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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 매어 못 쓴다 했는데…
(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 법원, 강제동원 공탁 잇달아 기각…대법원은?
입력 : 2023-08-25 오전 6:00:00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에 위치한 미국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미국 외교의 꿈이 이뤄졌다 (뉴욕타임스), 8월 19일은 17일과는 다른 날이 될 것 (람 이매뉴얼 주일 미 대사), 인태지역의 지정학을 바꾼 8시간 (조태용 국가안보실장) 어느덧 세상의 맨 앞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
 
8월 18일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 결과를 놓고 ‘웅장한’ 상찬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럴 만합니다. 캠프 데이비드 ‘원칙’, ‘공약’ ‘선언’ 대로 굳어진다면, 동북아 안보환경에 지각 변동을 일으키는 일대 사건이자, ‘한미일 군사동맹’의 시작점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큽니다. 3국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이번 합의들의 불가역성을 매우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하거나 한국에서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뒤집을 수 없도록 대못을 박겠다는 겁니다.
 
포린폴리시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의 최대 공로자, 윤석열 대통령”
 
이같은 ‘격동’은 윤석열정부가 올인한 한일 ‘화해’가 그 밑바탕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아시아 차르’라 불리는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조정관은 “지난 몇 달간 한국과 일본 정상들이 이끄는 숨 막히는 외교 현장을 지켜봤고, 이들의 용기있는 결단을 봤다”고 한 대로입니다. 미라 랩 후퍼 NSC 인도태평양 전략국장은 얼마 전 별세한 윤 대통령의 부친 윤기중 명예교수가 젊은 시절 교환학생으로 일본에서 공부한 경험을 거론하기도 했습니다. 이같은 개인사가 윤 대통령에게 영향을 줘, 한일관계 개선에 나서게 만들었을 거라는 겁니다. 미국의 대표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지난 17일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의 최대 공로자가 윤석열 대통령이라고 명토 박은 것도 이런 이유들 때문일 겁니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적극 조응하기는 했지만, ‘감독’은 역시 미국입니다. 지난 3월 한국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배상 문제 해법’을 발표한 직후,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이게 바로 내가 다른 국무부 고위 동료들과 함께 이 중차대한 협력관계에 그 많은 시간을 들이고 집중한 까닭“이라고 생색을 내고, 램 이매뉴얼 대사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지난 1년간 한미일 외교관들이 40차례 이상 만났다“고 밝힌 것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한일 화해→한미일 3각 동맹을 통한 중국 견제 강화’라는 미국의 대전략은 이제는 잘 알려진 것처럼, 조 바이든 대통령이 부통령이었던 오바바 행정부 때부터 추구해온 숙원사업입니다. 뉴욕타임스가 ”미국 외교의 꿈이 이뤄졌다”고 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3자 변제 공탁 기각, 대법원 가면 바뀔까?
 
그런데 이 ‘대전략’의 밑동이 그리 튼튼해 보이지만은 않습니다. 윤석열정부가 한일관계 개선의 전제로 내세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제3자 변제안’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주지법, 광주지법, 수원지법이 잇달아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이 낸 배상금 공탁을 기각해버린 겁니다. 이렇게 될 줄 몰랐던 걸까요? 이 정부의 그 많은 법조인들이 말입니다
 
전국 6개 법원에서 같은 사건이 진행되고 있는데, 결론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입니다. ‘제3자 변제’와 관련, 민법 469조가 너무나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①채무의 변제는 제3자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채무의 성질 또는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제3자의 변제를 허용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이해관계없는 제3자는 채무자의 의사에 반하여 변제하지 못한다.
 
재단이 항소하고 있기 때문에 최종 결정은 대법원에서 가려질 수밖에 없겠으나 뒤집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현 정부가 대법원을 ‘보수일색’으로 바꾼다 해도 “관습헌법상 서울이 수도”라는 차원의 ‘신박한’ 논리가 나오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 생존원고 대리인들과 피해 가족이 지난 7월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서 '제3자 변제 공탁에 대한 피해자 측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법원 기각 과정에서 재단이 보인 모습은 어안이 벙벙하기까지 합니다. 일본 가해 기업이나 한국 정부 가운데 어느 쪽이 판결금을 내도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이의신청서를 법원에 낸 겁니다. 심지어 정부의 강제징용 문제 해법이 무용지물이 되면 국익에 현저하게 반한다고까지 했습니다. 이 정도면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위한 재단이라는 존재 자체를 망각한 것 아닙니까?
 
“원고들은 미지급 임금이나 보상금을 청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위자료를 청구하고 있는 것”이라는 대법원 판결문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조차 의문입니다. “불법 행위로 인한 정신적 고통이나 피해에 대한 배상금”인 위자료를, 뭐가됐든 ‘돈’만 받으면 그만인 문제로 격하시켜 버린 겁니다.
 
캠프 데이비드에서 나온 ‘한미일 3자 협의에 대한 공약’은 ‘위기 시 한일간 신속 협의’를 ‘공약’했습니다. 정부 설명대로 형식상 의무(duty) 사항은 아니지만, 내용을 보면 “위기 시 협의 의무(duty to consult)를 맹세하는 것(take a pledge)”이라는 미국 정부 설명에 더 가깝습니다.
 
한미동맹의 문서적 표현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언제든지 당사국 상호 협의”(2조), 미일상호방위조약 “언제라도 협의”(4조)와 같은 반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중대한 문제를 윤석열정부는 ‘속도전’도 이런 '속도전'이 없게 처리해버린 겁니다.
 
 ‘국제 대못’을 박은 형국이지만, 혹시 또 모를 일입니다. 아무리 급해도 바늘 허리 매어 못 쓴다고 했습니다. 법원의 '3자 변제안' 기각이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대못을 뽑을 틈새가 될지도요.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2018년 대법원 확정 판결을 근거로 계속해서 일본 가해기업의 국내 재산에 대한 압류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황방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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