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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1947 보스톤’, 세 남자의 뜨거웠던 진심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영웅’ 손기정-남승룡, 그리고 그들의 후계자
입력 : 2023-09-14 오전 7:00:24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올림픽의 꽃 마라톤’. 올림픽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경기.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된 올림픽의 의미에서 마라톤은 단순한 경기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고대 페르시아와 아테네 사이의 전쟁 그리고 그 전쟁의 승자인 아테네의 승전을 알리기 위해 뛰어가 전한 전령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1회 올림픽부터 채택된 경기입니다. 단순하게 달린다는 것에 대한 의미, 그 이상이 마라톤에 담겨 있습니다. 그 의미, 고 손기정 선수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삶 전체가 마라톤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위해 달리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 나라 잃은 망국의 슬픔을 달림으로서 달랬습니다. 스스로를 달랬고, 주변을 달랬고 나아가 우리 민족을 달랬습니다.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을 목에 걸고 머리에 월계관를 쓰고 시상대 제일 꼭대기에 섰지만 그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망국의 슬픔은 올림픽 챔피언이란 영광도 42.195km를 달린 끝에 얻어낸 나 자신과의 싸움에 대한 승리로도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였습니다. 고 손기정, 아니 손 기테이는 그렇게 금메달을 목에 걸고 가슴의 일장기를 월계수 화분으로 가린 채 고개를 떨굽니다. 이 사진 한 장은 전 세계 근현대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분명한 역사입니다. 이 사진에서부터 ‘1947 보스톤은 시작합니다.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올림픽 마라손(당시의 표기명은 마라톤이 아닌 마라손) 챔피언이 된 손 기테이. 그는 일장기를 가린 죄로 일제에 의해 강제로 선수 생명을 박탈당합니다. 그리고 광복이 됩니다. 손 기테이에서 손기정으로 자신을 찾았지만 조선은 또 한 번 변란에 휩싸입니다. 미 군정 치하의 국가. 아니 국가가 아닌 난민국.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을 맞이했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 나라였습니다. 영화 속 손기정(하정우)의 울분은 그 시절의 아픔과 고통을 고스란히 대변합니다.
 
영화 '1947 보스톤'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해방 이후 그저 민족의 영웅이란 허울 좋은 세상의 부름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꼴 좋은 행세나 하던 손기정. 분이 풀리지 않는 그 마음은 그저 하루하루 술로만 풀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미국 보스톤 마라톤 대회 출전을 위한 대한민국 국가대표 감독직 제안이 옵니다.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 함께 해 시상대에서 동메달을 목에 건 남승룡(배성우)이 그를 꼬드깁니다. 남승룡이 차갑게 식어 버린 손기정의 마음을 데우는 데 쓴 미끼는 바로 서윤복(임시완). ‘손기정 마라톤대회에 출전해 우승한 실력자입니다.
 
영화 '1947 보스톤'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생활이 곤궁한 서윤복은 달리는 것에만 집중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아픈 어머니를 대신해 집안 생계를 책임집니다. 삶을 바쳐 병간호를 하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윤복은 손기정 남승룡과 함께 마라톤에 모든 것을 겁니다. 자신의 삶을 바쳐 그토록 되돌아가고 싶던 어머니와의 행복했던 시절로의 여행을 꿈꾸듯. 그 모습에서 손기정은 잃었던 자신의 열정을, 남승룡은 여전히 들뜷는 선수로서의 마지막 뜀박질을. 세 사람은 각자의 꿈을 품고 의기투합, 보스톤 마라톤 대회 출전을 위한 훈련을 돌입합니다.
 
