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가족여행을 떠나기 전 늘 타이어 공기압 체크를 합니다
. 바람 빠진 타이어로는 안전하게 갈 수 없고 사고가 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 운전자로서의 당연한 체크입니다
.
욕심부려 타이어 공기를 꽉 채우는 것도 위험합니다. 타이어가 지면에 닿아 이리저리 눌려도 내부 공기가 스트레스(압력)를 받지 않을 정도로 적절한 공간을 남겨두는 게 중요합니다. 지면과의 마찰이 있을 때 그 마찰을 능히 소화해낼 정도의 여유. 그게 필요합니다.
현 정부에 전하고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5년이란 장거리 운행. 아직 반도 못갔습니다. 그런데 타이어가 너무 팽팽합니다. 아주 작은 자극(돌맹이)으로도 터질 듯해 보입니다.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선 타이어에서 약간의 바람을 빼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이 정부의 언론관, ‘빵빵한 타이어’ 같습니다.
뉴스토마토는 올해 초 ‘무속인 천공’의 대통령 관저 선정 개입 의혹을 보도한 바 있습니다. 대통령실측은 보도 기자 4명을 포함 총 6명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명예훼손으로 언론인을 고발했지만 명예훼손 당사자가 누군지 최근까지 언급 조차 없었습니다.
사실 현 정부의 이런 언론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가장 유명한 사건은 대통령 비속어 논란 당시 MBC의 전용기 탑승 불허가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많습니다. 불편한 보도는 무조건 ‘가짜뉴스’랍니다. 통제의 기운이 너무 팽팽합니다. 이런 분위기의 영화 한 편이 떠오릅니다. ‘브이 포 벤데타’입니다.
가상의 시간 속 영국, 국민들이 정부로부터 강력한 통제를 받습니다. 정부와 다른 사상을 가진 여주인공이 어딘가로 끌려갑니다. 그때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쓴 ‘V’가 나타나 그를 구해줍니다.
V의 정체, 흥미롭습니다. 그는 전체주의를 표방한 통제 국가의 생체 실험을 통해 탄생한 돌연변이입니다. V는 ‘독재의 산물’이면서 반대로 ‘독재의 정화’를 위해 스스로 답을 얻은 인물로 묘사됩니다. 자신을 만든 세대의 끝을 통해 다음 세대가 영위할 새로운 세상의 가치를 끌어내는 일종의 모멘텀으로서 존재가치를 보입니다.
영화 마지막 시민 모두가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국회의사당을 향해 돌진합니다. 통제의 통치를 하던 정부에 맞서 모든 시민이 묵언과 비폭력으로 낡은 세대의 마지막을 선언합니다.
가이 포크스는 1605년 가톨릭 탄압에 대항해 영국 국회의사당 폭파를 주도한 인물입니다. 당시 왕당파가 영국 국교를 옹호하고 가톨릭과 청교도를 탄압하자 왕과 왕당파 모두를 한 번에 살해하려 했던 주동자입니다. 현대 사회에선 ‘저항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가이 포크스는 우리 사회에도 존재합니다. 촛불 시위, 대통령 탄핵, 조국 사태 등을 거치며 가이 포크스는 대한민국에도 여러 번 소환됐습니다.
공정과 상식을 화두로 내세운 새 시대에 대한 기대감, 분명 있었습니다. 이젠 실망 조차 사치처럼 느껴집니다. 공정과 상식이 통제와 억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였나 싶습니다. 언론계 종사자로서, 터지기 일보 직전의 팽팽한 타이어를 달고 달리는 차에 탄 느낌입니다.
역사가 말합니다. 통제가 강할수록 저항 역시 강해진다고. 타이어에 가득 찬 공기를 빼야 할 때입니다. 이런 것도 가르쳐 줘야 하는 게 참담합니다.
김재범 대중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