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하늬 기자] '묻지마 흉기난동' 사건이 잇따르면서 형법상 정당방위의 기준이 논란이 되고있습니다. 정당방위를 인정할 것인가를 두고 법원의 판결과 국민의 법감정 사이에 간극이 크기 때문입니다.
다만 법원에서 정당방위가 쉽게 인정되지 않아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는 비판이 큰 만큼 최근 일련의 사건들을 계기로 '정당방위'에 대한 해석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갖습니다.
연이은 흉기 난동 사건 발생과 살인 예고 등으로 국민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호신용품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6일 서울 서초구의 호신용품 판매점인 대한안전공사에서 관계자가 각종 호신용품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뉴시스)
까다로운 정당방위 요건, 60년간 대법원 정당방위 인정사례 14건뿐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형법 제21조가 규정한 정당방위 구성요건은 자신 또는 타인의 법익이 부당하게 침해받을 경우, 방위 행위에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경우, 부당한 침해행위가 현재 발생할 경우 등 입니다. 형법에서 위급한 상황에서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지키기 위한 행동에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경우 처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하는 겁니다.
하지만 정당방위로 인정받는 건 쉬운일이 아닙니다. 예고된 위험을 대비한다거나 상대방을 방어 목적 이상으로 폭행하면 정당방위로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정당방위를 이유로 상대방을 살해한 피의자를 검찰이 불기소 처분하거나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는 일은 한국의 사법 관행상 극히 드문 일입니다.
56년 전 성폭행을 시도하려는 가해자의 혀를 깨물었다는 이유로 유죄선고를 받은 최말자씨가 정당방위를 인정해달라며 부산지방법원에 재심을 청구하기도 했습니다. 정당방위에 대한 법원의 해석이 엄격해 사실상 피해자를 가해자로 바꿔버리는 사례가 수두룩합니다.
김병수 부산대 법학연구소 교수의 '정당방위의 확대와 대처 방안' 논문에 따르면 1953년 형법 제정 이후 60여년의 역사 속에서 대법원이 정당방위를 인정한 사례는 고작 14건에 불과합니다.
김 교수는 "법원이 정당방위를 확대하지 않고 과거처럼 그 인정범위를 좁게 본다면, 시민들이 부당한 침해로부터 자신을 정당방위로 보호하기 어렵다"며 "억울한 피해자가 생겨 국민의 권리가 침해된다"고 지적했습니다.
14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분당 흉기 난동 사건'의 피의자 최원종(22)이 10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수정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범인 제압과정 물리력 행사 어려움, 경찰 '정당행위·정당방위' 적용
경찰도 마찬가지입니다. 범인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물리력 행사 때문에 과잉진압으로 경찰관이 소송에서 패소하는 등 처벌받은 사례도 많습니다.
경찰청이 지난 2011년 마련한 '폭력사건 정당방위 처리지침'에는 누군가 해치려 할 때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것, 상대의 폭력을 막기 위한 최소한도의 폭력, 상대의 피해 정도가 자신의 피해 정도보다 적을 것 등에서만 경찰관의 정당방위가 인정됩니다.
정부는 경찰의 '정당행위·정당방위'를 적극적으로 검토키로 했습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흉악범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물리력을 행사하다 오히려 경찰이 입건되는 등 피해를 보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당행위·정당방위'를 적극적으로 검토해 적용할 것을 검찰에 지시했습니다.
한 장관은 "법령과 판례에 따르면 흉악범을 제압하는 과정에서의 정당한 물리력 행사는 정당행위·정당방위 등 형사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 위법성 조각사유에 충분히 해당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김하늬 기자 hani4879@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