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류승완 감독이 선택했습니다. ‘밀수’에서 실질적 ‘악역’이라 할 수 있는 ‘권상사’ 캐릭터에 누굴 캐스팅할지. 고민했을 겁니다. 그렇게 고민하고 또 고민했지만 내린 답은 이것이었습니다. 조인성.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조인성입니다. 일단 조인성은 악역으로서 대중에 각인된 배우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그는 주인공, 즉 ‘선’역에 가까운 캐릭터들만 맡아 왔습니다. 하지만 분명 그럼 이렇게 항변할 수도 있습니다. 조인성이 ‘밀수’에서 연기할 ‘권상사’는 ‘악’역에 가까운 캐릭터일 뿐 ‘악역’은 아니라고. 권상사는 표면적으론 분명 악역이 맞습니다. 하지만 앞선 문장의 항변처럼 ‘악역’이라고 하기엔 뭔가 좀 선을 넘어 버리는 장면이 많습니다. 극중 김혜수가 연기한 ‘조춘자’와의 로맨틱한 분위기도 그렇고. 무엇보다 조인성 같은 배우를 극중 사건과 사건 그리고 인물이 변화를 맞이하는 극 전체의 분위기 전환용, 다시 말해 ‘브릿지’ 역할로 사용할 결심을 한 것. 그것만으로도 ‘밀수’의 배포, 아니 류승완 감독의 뚝심은 알아 줘야 합니다. 참고로 류승완 감독은 자신의 전작 ‘모가디슈’ 개봉 즈음 홍보 기간에 ‘밀수’ 촬영을 하고 있었던 듯합니다. 조인성은 ‘모가디슈’ 홍보 일정 소화 기간 동안 잠깐씩 짬을 내 ‘밀수’ 촬영을 소화했답니다. 당연히 ‘모가디슈’ 홍보 일정과 병행하면서. 그는 ‘류승완 감독이 날 쪽쪽 빨아 먹었다’고 농담을 합니다.
배우 조인성. 사진=아이오케이컴퍼니
‘밀수’ 개봉을 불과 며칠 앞두고 뉴스토마토와 만난 조인성. 그는 ‘밀수’에서 큰 분량은 아니지만 임팩트가 너무도 강한 ‘권상사’ 캐릭터를 소화하며 류승완 감독과 또 다시 만났습니다. 일단 ‘밀수’에서 그는 조연에 가까운 특별출연? 또는 우정출연 수준의 분량을 담당합니다. 아무리 류승완 감독의 신작이고 또 류 감독과 친분이 두텁다고 하지만 천하의 조인성이 이 정도 분량이란 게 너무 놀랍기도 했습니다. 그는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그러니까요. 하하하. 아니 날 그 정도로 쓰는 게 말이 됩니까(웃음). 뭐 같은 지역구 주민이라 불러내서 쓰기 편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하하하. 사실 제가 그 정도의 분량이 아니면 함께 못했어요. ‘모가디슈’ 끝나고 홍보 일정 끝나면 저한테 허락된 시간이 딱 3개월이 있었어요. 전 좀 쉴까 했는데, 감독님이 덜컥 이걸 주신 거죠. 구체적인 배역도 몰랐어요. 근데 저와 감독님 정도 되면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뭘 어떻게 찍을 건지. 그것만 확실하면 믿고 갈 수 있는 거죠. 근데 류승완 감독이잖아요. 허투루 하겠나 싶었죠.”
배우 조인성. 사진=아이오케이컴퍼니
그래서 그 3개월, ‘모가디슈’ 홍보 기간까지 활용해 짬을 내 ‘밀수’ 촬영장을 오가기 시작했답니다. 일단 그는 시나리오를 받고 ‘헉’하는 외마디 탄성을 내질렀답니다. 해양범죄활극이란 장르인데 해녀가 주인공. 그럼 물 속에서 액션을 한다고? 이런 상상이 펼쳐지자 출연하겠다는 약속을 번복하고 싶었답니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기고 또 넘기면서 ‘권상사’는 물에 안들어간다는 점을 알게 된 뒤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답니다.
“저 진심으로 물에 들어가야 한다면 안했을 수 있어요(웃음). 감독님이 ‘권상사’에 대해 주문한 건 멋진 품위였어요. ‘권상사’가 극중 장도리(박정민) 같은 동네 양아치가 아니잖아요. 전국구 밀수왕인데. 그런 멋을 요구하셨어요. 하지만 간혹 약간의 허술한 모습도 갖고 있는. 그런 게 합쳐지면서 ‘권상사’가 된 거 같아요. 잘못하면 되게 지루할 수도 있는데 감독님의 그림이 너무 뚜렷해서 다른 배우들과 좋은 케미가 나온 게 아닌가 싶어요.”
