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유미 기자] #. A씨는 지난해 2월 가족을 사칭한 보이스피싱범에게 신분증 사진을 보낸 후 본인도 모르는 대포폰이 개통됐습니다. 피싱범은 대포폰과 악성 애플리케이션, 신분증 사본을 이용해 4억원짜리
기업은행(024110) 정기예금을 해지하고 2억원을 인출해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3500만원 예금담보대출까지 받아갔간 것으로 확인됐는데요. A씨의 다른 거래 은행인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에서도 1800만원을 빼갔습니다.
신분증 사본인증 피해자들이 금융감독원에 분쟁조정을 신청했습니다. 피해자들은 금융사들이 비대면 거래시 위·변조 신분증이나 신분증 사본을 식별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며 피해 보상을 요구했습니다.
피해자 모임 공동대책위원회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8일 '비대면 신분증 사본인증에 기한 전자금융실명거래 오류사고의 권리구제를 위한 금감원 분쟁조정신청' 기자회견을 진행했습니다.
이날 피해자 29명이 신청한 분쟁조정액은 24억5330만원입니다. 여신피해액 13억1557만원(33건)에 대한 채무부존재 확인, 피해환급금을 제외한 나머지 재산피해액 11억3773만원(305건) 반환과 반환일까지의 연 6% 상사법정이자를 청구했습니다.
신분증 사본인증 피해자들은 공통적으로 신분증 사본으로도 실명 확인이 진행되면서 범죄에 노출됐습니다. 현재 금융사 애플리케이션은 신분증 인증 외에도 여러 단계의 휴대폰 인증 등을 거치지만, 피싱범이 피해자 명의로 휴대폰을 개통해 원격 조종 등으로 인증 절차를 거치면 피해자도 모르는 새 돈을 빼돌릴 수 있게 됩니다.
많은 금융사 앱이 하나로 연결된 오픈뱅킹을 통해 범죄가 이뤄질 경우 피해가 커질 수 있습니다. 피해자들은 금융사가 비대면 거래시 위·변조 신분증이나 신분증 사본을 식별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상거래탐지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한 피해자는 "피싱범이 대출 중개 플랫폼을 통해 여러 곳의 대출을 시도했는데 사고예방시스템이 작동한 일부 금융사에서만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박정경 피해자모임 공동대책위원회 대표는 "현행법 어디에도 신분증 사본 노출이나 유출 책임을 묻는 법리는 없다"며 "신분증 사본인증 오류사고 피해자들에게는 '고의·중과실'이 있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한편 기업은행 관계자는 "비대면 실명확인 가이드라인에 따라 금융결제원의 실명인증 시스템을 통해 신분증 확인을 했고, 이상거래탐지시스템으로 일부 피해를 막기도 했다"며 "이후 자체적인 사본 검증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해명했습니다.
8일 오전 금융감독원 앞에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신분증 사본인증 피해자 모임 공동대책 위원회'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습니다. (사진=신유미 기자)
신유미 기자 yumix@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