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왜 염정아를 그 배역에 선택한 것이냐”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류승완 감독은 좀 과장해서 표현하면 ‘그걸 진짜 몰라서 묻느냐’란 표정이었습니다. 류 감독은 “국내에서 염정아와 작업 안하고 싶은 감독이 있을까요”라고 대답했습니. 염정아는 최근 류승완 감독 신작 ‘밀수’에서 김혜수와 투톱을 맡았습니다. 극중 그가 연기한 ‘엄진숙’을 보면 염정아 외에는 대안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찰딱 궁합 캐스팅을 자랑합니다. 사실 ‘밀수’ 외에도 다른 여러 작품 속 염정아를 떠올리면 배역을 잘 소화하고 못하고,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그냥 ‘찰떡 궁합’이란 표현 외에는 달리 설명이 안될 정도입니다. 그가 출연한 영화 속 배역을 떠올려 보면 처음부터 ‘염정아’를 염두하고 다듬고 또 다듬어 만들어 낸 배역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밀수’ 직전 출연작 ‘인생은 아름다워’ 속 시한부 인생을 사는 ‘오세연’과 ‘외계+인’ 1부 속 고려 시대 여자 도사 ‘흑설’. 장르적으로 그리고 서사 적으로 또 전반적으로 결코 교집합이라고는 존재할 수도 없는 두 배역을 넘나든 염정아의 존재감은 굳이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류승완 감독이 설명한 ‘염정아와 작업 안하고 싶은 감독이 있을까’란 말. 당연히 수긍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장르와 배역 연기 어떤 조건으로 가져다 놔도 염정아의 소화력은 무지막지할 정도입니다. 그냥 그 자체로 ‘염정아=배역’의 공식을 만들어 버립니다. ‘밀수’ 속 염정아를 보면 그게 너무도 확연 해 질 정도입니다.
배우 염정아. 사진=아티스트컴퍼니
염정아는 김혜수가 연기한 ‘조춘자’와 함께 ‘밀수’ 전체를 이끌어 가는 ‘엄진숙’을 연기합니다. ‘조춘자’가 다듬어 지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성격을 보여 준다면 진숙은 ‘밀수’의 배경이 되는 가상의 항구 도시 ‘군천’을 이끌어 가는 실질적인 리더 같은 인물. 그는 춘자를 포함해 해녀로 활동하는 팀원 전체를 진두지휘하고 그들 각각의 가족까지 모두 살뜰하게 보살피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염정아의 눈에 비친 ‘엄진숙’은 이런 인물이었습니다.
“너무 책임감이 크고 무거운 인물이에요. 어깨가 매달린 식구들이 한 둘이 아니잖아요. 일단 자신도 해녀로 생활하는 데 함께 해녀로 활동하는 마을 해녀팀 전체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잖아요. 아주 어릴 때부터 아버지 엄선장의 배를 타고 물질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다 보니 몸에 자연스럽게 벤 거겠죠. 그래서 극중의 사건이 벌어진 뒤에도 군천을 떠나지 못하고 해녀들의 생계를 걱정하면서 장도리(박정민) 춘자와 자꾸 부딪치는 거고.”
배우 염정아. 사진=아티스트컴퍼니
그는 진숙은 연기하는 과정 그리고 만들어 가는 과정에 대해서도 전했습니다. 일단 염정아가 느낀 ‘진숙’은 ‘불쌍함’이었습니다. 사람 자체의 불쌍함이 아닌 믿었던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믿었던 사람이 또 자신을 배신했다 믿게 됐고, 믿었던 사람 때문에 결국 자신이 오해를 하게 됐단 걸 알게 된 뒤의 허탈함이 어떤 감정 이었을지. 그게 너무 힘들었고 또 가슴이 아려 왔답니다. 하나 덧붙이자면 자신과 너무 다른 ‘진숙’을 연기하는 게 사실 너무 어려웠답니다.
“제 성격과 진숙이 너무 달라서 쉽진 않았어요. 일단 진숙이가 너무 불쌍했어요. 유일한 친구였던 춘자를 의심하지, 눈 앞에서 아버지와 동생을 그렇게 보냈지. 다시 나타난 춘자에게 혼란을 느끼지. 진짜 상황이 너무 가혹 했어요. 중간중간 헷갈릴 때마다 감독님 그리고 혜수 언니와 많이 대화를 하면서 잡아 갔던 거 같아요. 특히 곁에서 혜수 언니가 진짜 많이 도와줬어요. 언니, 너무 사랑스러운 분이에요(웃음).”
배우 염정아. 사진=아티스트컴퍼니
‘밀수’는 해녀들이 밀수에 가담하는 얘기입니다. 해녀들이 바다에서 밀수품을 건져 올리는 얘기이다 보니 출연 배우들 모두가 물 속에서 전체 촬영 분량의 절반 가량을 소화해야 합니다. 문제는 염정아가 물과 전혀 안 친하다는 점입니다. 염정아의 말을 빌리자면 ‘수영을 전혀 못한다’였습니다. 하지만 총 3개월 정도의 훈련 과정을 소화한 뒤 ‘밀수’에서 보여 준 물 속 유영 장면을 스스로 소화하게 됐답니다. 자신도 스스로가 그 정도로 할 줄은 몰랐다고 웃습니다.
