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우여곡절을 겪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안정적으로 폐막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 보니 의아스러운 점 하나가 남았습니다. 표면적으론 현 영화제 집행부 내홍을 딛고 코로나19 이전 수준 오프라인 개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음에도 국내 영화 시장 위기론을 들춰 낼 수 있는 치명적인 오류를 드러낸 이번 영화제. 그 지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내년도 라인업 부제입니다.
16일 현재까지 국내 영화 시장에서 개봉하지 못한 이른바 ‘창고 영화’는 적게 잡아도 100편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난 추석 시즌 개봉한 ‘1947 보스톤’은 2020년 개봉을 준비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연이은 개봉 연기를 거듭한 끝에 무려 3년 만에 개봉을 했습니다. 현재까지 국내 메이저 투자 배급사 가운데 올해 개봉일을 확정한 중급 이상 제작비 규모 영화는 ‘서울의 봄’과 ‘노량: 죽음의 바다’ 정도입니다.
사진=뉴시스
부산국제영화제는 국내를 넘어 아시아 전체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이끌어 내는 거대 시장이 열리는 마켓이기도 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선 매년 국내 각 투자 배급사가 ‘OO의 밤’이란 행사를 통해 한 해를 마무리를 하고 이듬해 공개되는 신작 라인업을 발표하는 행사를 겸하기도 합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행사를 개최한 곳은 국내 메이저 투자 배급사 가운데 CJ ENM이 유일합니다.
이날 행사에서 주의 깊게 살펴볼 발언이 하나 있었습니다. 구창근 CJ ENM 대표는 ‘CJ ENM 위기설’을 불식시켰습니다. 구 대표는 국내 콘텐츠 시장 큰 손 CJ ENM의 영화 투자는 계속 될 것이라 단언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소비자들이 콘텐츠를 보는 시청 형태 그리고 그에 따른 비즈니스가 많이 변했단 점에서 투자 영화와 소비자들이 만나는 방식의 변화가 있지 않을까 생각은 한다”고 전했습니다. 스크린 집중이 아닌 OTT병행에 대한 풀이로 분석됩니다. 실제로 이날 티빙의 신작 예고편만이 공개됐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구 대표의 발언은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기생충’의 글로벌 신드롬 이후 뚜렷한 흥행작을 선보이지 못한 CJ ENM에 대한 시장의 우려 그리고 국내 영화 시장 위기론이 오버랩되는 분석에 대한 반박으로 풀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날 CJ ENM은 구 대표 외에 윤제균 CJ ENM스튜디오스 대표, 고경범 CJ ENM 영화사업부장, 최주희 티빙 대표가 차례로 무대에 올랐지만 내년도 스크린 신작 언급은 없었습니다.
그나마 CJ ENM만 행사를 진행했을 뿐, 다른 투자 배급사의 ‘부국제 행사’는 없었습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쇼박스, NEW 그리고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등 국내 메이저 투자 배급사 신작 공개가 전무했습니다.
반면 OTT의 득세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K-OTT의 밤’ ‘ACA G.OTT 어워즈’ 등에 많은 국내외 영화인들이 함께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K-OTT의 밤’은 티빙과 웨이브 왓챠 등 국내 OTT플랫폼이 주축이 된 행사였습니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뉴스토마토와의 전화 통화에서 “내년도 국내 메이저 투자 배급사의 스크린 투자 작품이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면서 “아직 10월 중순이다. 내부적으로 투자 논의가 진행되는 작품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예년의 부국제라면 각각의 투자 배급사가 흥행 선점과 라인업 공개를 통해 분위기를 선점하려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시장 전체 분위기가 최악이었다. 이 분위기가 내년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너무 큰 상황이다. 그 분위기가 반영된 올해의 부국제 행사 분위기가 시장 상황을 대변하는 것 아니겠냐”고 전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 성공적 폐막이 있었지만 그 속에 담긴 국내 영화 시장의 위기, 생각보다 더 심각해 보이는 수준인 듯합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