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9월 13일(현지시각)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하면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단둥·옌지=뉴스토마토 황방열·한동인 기자] "지금 북한은 러시아와는 군사, 중국과는 경제협력 병진 노선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말 중국 옌지에서 만난 중국의 한 한반도문제 전문가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대외전략 노선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그는 "코로나19 이전에 거의 매년 북한을 방문했는데, 김 위원장이 집권한 이후에 매년 달라지고 있고 좋아지고 있다"고 전하면서 "'북한 붕괴' 주장은 현실을 전혀 모르는 얘기"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연구활동을 한 경험이 있는 그는 "윤석열정부는 가치외교를 강조하지만,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는 그런 대화는 하지 않고 경제논의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민감한 한중관계를 감안해 익명을 전제로 인터뷰했으며, 다음은 일문일답 전문입니다.)
-한국에는 중국이 북한-러시아 정상회담(9월 13일) 등을 통한 북러 간 밀착을 떨떠름하게 생각한다는 시각이 많습니다.
북한과 러시아는 이웃 국가이기 때문에 두 나라 관계가 좋아지는 것을 중국이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북한과 러시아는 여기에 중국이 동참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중국이 3국 중 가장 부유하고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북중러 3자 관계에서 핵심은 중국입니다. 북러만으로는 파급 효과에 한계가 있지만 만약 북중러 세 나라가 뭉치면 파급 효과가 전혀 다릅니다.
그런데 한미일이 캠프 데이비드를 통해 사실상 준동맹 체제로 발전한 상황에서 중국의 고민은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립 구도가 형성되면 중국이 미국과 직접 대결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점입니다. 중국 입장에서도 신중할 수밖에 없는 거죠. 향후 국제 정세의 변화 추세를 보면서 판단을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중국 정부는 냉전 분위기를 극대화할 생각은 아직까지는 없는 것 같습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 참석 차 중국을 방문한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9월 23일(현지시간) 중국 항저우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양자 면담을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중국은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를 원치 않는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중국이 한중일 협력을 꺼내는 이유 중 하나도 새로운 냉전 구도가 형성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한중 관계가 좋지 않다는 인식 속에 한덕수 국무총리와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만났습니다. 한중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을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한중일 정상회의에 시진핑 주석이 갈 가능성은 없어 보이고, 리창 총리가 갈 수는 있을 겁니다. 한국은 시진핑 주석과의 회담을 원하고 있지만 앞으로의 상황 전개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 내 학자나 전문가들은 시 주석의 방한에 대한 반대 의견이 많습니다. 현 상황에서 시 주석이 방한해서 중국이 얻을 수 있는 게 뭐냐는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중국에 우호적이지 않은 정책과 행태들을 보여주는 상황에서 방한하는 것은 오히려 중국에 부정적 효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중일 정상회의와 한중 정상회담 성사 과정에는 △오는 10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중 과정에서 중국과 러시아 간에 어떤 논의를 하느냐 △11월 말로 예정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시 주석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나느냐 △내년 1월 대만 선거 등 세 가지 변수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시진핑 주석과 리창 총리가 한국에 우호적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이는 윤석열정부가 중국을 강하게 압박한 결과라는 시각이 있는데요.
완전히 오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 정부는 한국 정부에 '앞으로 한국과는 협력보다는 위기관리 측면이 더 높다'고 얘기했습니다. 중국의 대다수 전문가들은 한국이 중국과 미국의 복잡한 구도 속에서 균형 정책, 미국·중국 두 나라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 가는 것이 한국에 가장 부합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윤석열정부의 미국 일변도 정책이 분명히 잘못됐다는 것에 대해 학자들 모두가 이견이 없습니다.
"중국, 러시아 관계 악화… 글로벌 중추국가 가능한가?"
-윤석열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윤석열정부가 말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인태 전략)과 '글로벌 중추국가'는 사실상 이명박정부의 대외정책을 본뜬 것입니다. '대담한 구상'도 마찬가지구요. 윤석열 대통령의 정책은 앞으로 훨씬 더 큰 후폭풍을 가져올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한쪽에 기울어진 정책을 계속하면 오히려 한국이 고립될 수도 있습니다.
미국과 서방의 인태 전략의 핵심은 중국을 배제하는 건데, 한국은 중국을 포용한다고 합니다. 출발점부터 맞지 않는 겁니다. 미국과 맞춰서 해야하는 데 논리적으로 모순입니다. 한국의 인태 전략에는 아프리카와 중동도 다 포함돼 있는데, 한국이 글로벌 파워 국가도 아니고 뭘 할 수 있습니까? 결국 한국이 얘기하는 인태전략은 실질적 의미가 없는, 말 잔치 같습니다. 또 세계적 대국인 중국, 러시아 관계를 악화시켜놓고 어떻게 글로벌 중추국가가 되죠?
한국이 계속 민주·자유·인권 등 가치외교를 강조하면 중국과는 앞으로 더 이상 얘기할 의미가 없어집니다. 한중 수교 때 벌써 두 나라의 정치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말자고 했는데, 지금 와서 이러는 건 중국과 협력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미국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과 한국을 끌어들이기 위해 가치외교를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미국은 중국과 그런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경제 얘기를 하고 있죠. 이렇게 하는 게 과연 한국의 국익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의문입니다.
-북한이 러시아에 대해서는 군사 협력을, 중국에 대해서는 경제협력을 추구한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과거 북한은 핵-경제 병진노선을 표방했는데, 거기에 빗대보면 지금 러시아와는 군사, 중국과는 경제협력 병진 노선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 북한 양강도 혜산시 문화주택의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지난 9월 북한 신의주 앞 압록강 변에서 바지선이 골재를 채취하는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코로나 전까지 매년 방북 경험…북한 붕괴는 현실 모르는 소리"
-한국의 국가안보실장이 "북한에 대한 제재가 유지되고 윤석열정부가 북한에 강하게 나가면 현 정부 임기 안에 북한이 무너질 수도 있다"고 얘기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북한은 코로나 때보다 상황이 더 좋아졌습니다. 제가 코로나 발생 직전까지 거의 매년 북한을 방문했는데, 김 위원장이 집권한 이후에 매년 달라지고 있고 좋아지고 있습니다. 북한 붕괴는 현실을 전혀 모르는 가능성 제로의 한심한 얘기입니다.
지난 수년간 중국이 제재를 똑바로 안 해서 북한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는데, 답이 없는 얘기죠. 중국은 제재는 수단이지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목적이 돼버렸습니다. 그래서 왜 북한과 대화하지 않느냐고 중국이 얘기하는 겁니다. 과거 중국도 핵개발을 해봤고, 북한과 비슷한 제재경험이 있지만 이런 식의 제재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재를 계속한고 해도 일반 백성들은 힘들 수 있겠지만, 북한을 이끌어가는 엘리트층은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한국의 국가 이익이 무엇인지 그리고 지금 국제질서가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앞으로 중국과 미국 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한국 정부가 주관적 판단이 아니라 현실에 기초한 객관적 인식을 했으면 합니다. 두 번째는 남북 관계를 어떻게 하든 우호적으로 끌고 가야 한다는 겁니다. 남북 관계 악화는 한국의 외교공간을 줄이면서 불이익이 될 수 있고 한국이 고립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단둥·옌지=황방열·한동인 기자 hb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