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이상한’ 배우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분명 작품 속에서 연기를 합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 장면, 그 프레임 안에 등장했고 존재했다고 하는데 본 사람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 두 가지 추측이 가능합니다. 먼저 하나는 본 사람의 기억에서조차 흔적을 지울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단 얘기가 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 본 사람의 기억에서조차 흔적을 지울 정도로 그 연기가 자연스러웠고 연기가 아닌 것처럼 등장했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첫 번쨰와 두 번째. 같은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상한’이란 형용사를 사용해 이런 배우들의 연기를 표현해 봤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표현되는 문장을 지금까지 읽는 동안에도 그런 이상한 연기를 하는 배우들을 떠올릴 때 분명 머릿속에 잘 그려내지 못했을 겁니다. 그건 사실 ‘부정적’이라기 보단 ‘긍정’의 의미에서 ‘이상한’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표현의 꼭지점에 선 배우, 즉 현 시점에서 ‘이상한’ 존재감의 꼭지점을 찾아 보자면 단연코 배우 안소요가 있습니다. 본명 안지혜, 그의 예명 ‘소요’는 ‘자유롭게 거닐며 돌아다닌다’란 뜻입니다. 그 예명 그대로 그는 작품 속에서 자유롭게 거닐며 돌아다닙니다. 그래서 우린 그가 작품 속 출연 배우인지 캐릭터인지 급기야 ‘공기’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가 됩니다. 그의 전작 ‘더 글로리’ 속 ‘경란’을 떠올리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개봉하는 영화 ‘비닐하우스’ 속 ‘순남’을 보면 이 말에 소름 끼칠 정도로 동의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배우 안소요. 사진=트리플픽쳐스
‘더 글로리’를 얘기해야 배우 안소요를 얘기할 수 있습니다. ‘더 글로리’에서 전재준 패거리에게 학교 폭력을 당한 뒤 그들의 그늘에서 성인이 된 이후에도 존재하는 경란. 처음 그는 극 속에서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존재감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린 그걸 인지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아픔이 뭔지 존재가 뭔지 그 존재의 아픔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짚어내고 드러내는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그에게 ‘경란’은 정말 소중한 존재로 남아 있었습니다.
“제게 경란은 정말 소중한 캐릭터 중에 하나인 건 사실이에요. 아마 ‘비닐하우스’를 보시면 ‘경란’을 떠올리실 수도 있을 듯싶어요. 일단 ‘비닐하우스’가 ‘더 글로리’보다 먼저 촬영했어요. 그리고 ‘비닐하우스’ 속 순남은 경란과는 사실 근본적으로 달라요. 경란은 생각이 굉장히 많은 인물이에요. 반면 ‘순남’은 타인에 대한 경계가 있지만 쉽게 허물어져요. 그 순간의 감정과 감각에 많이 의존하는 인물이죠. 두 사람다 상처가 많은 인물인데, 경란은 생각이 많지만 순남은 그 순간에 의지를 해요.”
배우 안소요. 사진=트리플픽쳐스
‘비닐하우스’ 속 안소요가 연기한 ‘순남’. 극 흐름을 주도하는 문정(김서형)의 감정을 뒤 흔들고 그의 고요했던 삶에 파동을 일으키는 돌멩이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 존재감으로서 앞서 설명한 순간에 의지하는 인물의 성격까지 더해지면서 더 명확해진 부분이 있습니다. 일단 직접적인 설명은 없습니다. 하지만 제3자의 간접적 설명으로 인해 순남의 가장 큰 설정이 언급됩니다. 그는 3급 지적 장애인입니다.
“조심스러울 수 있는 부분이긴 해요. 시나리오 설정상 그런 부분이 있었는데, 사실 전 순남을 지적 장애인이라고 생각하고 접근 하진 않았어요. 기본적으로 하나하나 레이어를 쌓아 올리면서 순남을 만들어 갔는데 그 제가 쌓아간 레이어 안에 ‘지적장애인’은 없었어요. 전 단지 그런 부분이 순남의 성격일 수 있겠다고 싶었죠. ‘지적장애인’으로 저 스스로가 순남을 가둬 버리면 인물 자체가 좁아져 버릴 수 있겠다 싶었어요. 순남의 그런 오지랖이라고 할까요. 비장애인들에게도 충분히 많잖아요. 전 그렇게 생각해요.”
배우 안소요. 사진=트리플픽쳐스
굉장히 기괴한 인물인 ‘순남’. 안소요는 ‘비닐하우스’ 출연 제안을 받고 읽은 시나리오에서 ‘순남’에게 순식간에 빨려 들었다고 전했습니다. 실제 인간 안소요와 정반대의 지점에 선 ‘순남’이란 인물에게 너무도 깊은 애정과 그 이상의 무엇을 느꼈답니다. 당연하게도 그런 점에서 ‘순남’을 반드시 연기하고 싶었고 그 모든 것을 빨아 들이고 싶었답니다. 그리고 그런 ‘순남’을 만들어 내는 데 쉬운 작업은 아니었지만 예전의 기억이 떠올라 뭔가 인연처럼 느껴지는 점도 있었답니다.