배우 조인성. 사진=아이오케이컴퍼니
조인성의 비주얼이야 두 말하면 잔소리에 불과하단 점 대한민국에서 모를 사람이 있을까 싶습니다. 그는 이번 ‘밀수’에서 악역에 가까운 배역을 맡았습니다. 하지만 너무도 멋진 그의 외모, 그리고 조인성이 해석하고 만든 ‘권상사’의 멋짐 때문에 다른 캐릭터 그리고 극 흐름이 순간 휘청거리는 느낌까지 받게 됐습니다. 조인성은 ‘그럼 안되는데’라고 농담을 하면서도 ‘절대 멋지게 보이려 한 건 없다’고 손사래를 쳤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매력적으로 보이면 절대 안됐어요. 그리고 실제로 그런 마음이 들어가서 촬영에 들어가면 사달이 나게 마련이에요. 욕심이 들어가 버리잖아요. 욕심을 부리면 안되는 게, 이번에는 제가 주인공이 아니잖아요. 멋지게 보여야 할 건 김혜수 염정아 두 선배죠. 그 두 분이 나와 박정민 고민시 등 모든 후배들을 멋지게 보이게 키워 주신거에요. 내 생각에 주인공은 공기에요. 우리가 공기가 없으면 죽잖아요. ‘밀수’는 그 공기가 너무 좋았어요.”
배우 조인성. 사진=아이오케이컴퍼니
‘밀수’를 보면 가장 흥미를 끌만한 포인트는 김혜수가 연기한 ‘조춘자’와의 로맨스 분위기 입니다. 분명 두 사람은 로맨스가 맞는 듯합니다. 보고 있으면 딱 그렇습니다. 하지만 조인성은 ‘아니다’고 선을 딱 그었습니다. 극중 두 사람의 관계 포인트, 즉 ‘비즈니스’로 해석을 해 달랍니다. 그건 ‘조춘자’를 연기한 김혜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둘의 합이 만들어 낸 케미, 그게 바로 관객들에게 ‘로맨스’로 비춰진 듯합니다.
“에이 그걸 로맨스라고 하기엔 그렇죠(웃음). 그냥 일종의 화학작용이 만든 효과나 후광 같아요. 보는 사람의 마음이나 시선이 그렇게 해석을 하게 된 듯해요. 혜수 선배나 저 모두 멜로가 가능한 포지션이었고, 그런 남녀가 만나서 관계를 만들어 내니 그렇게 보일 수 있겠다 싶어요. 그냥 제 생각과 그때의 감정은 ‘비즈니스’였어요. 권상사가 춘자에게? 로맨스가 1도 없다고 할 순 없지만 글쎄요(웃음). 비즈니스의 감정이 더 많지 않았을까 싶어요.”
배우 조인성. 사진=아이오케이컴퍼니
‘밀수’에서 조인성이 담당한 또 다른 역할은 액션입니다. 그는 극중 제일 강하고 센 액션을 소화합니다. ‘권상사’의 오른팔로 등장한 배우 정도원도 멋들어짐을 온 몸에 장착하고 그 액션에 함께 했습니다. 이 장면을 통해 ‘밀수’가 류승완의 영화라는 인장을 강하게 찍고 있었습니다. ‘밀수’가 개봉되고 나서 조인성의 해당 액션을 ‘잘생김’이라고 부르는 평이 온라인에 쏟아질 정도였습니다.
“당시 ‘무빙’ 촬영을 해야 해서 액션 스쿨에서 짧고 굵게 준비해서 끝냈어요(웃음). 이건 제 팁인데, 뭐든지 동작을 좀 크게 하면 화면에 좀 멋지게 나와요. 그리고 이번만큼은 부모님이 주신 제 유전자의 힘도 좀 받은 느낌이 나요. 하하하. 뭔가 길어서 보는 맛도 좀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저보다 도원이 형이 좀 많이 그 장면에서 주목을 받았으면 해요. 그 몸 만드는데 진짜 고생 많이 했어요. 애꾸로 나오는 도원이 형의 액션도 많이 봐주세요. 그리고 액션 자체를 워낙 잘하는 형이라.”
배우 조인성. 사진=아이오케이컴퍼니
조인성은 1981년생, 올해로 42세. 그와 비슷한 세대를 살아온 입장에서 그의 나이 먹음이 놀랍고 또 묘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그 역시 어떤 느낌으로 하는 질문인지 알 것 같다고 웃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주인공 또는 착하고 선하고 정의로운 배역들만 도 맡아 해 왔습니다. 하지만 30대 후반으로 들어서면서 장르적으로 배우 조인성의 활용도가 높아지고 연기의 폭도 좀 더 넓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밀수’처럼 주인공에서 조연으로 자리를 이동하는 느낌도 받게 되는 듯합니다. 조인성은 ‘다 맞는 말이다’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일단 아주 잘 나이를 먹고 있는 것 같고 잘 먹는 중인 거 같아요. 당연히 예전에는 저 자신이 더 확실한 신뢰를 받기 위해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규모가 있는 작품이나 주인공 역할만 찾고 선별하면서 출연해 왔어요. 내가 이런 배우고 내가 이런 가치가 있단 걸 우선은 증명을 해야 하잖아요. 근데 지금은 이제 그런 제 가치의 증명을 할 시간은 지났다고 생각해요. 저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하는 시기는 지난 거죠. 이제는 제가 제 연기의 가치를 좀 더 넓힐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멋지게 잘 나이 먹으며 관리해 보려고 합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