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관은 생도대장 이용 장군과 참모장이었다. 그분들은 모두가 일본 지원군 출신이었다. 그래서인지 상당히 위압적이었다.
“민영구 제독과 김관오 장군을 어떻게 아는가?” 참모장이 나에게 물었다.
“그 어른들은 저희 집안과는 중국에서 살던 시절부터 세교가 있었던 분들입니다”라고 주눅이 들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다면 귀관의 집안도 소위 독립운동을 한 집안이란 말이야?” 상당히 경멸조의 반문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나는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답했다. 내심 뜨거운 분노가 치밀었다. 이 사람들은 독립운동가에 대해 상당히 적의를 갖고 있는 듯했다.
이종찬 광복회장(87, 육사 16기)이 1956년 육군사관학교 입학 면접장 경험을 회고한 대목입니다. (<동아일보> 2014년 8월 30일)
그는 “면접시험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이 말을 부모님께 해야 하나, 아니면 나 혼자 새겨야 하나 고민하였다. 내가 모욕을 받았다는 사실을 부모님이 알게 되면 얼마나 실망할 것인가”라며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에 들어가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던 자들이 득세하여 장군이 되었고, 해외에서 목숨 바쳐 싸웠던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오히려 멸시를 당하는 이런 모순에 대하여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고 토로했습니다.
‘홍범도 장군 흉상 육사 퇴출’ 사건을 보면서 이 회장은 60여 년 전 그 육사 면접장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는 2005년에 여천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를 처음 만들고 2018년까지 이사장을 맡아 홍범도 장군을 기리는 사업을 벌여왔습니다. 그는 또 일제강점기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대표적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로도 유명합니다.
2018년 3월 1일에 육사가 충무관 앞에서 홍범도 장군과 이회영 선생을 비롯해 김좌진, 이청천, 이범석 장군 흉상 제막식을 할 때, 이 회장이 앞줄 가운데 선 모습은 지극히 당연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5년이 지난 지금, 뜬금없이 홍범도는 공산주의자라며 육사에서 철거하고, 이회영 선생 등 네 분 독립영웅 흉상도 육사 내 다른 곳으로 이전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 회장이 이를 극력 반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고, 그 반대 논리도 지극히 당연한 내용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까마득한 육사 후배 출신 국회의원은 이 회장을 “대한민국 정체성을 져버린 광복회장”이라며 사퇴를 요구했고, 그는 다음 국방장관으로 가장 유력하다고 합니다.
게다가 국방부는 육사의 정신적 뿌리가 신흥무관학교가 아니라 국방경비사관학교라고 공식 선언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광복군과 독립군이 국군의 정신적 뿌리라는 건 인정했는데, 그렇다면 육사는 국군 외부에 있는 존재인가요?
지금은 그 고뇌가 더욱 깊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국민 1%나 찬성할까”라는 말까지 나오는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를 육사와 국방부가 밀어붙일 수 있는 그 힘이, 어디에서 나올까요? 윤석열 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해 "(이전의 구체적인 결론 등을) 규정짓지는 않겠다"면서도 "한번 국무위원들도 생각해보자, 무엇이 옳은 것이냐"고 말했다고 합니다.
황방열 선임기자 hb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