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단발머리 깡패.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윤종빈 감독이 실제 깡패를 섭외해 온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아주 유명한 일화입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정말 진지 했습니다. 보통 영화 속에 등장한 해당 배우의 뛰어난 연기력을 칭찬하는 수단으로 이런 루머 아닌 루머가 만들어 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는 정말 달랐습니다. ‘진짜 깡패’라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극중 하정우의 오른팔로 등장한 이 배우. 단 한 번도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던. 그런데 극중 깡패 연기를 ‘연기를 한다’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게 소화를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루머가 삽시간에 진짜로 굳어졌습니다. 그 뿐이 아니었습니다. 영화 ‘이웃사람’에선 절대 함께 하고 싶지 않은 음침한 살인마로 등장했습니다. 정말 그럴 것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에선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사람을 죽이는 사이코패스로 등장합니다. 근데 이 배우, 놀라운 건 ‘웃길 줄도’ 안다는 겁니다. 필모그래피 절반 가량이 코미디입니다. 액션도 출중합니다. 이쯤 되니 데뷔작에서 퍼졌던 ‘진짜 깡패’란 소문. 정말이었나 봅니다. ‘진짜 연기 깡패’였습니다. 얼마 전까진 순박한 대학생 ‘삼천포’로 전국민에서 ‘응사앓이’를 일으키게 만든 주인공. 그리고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2까지. 굳건한 큰형 느낌으로 든든한 뒷배경이 돼 준 박범구 중사까지. 배우 김성균의 존재감은 그 이름 그대로 ‘진짜 깡패’ 수준이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 2’의 박범구 중사로 다시 돌아온 김성균과 만났습니다.
배우 김성균. 사진=넷플릭스
‘D.P. 2’ 관람평은 시즌1과 마찬가지로 호평 일색입니다. 대부분의 남성들에겐 악몽 그 자체였을 법한 군 생활에 대한 아픈 기억과 부조리를 끄집어 내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라고 힘줘 말하는 그 모습에 모두가 통쾌함을 느끼면서 또 가슴 저림을 느끼기도 한답니다. 그 중심에 주인공 안준호(정해인)와 한호열(구교환)이 있고 그들 뒤에 든든한 큰형 박범구 중사가 있습니다. 김성균은 특유의 큰형 미소로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시즌1에서도 그랬지만, 이거 ‘내가 해도 되나’ 싶을 정도였어요. 너무 멋진 사람이잖아요. 누군가도 그랬고 어떤 분의 평도 봤는데. ‘박범구 중사 같은 분 한 분만 있었어도 내 군생활이 그렇게 지옥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란 말을 봤어요. ‘참된 어른’의 표본 같은 인물 이잖아요. 내 주변에 꼭 있었으면 하는 그런 사람. 의지하고 싶은 사람. 그런 사람을 표현하려고 했죠. 근데 아무리 연기지만 그런 인물을 표현한다는 게 너무 부끄러웠어요. 김성균이 그럴 자격이 있나 싶었죠.”
김성균의 첫 촬영은 육군본부 수사관 ‘오민우 준위’를 만나 심문을 당하던 장면이었습니다. 그 당시 장면을 찍으면서 정말 여러 감정이 들었답니다. 시즌1 이후 다시 만난 이 세계관,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과 다시 함께 하게 된 박범구 중사에 대한 묘한 느낌이 들었답니다. 특히 첫 장면 이후 정말 소름끼쳤던 경험도 있었다며 웃었습니다. 바로 자신을 취조하던 선배 배우 정석용 때문이었답니다.
배우 김성균. 사진=넷플릭스
“일단 첫 장면이 석용 선배 만나 취조 당하는 장면인데 ‘지금 D.P에 내가 다시 들어왔나’ 싶은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순간 살짝 현실과 작품의 경계에서 되게 신기했던 감정적 경험을 했었어요. 그리고 임지섭 대위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데 갑자기 눈물 날 것 같았어요. 그 이후부턴 순차적으로 찍어 나갔는데 내가 다시 D.P를 만났구나 싶었죠. 그리고 석용 선배를 보시면 다들 놀라실 거에요. 굉장히 서민적인 연기를 많이 하시는 분이잖아요. 근데 첫 장면에서 첫 대사에 오싹함이 밀려오는데, 그냥 예전 저 있던 부대의 악몽 같던 선임이나 부사관 분들이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었어요. 그냥 배우가 아닌 연기도 아닌 군인 그 자체가 돼 들어오시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도 소름 끼쳐요(웃음).”
