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속이 편치 않았습니다. 자꾸 배에 가스만 차는 것 같았고, 끼니를 걸러도 속은 계속 더부룩했습니다. 평생 빈혈 따위는 모르고 살았는데, 앉아있는 데도 어지러움을 느끼는 횟수도 부쩍 늘었습니다. 신생아처럼 하루에 9시간 자는 일상이 반복됐습니다. 변도 예전같지 않았어요.
자궁에서 2kg 넘는 근종을 제거하자 아랫배가 쏙들어가고, 몸이 개운해졌다는 지인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자궁근종일까, 내 몸 안에 나를 갉아먹는 '무언가'가 자리를 잡은 것은 아닌지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식생활을 되돌아보니 그럴만도 했습니다. 덥다는 핑계로 배달음식에 인스턴트를 즐겨먹었습니다. 자리에 한 번 앉으면 잘 일어나지도 않았어요. 퇴근해 집에 오면 가족들에게는 밥 한상을 차려내주고는 지쳐 '비빔면'이나 '라면'같은 맵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만을 찾았습니다. 하루 24시간동안 물도 겨우 1~2잔 밖에 마시지 않았고요.
병원을 가야하나 잠시 망설였지만 먼저 야채부터 섭취해보았습니다. 저녁식사 대신 당근과 양배추, 오이를 우걱우걱 씹기 시작했어요. 이 가운데서도 쌉싸름하면서도 달고, 가끔 알싸하게 매운 양배추 씹기에 주력했어요. 하나하나 씹다보니 배도 부르고 나도 모르게 건강해지는 느낌이었어요. 혼자서 4분의1통 가까이 먹었는데요. 기분 좋은 포만감이었습니다.
봄비가 내리는 4월14일 울산 남구 시청 정문입구에 양배추꽃이 활짝 피어 있다. (사진=뉴시스)
양배추를 씹은 지 이틀 정도 되었을까요. 슬슬 신호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해우소에서 오랜만에 기분좋은 쾌감(?)을 느꼈습니다. 배 속에 자리했던 가스도 제거됐습니다. 만성피로와 어지러움증 같은 증상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소화불량과 복부팽만은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어요.
양배추를 먹고 소화불량 문제를 해결한 후 몸이 가장 정직하다라는 교훈을 얻었어요. 한 유명모델이 '세상에서 내 몸만큼 정직한 것이 없다. 몸은 (운동)한대로 돌려준다' 라고 했잖아요. '투입 대비 효과가 나오는 것은 몸밖에 없구나'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사회생활에서도 '양배추' 같은 만능효약이 있으면 좋겠어요. 사회생활에서 양배추처럼 불순물에 가득찬 내장을 청소해줄 만병통치약은 없는 걸까요. 한때 무엇이든 노력하면 못 이룰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무엇이든 1만 시간만 투입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 등 일정기간 노력하면 어떠한 성과든 이룰 수 있다는 류의 격언이 난무하잖아요.
하지만 현실은 아니거든요. 내 노력 여하와 상관 없이 성과가 날 수도, 안 날 수도 있으며 성과가 나더라도 남이 알아주지 않으면 소용 없더라구요. 나의 생각과 다르게 타인의 욕망과 이기심, 목적이 뒤엉키며 당초의 목적과 의도는 왜곡되어집니다. 일련의 격언들은, 노력을 다하지 않으면 그에 대한 성과나 결과도 기대할 수 없다는 엄중한 경고로까지 느껴집니다.
인간과 사회에 치여 사회를 등지고 떠나간 사람들도 이런 마음일까요. 인간과 사회관계에서 양배추 같은 만병통치약을 바라는 허무맹랑한 발상을 할 만큼 나 자신도 지친 걸까요. 최대한의 노력도 해보지 않고 불만이나 늘어놓는 투덜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이도 있겠지요.
그러거나 저러거나. 세상에서 마음대로 되는 건 제 한 몸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양배추나 씹어야겠습니다. 속이라도 편하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