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한해 예산만 150억원이 넘는 부산국제영화제(BIFF). 지난달 초 BIFF 최고책임자 허문영 집행위원장 사임 의사로 쑥대밭이 시작됐습니다. 갑작스런 사임 이유는 ‘일신상의 문제’라고만 밝혔습니다. 하지만 일주일 정도 지난 뒤 국내 영화제에선 생소한 ‘운영위원장’ 직함이 BIFF에 등장했습니다. 당사자는 영화진흥위원회 사무국장을 지낸 조종국 씨입니다. 이를 두고 영화계에선 “집행위원장(허문영)이 운영위원장(조종국) 신설에 반발해 사임했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집행위원장은 영화제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자리입니다. 그 권한 중 자금과 운영 부분만 분리해 운영위원장을 만든 게 문제의 출발이란 말이 나왔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영화 전문지 ‘씨네21’ 기자 선후배 사이입니다.
(좌로부터)허문영 전 BIFF 집행위원장, 조종국 전 BIFF 운영위원장, 이용관 BIFF이사장. 사진=BIFF, 뉴시스
허문영 사임, 조종국 등장
이와 관련, 이용관 BIFF 이사장은 “(운영위원장 신설은)허 위원장도 동의한 사안”이라고 했습니다. 조 위원장도 여러 인터뷰를 통해 허 위원장이 자신의 운영위원장 선임에 ‘동의’하는 듯한 발언의 전후 사정을 설명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당사자인 허 위원장이 침묵하면서 많은 말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더 복잡해졌습니다. 조 위원장이 지난 26일 BIFF 임시총회에서 ‘해촉’됐습니다. 책상에 한번 앉아 보지 못하고 운영위원장 선임 48일 만에 강제로 물러나게 됐습니다.
다음날인 27일 그의 선임을 주도한 이 이사장은 성명서를 발표하며 “그간의 멍에를 모두 짊어지고 떠날 테니 더 이상 영화제를 모독하지 말아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성명서 내용, 심상치 않습니다. BIFF 내부에 고질적 계약 관행이 있었고, 내부 조직 개혁을 위해 외부 용역 의뢰를 진행했는데 개혁 대상자들의 반발이 있었다는 겁니다.
이번 사태 핵심 중 하나는 지금은 ‘전임’이 된 두 위원장이 서로 ‘합의를 했냐’입니다. 조 전 위원장은 여러 언론을 통해 ‘허 위원장이 동의했고, 동의하지 않았다면 (운영위원장을)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허 위원장이 총회 위원장 자격을 겸하고, 총회에서 운영위원장 신설 안건이 올라왔을 때 이 안건은 통과됐습니다. 게다가 이 이사장과 오석근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ACFM) 위원장 모두 ‘허 위원장 동의가 있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말도 흘러나옵니다. BIFF 관계자들은 부산 지역 언론과의 만남에서 “운영위원장보단 사무총장이 더 적합하지 않느냐”며 허 전 위원장이 운영위원장 신설 반대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실제 허 위원장은 ‘사임’으로 운영위원장 신설 반대 제스처를 취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안은 집행위원장 의사는 무시될 만큼 외부 압력이 있었을 수도 있단 증거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해석도 가능합니다. 이 이사장 성명서 내용 때문입니다. 이 이사장은 “영화제 집행부와 사무국은 작년부터 제도 개선과 조직문화 쇄신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해왔다”며 “이 과정에서 몇몇 개혁 대상자들의 반발이 있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이사장은 허 전 위원장도 개혁 대상이었다고 말하는 걸까요.
사진=뉴시스
이용관의 ‘사유화’ 논란
허 전 위원장 사임은 엉뚱한 곳으로 확산됩니다. 바로 이용관 이사장의 BIFF 사유화입니다. 영화계는 조 전 위원장을 이 이사장 측근으로 분류합니다. BIFF의 또 다른 축인 ACFM의 오석근 위원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오 위원장은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출신인데 당시 사무국장이 조 전 위원장이었습니다. 이 이사장은 박근혜 정권의 문화계 탄압 대명사 ‘다이빙벨’ 사태 당시 BIFF집행위원장이었고 결국 쫓겨났습니다. 하지만 이후 복귀합니다.
화려하게 복귀한 그였지만 영화계의 시각은 곱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측근들로 BIFF 보직을 채우려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허 전 위원장 사임 문제에서도 이 이사장은 “이번 사태를 마무리하고 사임하겠다”고 밝혔지만, 일부에선 ‘자신의 사람으로 자리를 채운 뒤 떠나겠다’는 발언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이번 사태를 마무리하고 떠나겠다는 이 이사장이었지만 조 전 위원장이 ‘해촉’된 26일 임시총회에 참석하지 않고 사임 의사를 밝혔습니다. 운영위원장 ‘해촉’에 이사장 ‘사임’으로 맞선 듯합니다. 그리고 이 이사장은 성명서를 통해 ‘다이빙벨’ 사건을 언급했습니다. 그는 “‘다이빙벨’ 사태와 블랙리스트 사건을 권력 장악 기회로 삼고자 했던 현재의 일부 집행위원들과 소수 부산영화인들의 추악하고 부도덕한 행위를 단호하게 심판해달라”며 “그것이 장차 혁신으로 이어지는 이정표”라 말했습니다.
이 이사장이 ‘다이빙벨’ 사건을 계기로 물러나 있을 때 권력을 잡은 이들이 ‘해촉’에 앞장섰고, 그 선두엔 허 전 위원장이 있다고 얘기하는 걸까요.
부산국제영화제가 4개월도 남지 않았습니다. 영화 때문이 아니라 ‘사람’ 때문에 한국 영화 산업이 망하겠다는 말이 요즘 나오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군지는 각자 판단의 몫에 맡기겠습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