영화 '1947 보스톤'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하지만 뜻하지 않은 난관에 봉착합니다. 일단 그 당시 대한민국은 국가로서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은 1948년입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미군정 치하. 즉 난민국이었습니다. 손기정과 남승룡 그리고 서윤복은 출전이 불가했습니다. 단 출전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했습니다. 당시로는 상상을 넘어서는 거액의 보증금, 그리고 미국 국적의 보증인이 필요했습니다. ‘1947 보스톤에선 우여곡절 끝에 보증금이 마련됐고, 당시 미국에 거주하던 한국 교민 백남현(김상호)이 등장합니다. 출전의 길이 뚫리지만 미국까지 가는 길은 험난하기 그지 없습니다. 미군의 군용기를 타고 일본을 거쳐 괌 그리고 하와이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뒤 다시 보스톤까지. 무려 10여일이 넘는 대장정이었습니다.
 
영화 '1947 보스톤'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미국 보스톤에 도착한 세 사람은 코스 답사와 훈련을 거듭, 경기에 출전해 결국 우승을 차지합니다. 실제 역사에서도 서윤복 선수가 보스톤 마라톤 우승을 거머쥡니다. 영화적 설정이 아닌 실제 역사입니다.
 
1996은행나무 침대를 시작으로 1999쉬리그리고 2004태극기 휘날리며1000만 흥행 그리고 한 장의 사진에서 출발한 2011마이웨이까지. ‘1947 보스톤을 연출한 강제규 감독은 한 인물의 일대기와 장대한 서사를 구축하는 데 탁월한 심미안을 가진 거장입니다. 그의 연출력은 이번 ‘1947 보스톤에서도 빛을 냅니다. 손기정 남승룡 서윤복 세 사람이 만들어 가는 42.195km의 마라톤 같은 삶의 여정은 관객들과 함께 페이스를 조절하 듯 강약강약으로 호흡하며 달립니다.
 
영화 '1947 보스톤'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1947 보스톤의 하이라이트인 실제 보스톤 마라톤 경기는 전체 러닝타임 중 극히 일부인 15분 정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15분이란 짧은 시간 속에 압축된 힘은 마지막 결승선을 위해 응축된폭발력을 과시하듯 관객들의 호흡을 최고조로 끌어 올립니다. 이미 그리고 당연히 서윤복 선수의 우승을 알고 있지만 보는 관객들의 호흡은 터질 듯 가쁘게 헐떡여집니다. 여담으로 극중 서윤복 선수가 막판 레이스 도중 갑자기 튀어 나온 세퍼드 한 마리에 걸려 넘어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영화적 설정, 다시 말해 극적 설정을 위한 장치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장면, 실제 당시 경기에 있었던 실화입니다. 연출을 맡은 강제규 감독 조차 너무 영화적이라 넣을지 말지 고심했던 장면 이랍니다. 하지만 실화의 힘을 믿고 밀고 나갔답니다. 그 힘은 마지막 결승선을 넘어 손기정 남승룡 서윤복 세 사람의 환호를 통해 오롯이 피부로 느껴집니다.
 
영화 '1947 보스톤'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1947 보스톤은 스포츠 영화입니다. 하지만 드라마이기도 하고 코미디이기도 하며 삶을 담아낸 시대극이기도 합니다. 어떤 수식과 어떤 표현을 쓴다고 해도 이 영화는 모든 것을 담아낼 그릇이 됩니다. 나라 잃은 망국의 슬픔이 있고, 그 슬픔에 대한 울분이 넘치며, 넘치는 울분 속에 응축된 분노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노가 터져서 모두의 환호를 이끌어 내는 카타르시스가 됩니다.
 
영화 '1947 보스톤'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더불어 해외 여행은 고사하고 비행기조차 타본 적 없는 게 뻔한 어려웠던 시절, 미국이란 이역만리 타향에서 겪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이 영화에는 꽤 많이 담겨 있습니다. 마냥 슬프고 또 마냥 울분과 분노만 쌓아 놓은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그저 사람 사는 얘기이고 그 많은 삶 가운데 손기정과 남승룡 서윤복, 이들 세 사람의 뜨거웠던 그 시절을 담아낸 것뿐입니다.
 
영화 '1947 보스톤'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1947 보스톤은 뜨거움이 가득했던 꿈에 대한 도전이자 승리의 서사입니다. 충분히 그리고 당연하게 느껴야 할 당당하고 자부심 강한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입니다. 개봉은 오는 27.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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