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어떤 존재감을 논할 때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배우가 있습니다. ‘없어도 될 듯’한데 ‘그 배우가 아니면 그 배역이 의미가 없을 것’ 같은. 그런 배우. 대체적으로 ‘대체 불가’란 말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의미보단 좀 더 확장적인 개념으로 들어가야 할 듯합니다. ‘이 얘기를 위해선 그 배역이 반드시 필요한데, 그 배역을 위해선 이 배우가 꼭 필요하다’ 정도로. 물론 이 문장에서도 ‘반드시’란 강조가 들어갔지만 없어도 얘기를 끌어가는 데 큰 동력을 잃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반드시가 들어갔다는 건 그 배역과 그 배우가 이 얘기를 끌어가야 할 가장 걸맞는 힘을 낸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조건에 가장 부합하는 배우를 꼽아봤습니다. 이번 추석 연휴 개봉해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는 ‘천박사 퇴마연구소: 설경의 비밀’ 속 주요 캐릭터 가운데 ‘유경’을 연기한 배우 이솜. 그가 바로 이런 조건에 가장 딱 들어 맞는 배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가 출연한 여러 작품을 보면 그가 연기한 배역들. 이솜의 느낌과 아우라를 통해 정확하게 딱 그 배역으로 되살아 났습니다. 특히 ‘천박사’에서의 유경은 이 작품 전체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존재감으로 등장합니다. 이솜의 묘하고 또 이질감 넘치는 분위기가 ‘유경’과 맞아 떨어지면서 다른 배역들 그리고 전체 서사를 이끌어 가는 동력에 큰 힘을 보탰습니다. ‘천박사’에서 이솜의 존재감은 완벽한 맛에 풍미를 더하는 값비싼 향신료 한 방울 같은 느낌입니다.
배우 이솜. 사진=매니지먼트 mmm
웹툰 ‘빙의’가 원작인 ‘천박사’에서 이솜은 귀신을 보는 인물을 연기합니다. 영화 전체의 장르를 규정하는 ‘판타지’ ‘퇴마’ 소재의 중심에 그가 있습니다. 특유의 무표정하고 또 시크한 느낌이 ‘유경’ 캐릭터와 맞물리며 묘한 어울림을 만들어 냈습니다. 전체적으로 이솜에게 맞춤형 캐릭터처럼 설정되고 구현됐지만 엄연히 원작에도 존재하는 캐릭터입니다. 이솜이 아니면 이 배역을 누가할 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부터 말도 없고 눈빛으로만 보여주는 인물이라 부담도 있었어요. 비밀스럽고 신비한 느낌을 줘야 하는데 ‘내가 그런 느낌이 있나’ 싶어 고민이 좀 되기도 했어요. 여기에 중요한 키를 쥐고 있는 인물이라 생각이 되니 나름 전체 서사의 밸런스까지 담당해야 해서 만만한 배역은 아니겠다 싶었죠. 잘못하면 너무 만화적으로 흘러갈 수도 있겠다 싶어서 감독님의 의견에 많은 부분을 의지했어요.”
배우 이솜. 사진=매니지먼트 mmm
일단 외형적인 변화를 상상했답니다. 귀신을 보는 사람이고 판타지 장르이기에 보이는 것에 집중해야 했습니다. 안보이는 것을 보이는 것처럼 연기를 해야하고 그걸 관객들에게 시각화 시켜야 하니. 그런 지점이 어떻게 보여져야 할지. 그런 점을 고민하고 감독님과 그리고 스태프들과 의논하면서 하나 둘 만들어 갔습니다. 이런 조건들이 더해지고 또 더해지면서 유경이란 인물이 만들어져 갔습니다.
“제가 극중에서 귀신을 보는 순간이 있는데 표정으로만 그걸 만들어 낼 수는 없으니 시각적으로 뭔가 다른 게 있어야 할 듯했죠. 유경이가 악귀를 볼 때면 항상 눈이 붉은 빛으로 변하는 데 CG의 힘을 빌린 것도 있지만 렌즈를 꼈어요. 전 붉은색 렌즈는 끼면 보이는 것도 다 붉게 보이는 줄 알았는데 그러진 않더라고요 하하하. 눈도 그렇지만 자세히 보시면 제 헤어 빛깔도 붉은 빛이 감돌 거에요. 신비한 느낌을 줘야 하는 그렇게 했는데 스크린으로 보니 너무 괜찮더라고요.”
