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게 무슨 뜻이고?"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최신 유행어가 남발하는 자막을 한동안 지켜보던 아버지가 어렵게 제게 물었습니다. 이미 모르는 단어들이 수없이 지나갔고, 참다못해 아버지가 한번 물어보신다는 것을 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TV 프로그램을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요즘 TV를 보면 부모님께선 모를 유행어의 향연이 벌어집니다. 같은 화면을 보고는 있지만 자막이 부모님과 저의 이해도에 거리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이 불편했습니다.
적어도 저한테는 자막이 많은 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자막이 꼼꼼하지 않으면 허전함을 느낄 정도로 저는 자막에 익숙한 세대입니다. 어느 날은 이어폰을 갖고 나오지 않아 고민하다 OTT를 켜 화면만 봤는데 이해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자막이 섬세하게 채워주더라고요. 청각장애인들도 이해하기에 어렵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마저 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자막이 토해내는 단어들은 못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제가 나이가 들어서인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지만 요즘 유행어들은 예전 유행어들보다 꽤나 어려운 것 같습니다. 유추가 어렵고 그 유행도 빨리 변합니다. 그나마 저는 새로운 것들을 접할 기회가 많아 또래에 비해 유행어를 좀 더 아는 편이지만 함께 대화를 하다가 유행어를 모르는 주변인들은 대화에 끼기조차 어려운 구조입니다. 어렵게 유행어 몇 개 익히더라도 며칠 지나면 또 새로운 유행어가 탄생합니다. 유행의 주기가 빠르다보니 오죽하면 유행어 테스트가 수능보다 어렵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입니다.
이들은 대화에서 '소외'되기 일쑤입니다. 공부를 하느라, 콘텐츠를 즐기지 않아서, 관심사가 달라서 유행어를 모르는데 그것이 곧 대화와 이해의 소외로 이어집니다. 자막은 이런 소외에 일조합니다.
자막이 트렌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는 십분 공감합니다. 평범한 그림도 재치 있는 자막을 만나면 감각 있는 프로그램으로 변하죠. 자막이 프로그램의 성패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흔히 짤이라고 불리는 캡처화면에도 자막은 어김없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죠.
그래도 자막은 '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막에서 남발하는 신조어를 시청자 대다수가 이해한다면 그 자막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 반대라면 자정이 필요한 거죠. 특정 타깃만을 좁게 겨냥한 프로그램이 아니고, 온가족이 TV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시간대에 대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라면 지나친 조어 사용은 지양해야 합니다. 대중이 알지 못하는 유행어의 지나친 남용은 세대 간 간극을 벌일 뿐이죠.
자막의 발전으로 인해 K콘텐츠들의 재미가 늘어난 것을 부정하고 싶진 않습니다. 자막 센스에 놀랄 때도 많으니까요. 자막이 주는 쾌감을 남녀노소가 함께 즐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자막이 더 이상 소외를 낳지 않도록 고민이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