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바디 체인지’, 굉장히 익숙한 소재입니다. 이미 장르적으로 너무 많은 방식으로 풀어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소재가 계속해서 등장한 건 그 만큼 콘텐츠가 풀어갈 수 있는 방식 측면에서 매력이 넘치는 설정이란 것도 됩니다. 하지만 그걸 담아내는 그릇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그 소재를 제대로 살릴 수도, 반대로 그 소재의 힘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제목부터 섬뜩한 ‘악마들’. 앞서 언급한 바디 체인지 소재입니다. 제목과 설정만으로도 ‘악마들’, 자극이 차고 넘칠 듯합니다. 실제로 서사 구조 자체가 자극의 연속입니다. 거기까지도 문제는 아닙니다. 핵심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바디 체인지’ 방식. 누군가에겐 황당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풀어가는 방식에 따라선 상당히 흥미로울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바디 체인지 설정, 전례가 없던 것도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악마들’, 수준급이라 단언하긴 힘들지만 반대로 수준 이하라 치부하기에도 아쉽습니다. ‘아쉬움’의 배경을 곱씹어 보면 답은 하나입니다. 이 얘기, 2시간짜리 ‘그릇’에 우겨 넣은 것. 그게 문제입니다. 이미 영화로 만들어졌으니 의미 없는 지적일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그 지점입니다. 이 얘기를 영화로 풀어낸 것의 아쉬움.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일단 내용은 장르적 색채가 강한 방식으로 풀어갔습니다. 제목 그대로 ‘악마들’이 등장합니다. 타인의 신체를 훼손하는 방식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 살인마 집단. 그 집단 우두머리이자 리더 진혁(장동윤). 그리고 그들을 잡기 위해 오랜 시간 수사해 온 베테랑 형사 재환(오대환).
재환은 자신의 파트너이자 친동생과도 같은 후배 형사를 진혁 패거리 검거 직전 잃게 됩니다. 재환은 더욱 절치부심 합니다. 그리고 결국 진혁을 검거합니다. 하지만 검거 직전 재환은 진혁과 함께 큰 사고를 당하고 실종됩니다. 무려 한 달 동안 생사를 알 수 없던 재환과 진혁. 두 사람은 갑작스럽게 나타납니다. 한 달 만입니다. 하지만 반가움 보단 충격적입니다. 피해자의 신체를 훼손하는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마 진혁이 재환이 됐습니다. 그리고 형사 재환은 끔찍한 악마 진혁이 됐습니다. 말 그대로 공수 교대 완료입니다. 물론 상상만 해도 끔찍한 공수 교대입니다.
진혁의 몸을 한 재환은 왜 자신이 진혁의 몸을 갖게 됐는지 모릅니다.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설명할 필요도 없이 혼란스럽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재환의 몸을 갖게 된 진혁은 느긋합니다. 뭔가 알고 있는 듯합니다. 당연합니다. 경찰의 타깃이 됐던 자신이 경찰이 됐습니다. 우선 추격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자신을 그렇게 쫓던 재환이 됐습니다. 상상을 해보면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진혁의 몸을 갖게 된 ‘재환’은 초조할 것입니다. 혼란스럽고 두렵고 무서울 것입니다. 반면 재환의 몸을 갖게 된 ‘진혁’은 이보다 더 짜릿한 공수 교대가 없습니다. 이제 자신이 쫓으면 됩니다.
영화 '악마들' 스틸. 사진=TCO㈜더콘텐츠온
‘악마들’은 제목 그대로 악마나 다름 없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그들’ 그리고 그들의 리더 진혁을 타깃으로 형사 재환의 추격. 그런데 두 사람이 눈 앞에 서로 마주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서로의 몸이 뒤 바뀌어 버린 뒤입니다. 잡을 수도 없고 도망을 갈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얘기의 전개는 예상 밖으로 흘러가게 돼 있습니다. 그 ‘예상 밖’, 그게 바로 ‘악마들’의 키 포인트 입니다.
영화 '악마들' 스틸. 사진=TCO㈜더콘텐츠온
일단 ‘악마들’ 바디 체인지 설정. ‘왜?’가 아니라 ‘어떻게’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뒤 바뀐 이후 두 인물의 개인적 서사와 심리 묘사보단 ‘어떻게’(신체가 바뀐 방법)에 더 집중하게 만듭니다. 몸이 바뀐 이후 두 인물의 행동과 혼란 이유에 대한 묘사는 제쳐 둡니다.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말이지만, 바디 체인지 설정은 ‘왜?’와 ‘어떻게?’의 싸움입니다.
‘악마들’은 설정의 뻔함을 포맷의 탈피로 풀어갈 수 있었습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이 영화의 시나리오, 영화 포맷과는 거리가 있는 구성입니다. 그 지점이 꽤 괜찮은 이 얘기의 퀄리티를 끌어 내린 아쉬움이 됐습니다.
영화 '악마들' 스틸. 사진=TCO㈜더콘텐츠온
영화 시작과 함께 진혁의 악마적 성향이 드러나고 재환이 그를 쫓아야만 하는 이유가 공개됩니다. 하지만 이후 두 사람이 동시에 사라지고 이어 동시에 나타난 지점부터 관객들에겐 헷갈림의 게임이 시작 됩니다. 바뀐 것에 대한 의문이 아니라 바뀐 것을 전제로 ‘어떻게’란 방식에만 관객들의 관심이 쏠리게 끌어가 버린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2시간이란 러닝 타임 한계가 이 얘기의 스펙트럼을 가둬 버린 지점이기도 합니다. 바뀐 이후 두 인물의 상황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발생되는 긴장감이 아닌 그저 바뀐 것에 대한 방식으로만 관심을 끌어 가 버리게 됩니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메타포 자체가 그 방식에 힘을 실어 줍니다.
영화 '악마들' 스틸. 사진=TCO㈜더콘텐츠온
결과적으로 이 얘기, ‘빼어남’이라 칭찬할 수는 없지만 그 반대의 평가에도 동의할 수는 없습니다. 이 영화, 후반부쯤 등장하는 반전의 포인트가 사실 하이라이트는 아닙니다. 포맷의 전환이 이뤄졌다면 바디 체인지 이후 두 인물이 만들어 내는 뒤바뀐 상황의 아이러니가 만들어 낼 상황적 충돌의 파열음. 그게 진짜 ‘바디 체인지’의 핵심 포인트란 것을 여실히 증명했을 겁니다. 2시간이란 러닝타임이 담아내기에 ‘악마들’의 설정과 소재는 너무 희석이 돼 버렸습니다. 이 얘기를 품지 못한 OTT의 외면이 아쉬울 뿐입니다. 개봉은 7월 5일.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