배우 이솜. 사진=매니지먼트 mmm
이솜은 사실 다른 지점보다 ‘천박사’ 출연을 결정한 이유로 제작사의 내공을 꼽았습니다. ‘천박사’의 제작사는 외유내강. 류승완 감독 그리고 류 감독의 아내인 강혜정 프로듀서가 이끄는 충무로 상업영화 제작사입니다. 너무도 유명한 제작사이며 충무로 대표 히트작을 연이어 선보이고 보유한 흥행 제작사입니다. 함께 출연한 강동원 역시 외유내강의 내공을 ‘천박사’ 합류 첫 번째 이유로 꼽은 바 있습니다. 이솜 역시 외유내강의 내공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외유내강’이란 이름만으로도 출연 결정을 내리는 데 어렵진 않았어요. 배우라면 이 회사와 작업해보고 싶은 건 당연하지 않을까 싶어요.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겸비한 흔치 않은 회사이고. ‘천박사’는 외유내강이 보유한 대중성이 가장 두드러진 작품이 될 것이라 확신했어요. 그리고 현장에서 느낀 이 회사의 내공, 정말 일사분란 했어요. 모두가 한 사람처럼 움직이더라고요. ‘이래서 외유내강이구나’ 싶었죠. 이래서 한 번 경험하면 또 하고 싶은 회사이구나 싶었고.”
배우 이솜. 사진=매니지먼트 mmm
함께 한 선배 강동원에 대한 얘기를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강동원은 같은 동료 배우들에게도 ‘배우들의 배우’ ‘연예인의 연예인’으로 꼽히는 동료이자 선배입니다. 두 사람은 사실 이번 작품 이전에 한 번 만났던 인연이 있습니다. 2013년 김지운 감독이 연출한 스크린X 프로젝트 단편영화 ‘더 엑스’에서 입니다. 상업영화에선 이번이 처음입니다.
“’더 엑스’에선 극중에서 마주친 적도 없고 현장에서 뵌 적도 손에 꼽아요(웃음). 그래서 이번에 정말 기대를 했는데, 제 기대 이상이었어요. 일단 사람 자체가 너무 좋으세요. 막 다가서기 힘든 그런 느낌일 줄 알았는데 정말 소탈하세요. 그래도 특유의 아우라 때문에 쉽게 못 다가섰는데 너무 친절하고 편하게 대해 주셨어요. 제가 낯을 많이 가려 친해지는 데 오래 걸리는 스타일인데, 선배님도 저랑 비슷한 성격인 듯 하시더라고요. 약간 코드도 맞는 느낌이었어요. 하하하.”
배우 이솜. 사진=매니지먼트 mmm
현장에는 아역 박소이도 있었지만 사실상 홍일점이나 다름 없는 이솜이었습니다. 그런데 딱 한 번 모든 남자 배우들이 술렁이던 순간이 있었답니다. 남자 배우들을 포함해 모든 스태프들까지. 그날만큼은 촬영장이 들썩이면서 자신은 찬밥 신세가 된 듯 했다며 웃었습니다. 바로 특별출연으로 등장한 블랙핑크 멤버 지수 때문이었습니다. 이솜은 ‘사실 나도 넋을 잃고 바라봤다’고 웃었습니다.
“처음 캐스팅 당시부터 지수씨가 출연한다는 건 알고 있었죠. 그런데 그렇게 예쁜 줄은 정말 실제로 보기 전엔 몰랐어요. 선녀 역할에 이 정도로 잘 어울리는 캐스팅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어요. 다들 진짜 넋을 잃고 바라봤고, 저도 그랬으니까요. 지수씨 같은 글로벌 스타가 출연해 줬으니 세계 시장에서도 우리 ‘천박사’가 좀 먹히지 않을까 싶은 기대감도 살짝 가져 보고 있습니다(웃음).”
배우 이솜. 사진=매니지먼트 mmm
정말 다양한 작품 다양한 캐릭터를 맡아 오면서 내공을 쌓아가고 있는 이솜입니다. 모델 출신이기에 우월한 피지컬로 여러 작품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 온 그는 ‘천박사’ 이후의 행보로 화끈한 여성 액션 영화를 꼽았습니다. 자신이 출연했던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에서 전도연이 연기한 주인공 ‘길복순’ 같은 배역을 한 번 해보는 게 당장 꿈꾸고 있는 바람이랍니다.
“진짜 전도연 선배님이 하신 그런 배역을 저도 꼭 해보고 싶어요. 너무 통쾌할 것 같아요. 막 이렇게 칼을 휘두르는 느낌이 진짜 시원시원할 것 같아요. 운전하는 것도 좋아해서 카체이싱도 제가 직접 해보고 싶어요. 진짜 정말 강렬한 여성 액션을 한 번 해보고 싶어요. 그런 작품 좀 많이 제안 주시면 너무 감사할 것 같아요(웃음). 요즘 히어로 장르가 인기인데 그런 것도 재미있겠네요. 하하하. 그냥 액션이면 다 좋을 것 같아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