“기본적으로 물에서 뜨지도 못했어요. 수영 자체를 해 본적이 없어요. 총 3개월 훈련을 했는데, 처음엔 물에서 숨 참는 것부터 했어요. 30초부터 시작해서 시간을 늘려 갔어요. 그리고 해녀 역이다 보니 수영보단 잠수에 가까운데, 어느 순간에는 눈에 괴롭고 어떤 순간에는 귀가 아파요. 그걸 견디면서 다들 찍은 거에요. 참고로 같이 해녀팀에서 함께 한 배우들 중에 실제 현장에 계셨던 해녀분들이 극찬을 한 배우가 김재화에요. 저처럼 수영 자체를 못했는데, 나중에는 물 속에서 인어처럼 움직이더라고요(웃음). 해녀분들이 ‘해녀로 전직해도 될 정도’라고 칭찬을 하셨으니.”
배우 염정아. 사진=아티스트컴퍼니
워낙 수중 촬영 분량이 많았고 또 ‘밀수’의 하이라이트인 액션도 수중에서 일어납니다. 김혜수는 ‘세계 최초의 수중 액션’이라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염정아에게 수중 촬영에 대한 과정을 좀 더 듣게 됐습니다. 일단 수 많은 스태프와 배우들이 함께 수조 세트에 들어가서 촬영을 했답니다. 그 안에서 어느 누구라도 안전에 위험한 상황이 오면 감독을 대신해 촬영을 중단시킬 수 있었답니다.
“물속에선 배우들 한 명마다 그 배우만 바라보는 스킨스쿠버 분들이 계셨어요. 그 분들이 자신의 담당 배우가 조금만 이상해도 바로 촬영을 중단 시킬 수 있게요. 그리고 배우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아무리 어렵고 중요한 장면이라도 안전이 최우선이기에 찍는 도중에 조금만 이상해도 손을 들어서 신호를 보내 촬영을 중단시킬 수 있었어요. 그럼에도 다들 견디고 또 즐겁게 했던 건 ‘함께’였기에 가능했던 거 같아요. 다들 촬영 끝나고 부둥켜 안고 울고(웃음).”
배우 염정아. 사진=아티스트컴퍼니
그는 김혜수 얘기에선 눈시울을 붉힐 정도였습니다. 참고로 김혜수는 매번 작품에선 강하고 센 이미지로만 나오지만 실제 그의 성격은 세심하고 눈물이 많은 스타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나 현장에서 선후배들에게 너무도 잘해서 모두가 그를 따르고 좋아할 정도입니다. 염정아는 ‘밀수’에서 김혜수와 투톱으로 극을 이끌며 호흡을 맞췄으니 그 감정이 오죽하랴 싶었습니다. 김혜수는 염정아를 현장에서 ‘아가’라고 불렀답니다. 김혜수는 염정아보다 두 살 언니입니다.
“일단 이 영화는 혜수 언니가 없었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영화에요. 혜수 언니는 그냥 이 영화 자체에요. 그리고 혜수 언니는 사랑이 너무 넘쳐요. 현장에서 우리한테 아낌 없이 다 퍼줘요. 줄 수 있는 건 다줘요. 제일 큰 언니가 그런데 현장 분위기가 안좋을 수가 없죠. 진짜 기억에 남는 건 물 속 촬영 때 서로 눈을 바라보고 사인을 주고 받는데, 그 느낌이 진짜. 지금도 눈물 나려고 한다. 아직도 내게 ‘아가’라고 불러주는데. 그냥 언니가 너무 좋아요.”
배우 염정아. 사진=아티스트컴퍼니
충무로 최고 그리고 최강 액션 흥행 마스터 류승완 감독 그리고 충무로 최고 케이퍼 무비 장인 최동훈 감독. 두 사람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는 여배우. 염정아는 이 말에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했습니다. 만약 두 감독에게 동시에 같은 날 촬영이 시작하는 신작 출연 제안이 온다면. 이 질문에 염정아는 버럭하면서 ‘제발 그런 질문 하지 말아요’라며 웃었다. 그는 ‘이 세상에서 제일 난감한 질문이다’라면서 손사래를 쳤습니다.
“아니 그걸 어떻게 정해요(웃음). 나 생각만 해도 현기증 나려고 해요. 진짜. 두 분다 계속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죠. 나 너무 욕심인가 하하하. 류 감독님은 앞으로 또 제안이 오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액션 수위를 알고 계셔서 그거에 맞춰서 제안을 주시지 않을까 싶은데. 하하하. 그리고 최동훈 감독님은 올해 개봉할 듯한데, ‘외계+인 2부’가 남아 있어서. 1부 성적이 좀 그랬는데. 2부가 공개되면 아마 상황 달라질 거에요. ‘밀수’도 끝내주는 데, ‘외계+인 2부’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하하하.”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