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가을 쯤 방문 후 1년이 좀 안 된 시간, 이태원에도 여름이 오긴 왔습니다.
휴일이었는데 사람이 많았습니다. 예전에 마주하던 그 활기만큼은 아니지만, 이국적인 음식점 앞은 한국인 커플과 외국인 가족들, 모델, 힙하게 차려입은 청소년들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아, 제가 자주 갔던 케밥집, 쌀국수 집은 없어졌습니다. 대신에 또 다른 음식점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었죠.
"오랜만에 이태원 가자. 000000(비건식당. 맛집입니다) 예약했어." 얘기를 들었을 때 사실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용산구청에서 내려서 이태원 거리로 올라 가는 길,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제가 추억하던 이태원이 어떻게 변했을지 마주할 용기가 없었달까요. 조금은 회피하고픈 마음도, 그럼에도 두 눈으로 지켜보고 싶은 양가적인 감정이 들었습니다.
6글자의 비건 식당. 시그니쳐 메뉴는 구운 양배추 샐러드. 초콜릿 소스와 잘 어우러져 맛있습니다.(사진=유근윤 기자)
제가 기억하는 이태원은 오래된 친구들 사이에서 '마음의 고향'으로 꼽히는 곳입니다. 수능에 실패한 후 친구들과 밥을 먹다 운 곳, 애인 없는 솔로들끼리 크리스마스에 남아공(?)식 스테이크 썰러 간 곳, 피자를 먹다 소위 번호도 따여보고, 도예하는 친구의 작업실이 있는 곳이라 처음으로 도자기 흙을 만져보기도 했어요. 이슬람사원을 취재해보기도 했고요. 길 가다 아무 가게나 들어가 밴드 음악을 듣고, 쌀국수는 꼭 남산타워가 보이는 언덕을 뻘뻘 올라가 땀을 흘리며 먹었습니다. 이태원은 제 문화적 허세도, 슬픔의 진면목도 모두 품어주고, 숨겨주는 곳이었죠.
작년 그 날, 저는 홍대에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온 친구에게 한국의 할로윈 문화를 보여주려 이태원으로 넘어가려다 너무 피곤해 집을 왔습니다. 이태원은 그 다음날, 빈소가 차려진 날 방문했습니다. 그 뒤로 이태원의 이름은 국회에서, 시청에서 마주했죠. 울음 묻은 절규를 한 자 한 자 받아내려갔을 때의 이태원은 제 나름의 가슴 아픈 금기어가 됐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길을 올라오니 도로 건너 해밀턴호텔이 보였습니다. 바람이 쉭 부는데 저도 모르게 눈은 그 골목으로 향했습니다. 벽에는 '기억의 길'이라고 적혀있고 그 아래는 포스트잇에 적힌 편지가 빼곡했습니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저는 눈을 한 번 깜빡이며 바라보다 길바닥을 다시 보고, 다시 그 골목을 바라보다 바닥을 보고... 어쩐지 해가 너무 뜨거워 눈을 오래 뜰 수가 없었습니다.
'기억의 힘은 세다'라고 적혀있었습니다. 기억의 힘, 우리가 무엇을 보고 어떻게 기록한, 그 머리에 남고 가슴에 새겨진 기억은 자체의 파괴력을 지닌 듯 했습니다. 저처럼 잔상으로 남은 아픔에도 이리 쩔쩔 매는 사람이 있는데 '그 누구는 이 아픔을 어떻게 견디지?' 위와 아래를 향한 생각을 하면서 한동안 오도카니 서있었답니다.
때마침 지나가는 사람들의 웃음이 저를 깨웠어요. 다시 거리를 바라보니 일상은 찾아왔더랍니다. 제 마음의 고향인 이태원을, 더는 회피도 애써 외면도 말아야겠단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제 여러 해의 여름 밤을 책임졌던 이태원은 여전히 거기 있었습니다.(사진=유근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