“전 감정 기복도 심하고 내면의 변화도 많아요. 근데 순남은 너무 투명해서 감추는 게 없을 정도에요. 내 속에 숨은 뭔가를 드러내 보일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죠. 그런 과정으로 인물을 만들어 가던 중 순남의 기괴한 표인트를 잡아낼 기억이 떠올랐어요. 어릴 때 제가 산에서 들개와 마주한 적이 있는데, 굉장히 난폭하게 생긴 모습과 달리 제가 자신에게 적의가 없단 걸 알자 꼬리를 흔들며 오더라고요. 이게 뭐지 싶었던 기억이 있었는데 그때의 이미지가 딱 떠올라서 ‘이거다’ 싶었죠.”
배우 안소요. 사진=트리플픽쳐스
그에게 ‘이상함’에 대한 질문을 했습니다. 그의 연기를 보면 기묘할 정도로 연기를 안하는 것 같은 이상한 이질감이 느껴집니다. 사실상 연기의 긍극적인 목표는 ‘진짜처럼 보여야 하는 가짜의 표현’입니다. 배우가 하는 연기의 실체가 진짜의 감정과 진짜의 실체처럼 느껴지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객은 그 연기가 가짜인 걸 알면서도 흥미와 관심을 두고 바라보고 몰입합니다. 그런데 안소요의 연기를 보면 진짜와 가짜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 그냥 그대로 존재하는 그 자체처럼 보이게 하는 마력이 있습니다. 그가 ‘더 글로리’ 초반에 보여 준 존재감이 대표적입니다. 분량의 문제가 아닌 그는 존재했지만 배역이 아닌 그 자체의 공기처럼 그 공간에 있었습니다.
“(웃음) 너무 극찬을 해주신 것 같아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우선 전 제 연기를 잘 못봐요. 제가 출연한 배역도 다시 보면 너무 부끄럽고. 뭔가 모르게 내가 그 배역을 잘 살려 야지, 또는 잘 표현해 야지. 그런 생각 자체를 안하는 것 같아요. 의도적으로 그런 부분을 배제해요. 이번 ‘비닐하우스’ 속 순남도 내가 뭘 어떻게 만들어서 표현하자 싶은 게 아닌 그냥 내가 몸으로 살아 버리자 생각했어요. 정말 내가 모자라고 부족한 걸 알기에 그냥 그 인물로 살아버리는 방법 외에는 없는 것 같더라고요.”
배우 안소요. 사진=트리플픽쳐스
‘비닐하우스’를 보면 삶에 대한 시선의 깊이가 느껴질 정도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집니다. 이 영화는 연출을 맡은 감독님이 시나리오까지 직접 썼습니다. 영화를 보면 최소한 40대, 중년 이상의 감독님 같은 풍모가 다가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눈을 의심케 할 정도로 앳된 모습의 여성 감독님 이었습니다. 너무 어린 외모가 오히려 이 영화의 최대 반전이자 놀라움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안소요도 그 점에서 크게 웃었습니다.
“(웃음)저도 여전히 감독님이 어떤 분일까 진짜 궁금해요. 사실 촬영 기간 동안에는 영화에 대한 얘기만 했는데, 개봉하고 나면 술 한 잔 같이 하고 싶어요. 제가 아는 것만 말씀드리면 극중 순남과 문정에게 본인을 아주 많이 투영시켰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느껴졌던 게 순남에게 단순한 이질적인 감정이 아니라 굉장히 복합적인 부분이 많이 들어 있다 느꼈거든요. 그런 복합적인 부분을 굉장히 잘 잡아내고 또 이끌어 주세요. 젊은 분인데 너무 ‘능수능란’하셨어요. 그리고 굉장히 쿨 하세요. 하하하. 이건 뭐라 설명이 안되는데, 아주 쿨하세요(웃음).”
배우 안소요. 사진=트리플픽쳐스
‘더 글로리’로 이름을 알린 안소요, 그리고 ‘비닐하우스’가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촬영은 ‘비닐하우스’가 먼저였습니다. 그리고 두 작품 모두 워낙 어둡고 무거운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있는 또 다른 모습인 ‘밝은 안소요’도 꼭 보여 드리고 싶다고 합니다. 앞으로 소개될 작품은 분명 밝은 느낌이 강할 것이라며 웃습니다.
“ENA 월화드라마 ‘남남’에서 경찰로 나와요. 최수영씨 직장 동료로 나오는 데 이번에는 아주 밝고 그냥 보고 즐기실 수 있는 내용이라 전혀 다른 안소요를 기대하실 수 있어요. 근데 촬영 중인 ‘피라미드 게임’은 또 무거워요(웃음). 진짜 다크한 작품이라 하하하. 언제라도 색다른 모습의 안소요를 기대하실 수 있게 항상 준비된 모습으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웃음).”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