김성균은 D.P. 시즌1과 시즌2 모두에서 중심 축입니다. 당연히 주인공은 안준호-한호열 두 콤비이지만 김성균이 연기한 ‘박범구 중사’역시 시즌1에 이어 시즌2에서도 중심이고 또 파트너도 있습니다. 안준호에겐 한호열, 한호열에겐 안준호 였듯이. 박범구 중사에게도 있습니다. 바로 임지섭 대위입니다. 시즌1에선 앙숙으로 티격태격했지만 시즌2에선 애증의 관계이자 동료로 한 단계 더 격상된 모습을 보입니다. 김성균은 손석구에 대해 깊은 감사를 전했습니다.
“손석구는 시즌1에선 사이가 안좋은 설정이라 잘 안 들여다 본 게 사실이에요. 근데 이번에는 사이가 좋으니 잘 봤죠(웃음). 촬영 쉬는 동안 차 안에서 얘기를 많이 나눴는데, 종이를 꺼내서 자신이 생각한 걸 적어 필기한 걸 보여주는 데 그냥 시커멓더라고요. ‘형, 이런 건 어때요’ ‘이렇게 하면 더 좋을까요’라고 묻는 데 너무 부끄러웠어요. 캐릭터가 그래서 설렁설렁해 보이잖아요. 내가 아는 배우 중에 가장 열심히 준비하는 한 명입니다. 심각할 정도로 열심히 준비를 하더라고요.”
배우 김성균. 사진=넷플릭스
김성균은 크게 웃으며 갑자기 ‘손석구와 제가 그래도 공통점은 있는 것 같다’고 다시 웃었습니다. 바로 두 사람 모두 마동석의 주먹에 나가 떨어졌던 경험을 갖고 있었습니다. 앞서 손석구는 ‘범죄도시2’에서 빌런 ‘강해상’을 연기하면서 마지막에 처참하게 무너졌습니다. 김성균은 ‘이웃사람’에서 마동석의 주먹에 나가 떨어지면서 ‘지구상에서 가장 힘 센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마동석’이란 명언을 만들어 낸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이번 ‘D.P 2’에서 오민우 준위를 연기한 정석용에게 똑같이 두들겨 맞아 나가 떨어지는 연기를 합니다.
“저희가 누군가에게 얻어 터지는 건 이력이 좀 났나 봐요. 하하하. 일단 동석이 형에게 겁나게 두들겨 맞았잖아요(웃음). 근데 이번에는 석용 선배에게 엄청나게 맞아요. 이제 둘 다 맞는 건 아마 국내 최고 전문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말 현장에서 열심히 맞았습니다. 하하하. 사실 맞는 것보다 맞고 나서 날라가서 부딪치는 게 더 기술인데 둘 다 거의 자해 수준으로 몸을 날리면서 장면을 살리려고 노력했죠. 뭐 맞는 장면 있으면 많은 연락 부탁드립니다. 하하하.”
배우 김성균. 사진=넷플릭스
결과적으로 ‘D.P 2’의 마무리는 숙연하면서도 또 선택하기 쉽지 않은 결과로 마침표를 찍게 됐습니다. 모든 행위의 책임을 박범구 중사가 짊어지고 가는 것으로 마무리가 됐습니다. 사실 마무리란 말도 좀 그랬습니다. 마무리는 모든 것이 끝이 났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D.P. 2’는 마무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겨우 뭔가 해봤습니다. 박범구는 최소한의 책임감을 느끼고 선택을 했습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그래도 흔적은 남을 것’이란 대사가 모든 걸 설명합니다.
“범구가 아마 ‘책임감’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군대의 모든 부조리, 그 부조리에 대해 자신도 어른으로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본 거겠죠. 책임은 뭔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어떤 식으로든 조직 생활을 하다 보니 책임을 져야 할 밑에 사람이 생긴 거고, 자연스럽게 책임에 대한 무게를 느낀 것이고. 그게 대단하다고 보진 않습니다. 그걸 외면하고 회피하는 게 창피한 거죠. ‘수통 하나 안 바뀌는’ 군대의 실상을 말한 시즌1 마지막의 ‘조석봉 사건’을 기억하면서 시즌2가 그나마 한 걸음 더 나아갔다는 것. 이제라도 바뀌었으면 합니다. 하나씩 그렇게.”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