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오른쪽) 북한 국무위원장이 13일(현지시각)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 후 소유스-2 로켓 발사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무한한 우정"과 "금지구역 없는 협력", 동맹관계 정도에서나 쓸 수 있을까요? 화끈한 표현입니다. 지난해 2월 4일 베이징 동계올림픽 계기로 베이징에서 만난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두 나라 간의 우정엔 한계가 없고(no limits), 협력하지 못할 영역이 없다"는 공동선언문을 내놨습니다. 미국을 핵심으로 한 서방이 북대서양조약기구를 확장하고, 오커스(AUKUS)와 쿼드(Quad)를 통한 압박을 강화하자 중국과 러시아가 손을 잡은 것이었습니다.
중·러, '무한우정' …우크라 전쟁으로 무색
'무한한 우정'이라는 호언은 곧바로 무색해졌습니다. 그 직후인 24일 러시아가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시 주석은 대외 '중립'을 유지했고, 러시아의 무기 지원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우크라이나 전 발발 뒤인 지난해 3월 당시 친강 주미 중국대사도 공개적으로 '시진핑-푸틴' 정상회담 분위기와 다른 소리를 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에는 금지 구역이 없지만 마지노선은 존재한다"며 "이 마지노선은 유엔 헌장의 원칙이자 공인된 국제법과 국제관계의 기본 원칙으로서 우리가 따르는 행동 지침"이라고 한 겁니다.
그러다가 올해 3월 20일 시진핑 주석이 모스크바 크렘린으로 푸틴 대통령을 방문해 서로를 "친애하는 친구"라 부르며 우호관계를 과시했습니다. 하지만 시 주석으로서는 미국이 유례없이 압박해오는 상황에서, '공동의 적'인 미국에 맞서 러시아를 끌어안아야만 하는 상황 변수가 작용한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흔쾌하지 않다는 얘깁니다.
올해 4월 초에 푸충 유럽연합 주재 중국 대사가 미국 뉴욕타임스 인터뷰를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중국은 러시아 편이 아니면, 일각에서 이를 고의적으로 왜곡하고 있다고 밝힌 것은, 이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는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의 '무한한 우정' 표현도 "수사에 불과하다"고 무질렀습니다. 친강과 푸충의 말을 합치면, "무한한 우정"과 "금지구역 없는 협력"이라는 외교 수사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휘발돼 버린 겁니다.
북·러 간 공개 군사협력,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처음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이 13일에 러시아 아무르주(州)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전격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한반도 안보는 물론이고, 현재 국제정치 제1현안인 러-우크라 전쟁 판도에 직접 영향을 주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국제적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크렘린이 "양측은 공개되면 안 되는 민감한 영역에서 협력할 것"이라고만 밝혔을 뿐, 정상회담 합의문도 없었고 기자회견도 하지 않았습니다. 회담 의제와 관련, 노출된 직접 언급은 '북한의 인공위성 제작을 도울 것인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푸틴 대통령이 "우리는 이 때문에 이곳에 왔다. 북한 지도자는 로켓 기술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고, 그들은 우주를 개발하려 하고 있다"고 말한 것이 전부이지만, 북한이 갈급한 정찰위성과 ICBM관련 기술 이전을 시사한 것이어서 파장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북한이 극히 취약한 공군력 지원도 거론됩니다. 물론 북한의 포탄과 러시아의 정찰위성·ICBM 기술이 저울추가 맞지 않고, 러시아가 이같은 첨단기술을 타국에 이전해 준 적이 없다는 점에서 실제 어느 정도 실현될지 불투명하기는 하지만, 최소한 문이 열린 것은 분명합니다. 북·러 간 공개적인 군사협력은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처음입니다.
중국은 북·러 전격 정상회담에 거리를 두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중국 국경 CCTV와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단신 인용보도 정도만 할 뿐, 거의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당국 외교부 대변인이 "북한 지도자의 러시아 방문은 북·러 사이의 일"이라고 말하는 게 전부입니다.
북·러 밀착을 통한 '북중러 대 한미일'구도는, 북한과 러시아는 바라지만 중국이 원하는 그림은 아닙니다. 미국과 패권경쟁 중인 상황에서, 명분을 잃게 되면서 더 수세에 빠지게 되고, 북한에 대한 영향력도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제안했다는 북중러 연합훈련은 웬만해서는 어렵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컨벤션 센터(JCC)에서 열린 한중 회담에서 리창 중국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덕수 총리, 23일 항저우 아시안게임 가나
우리로서는 중국을 적극 활용해야 하고, 윤석열정부도 관련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중국은 우리에게 안보와 경제분야에서 모두 중요한 대상이고, 현재 상황에서는 안보 분야에서 의미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중국도 경제 활성화를 위해 한국이 필요하고, 한미일 밀착이 더욱 강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2일 "한중일 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고 한 것은 의미가 큽니다. 추진 방침도 그렇지만, 이 정부 들어서 문서와 발언 모두에 한'일'중 순으로 표현해왔던 것을 대통령이 직접 한'중'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 전날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이 "시진핑 방한을 성사시켜보겠다"며 "올해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대하셔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한 것도 주목할 만합니다. '평생 직업 외교관'답지 않은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한중일 정상회의 성사 위한 두 가지 전제조건
당장 다음 주인 23일 시작하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이를 위한 무대가 될 만합니다. 정부도 보통 아시안 게임에 장관급을 보내던 전례와 달리 이번에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참석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전임 문재인정부도 공을 들였지만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끝내 무산됐던 시진핑 주석의 방한이 성사되려면 우선 한중일 정상회담부터 열어야 합니다. 이 과정이 쉬울 수 없습니다. 중국이 내걸 전제조건은 두 가지 정도로 예상됩니다. 지난 8월 18일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에서 채택한 '선언'(공동성명)과 ‘원칙’의 대만 문제와 남중국해 관련 부분에 대한 입장정리입니다. 대만 문제는 역대 중국 정부 모두 '핵심이익 중의 핵심이익'이라며 예민해하는 대목입니다. 또 하나는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입니다. 중국은 일본이 방류를 시작하자마 일본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초강수를 뒀습니다.
북·러간 군사협력 문제가 대두되면서 동북아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 고착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 관건은 중국, 정확히는 한중관계에 달려 있는 형국입니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