래서인지 ‘폭군’은 정말 편했어요. 이미 ‘귀공자’에서 다 맞춰봤잖아요(웃음). 참고로 살짝 귀띔해 드리면 ‘폭군’은 ‘귀공자’와는 180도 다릅니다. ‘폭군’도 기대해 주십시오. ‘귀공자’만큼 재미가 넘치실 겁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