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중고서점이 생기면서 휴일 일과가 달라졌습니다. 시간이 날 때면 꼭 가족들과 중고서점에서 각자 책을 구입하고, 근처 카페에서 맛있는 음료를 흡입하며 방금 사온 책을 읽습니다. 같이 사는 어린이들에게 '서점'과 '책'에 관해 좋은 기억과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골라온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토를 달지 않습니다. 그냥 네모난 모양의 '책'이면 다 허용하는 편입니다. 중고서점은 아이들에게 어린시절 추억 중 하나가 될 거예요.
일년에 수십만권씩 쏟아지는 책들 속에서 신간을 고집하기보다, 그보다 조금은 늦더라도 남의 손을 한번 탄 중고책을 사는 편입니다. 조금 낡고 해져 모양은 상했을지 모르지만, 그 안에 담긴 저자의 지혜와 생각은 그대로니까요. 중고서점이라고 그리 싸지만은 않아요. 평균 책값의 50% 이상의 가격이 책정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정가보다 할인된 가격이라 꽤 사들이는 편입니다.
서울 시내 한 대형서점. (사진=뉴시스)
요즘에는 300페이지도 안되는데 1만5000원 넘는 책이 많아요. 종이 질은 지나치게 빳빳하고, 고품질에, 글씨는 또 왜 그리 큰가요. 양장본도 아닌데 하드커버에 준할 만큼 두껍고 현란한 옷을 입은 책도 많아요. 미국이나 유럽의 책처럼 간단한 표지에 다소 빽빽하더라도, 한 페이지에 글이 많으면 종이를 덜 써도 되고, 책도 덜 무거울텐데 아쉬움이 많습니다.
남의 손때가 묻은 책을 구입하는 데 거리낌은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A작가의 책만은 반드시 새 책으로 구입합니다. 일관되고 정제된 글을 쓰는 것이 얼마나 정신을 갈아넣는 일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때문일 겁니다. 회사원이 아닌 전업작가로서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려면 저작물의 저작권은 작가들의의 월급이 됩니다. A작가가 생계의 걱정을 하지 않고 풍요로움 속에서 오직 창작물에만 집중해, 양질의 저작물을 다량으로 생산해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8권 정도 그의 책을 구입했는데요. 그때 그때 마음과 내 상황에 따라 그의 책을 꺼내보곤 합니다. 잠시 가출 나간 정신을 다잡아주기도 하고, 때로는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하나의 '거울'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그의 책은 고루하지 않으면서 잔잔하고, 또 발칙한 구석도 많아요. 에세이, 여행기, 산문집, 소설까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지만 무엇하나 지루한 법이 없어요.
그의 책을 한 권 두 권 세 권 읽어나갈수록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고, 더 나은 사람, 좋은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새로운 생각과 의견에 귀를 기울이며 말하기보다는 듣는 데 집중하려하고, 공정하고 성실한 태도의 중요성을 배웁니다. A작가의 책은 '나'라는 사람을 다듬어 줍니다.
넘쳐나는 새로운 책, 새로운 제품 속에서 리사이클링(순환)의 미덕을 실천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빌려보거나 헌 책을 사는 대신 새 책을 구입해보는 건 어떨까요. 혹은 나에게 큰 울림을 준 책이 있었다면 주변 사람에게 그 새 책을 선물함으로써 그것을 공유하고 나눠볼 수도 있겠지요. 영상문화가 대세로 자리잡고 오디오북까지 등장하며 도서가 홀대 받는 시대입니다. 영상의 짜릿함도 좋지만 글과 책이 주는 울림과 전율을, 다음 세대들도 누렸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