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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화란’ 홍사빈 “‘고맙습니다’, 100% 순간 애드리브”
“‘연규’, 아무것도 안하는 데 처연한 느낌···‘표현하지 말자’가 목표”
입력 : 2023-10-16 오전 7:00:23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일단, 필모그래피를 살펴봤습니다. 현재 포털사이트에서 검색되는 이 배우의 필모그래피는 영화가 6, 그리고 방송이 1편입니다. 사실 솔직히 말해서 익숙한 작품은 없습니다. 일부 작품에 주연이란 타이틀로 등장했지만 기억에 뚜렷하게 남아 있진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다른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배우, 언뜻 낯이 익은 듯하고, 또 반대로 내가 잘못봤나싶은 구석이 있기도 하고. 이건 배우로서 솔직히 말하면 치명타아닌가 싶습니다. 일단 작품에 몰입을 방해하게 하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이 배우의 연기를 보고 있는데 자꾸만 어디서 본 듯한데라는 어떤 한계선을 만들어 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게 풀린다고 해도 영화와 드라마를 통틀어 총 7편의 필모그래피를 가진 아직은 신인이라면 앞으로 뻗어나갈 가능성과 길이 무궁무진하단 점에서 긍정의 평가를 내려줄 만도 합니다. 그런데 이 배우, 앞서 언급했지만 출연작이 7편에 달합니다. 신인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작품 숫자입니다. 그리고 이 배우, 최근 출연한 작품이 지난 5월 개막했던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 받았습니다. 그곳에서 전 세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의 무명을 뚫고 이제 빛을 보려는 배우 같습니다. 그런데 이 배우, 그 영화를 보니 이제 빛을 보려는 것 같은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아직 터지지 않은 꽃 봉오리였을 뿐이었습니다. 영화 화란속 홍사빈을 보니, 내가 그를 몰랐다고 그가 그저 그런 무명의 터널을 뚫고 온배우라고 생각한 게 민망했습니다. 그는 그저 터트리지 않은 금빛 장미꽃 한 송이였습니다.
 
배우 홍사빈. 사진=샘컴퍼니
 
화란개봉을 앞두고 홍사빈과 만났습니다. ‘화란에서 홍사빈은 18세 소년 연규로 출연합니다. 홍사빈은 실제로도 외모가 꽤 어려 보였습니다. 실제 나이도 18세 언저리에서 한 두 살 많거나 혹은 적거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1997년생. 올해로 26세입니다. 실제 나이에 너무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극심할 정도로 소심해 보이는 듯한 전형적인 MBTI ‘I’에 해당하는 내향적 스타일 같았습니다. 이런 성향의 배우가 극단적으로 침잠하는 어둡고 컴컴한 느와르 장르에 녹아 들었단 게 신기했습니다.
 
처음부터 이런 극찬을 해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웃음). ‘화란은 회사를 통해 정보를 얻고 오디션을 보면서 최종적으로 합류가 결정된 작품이에요. 꽤 오랜 기간에 걸쳐 진행된 오디션인데, 마지막 오디션에선 4시간에 걸쳐 진행이 됐어요. 나중에 감독님에게 왜 그렇게 오래 보셨냐라고 물어보니 연기가 좋아서 오래 보고 싶어서라고 하셔서 눈물 날 뻔 했죠. 당시 제가 너무 간절했던 시기였던 게, 진짜 화분의 흙이라도 파 먹을 기세였는데 그 간절함이 연규와 닮은 듯 했다 하시더라고요.”
 
배우 홍사빈. 사진=샘컴퍼니
 
화란은 상당히 색깔이 진한 작품입니다. 이런 작품에서 극 전체를 이끌어 가는 주연의 자리. 당연히 부담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부담을 위해 홍사빈은 흙이라도 파먹을 듯한 간절함을 원동력으로 더 달려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주연의 부담보단 자신이 연기할 연규를 더 잘 표현하고 싶단 욕심이 앞섰던 것 같았답니다. 욕심은 때에 따라선 독이 될 수도 있지만 이번 화란속 홍사빈에겐 아주 몸에 좋은 약이 된 듯합니다. 최고의 보약 같은.
 
그냥 연규를 잘 표현하고 싶다. 그 생각뿐이었어요. 연규를 생각하면서 여러 이미지를 떠올렸는데 결과적으로 제가 찾은 건 아무것도 안하는 데 너무도 처연한 느낌. 그 느낌만이 저한테 남더라고요. 사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어려운 연기가 아무것도 안하는 데 처연하게 슬픈 감정이에요. 그걸 위해 일단 모든 욕심을 버렸어요. 진짜 처절하게 파고 들었는데 그 안에서 찾은 또 하나는 이 영화 안에서 내가 뭘 하려고 하면 더 안될 것이란 확신이었어요. 표현하지 말자. 그냥 내가 느끼는 그대로 가자. 그게 제가 연규를 만들어간 핵심이었어요.”
 
영화 '화란' 스틸.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화란속 가장 강렬한 인상을 꼽자면 단연코 극중 치건(송중기)과 연규의 첫 만남일 것입니다. 이 장면에서 모두가 기억하는 송중기의 모습이 아닌 치건그 자체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연출을 맡은 김창훈 감독은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이 장면을 두고 너무 황홀해서 오케이 싸인을 내기 싫을 정도였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그 장면에서 송중기와 함께 했던 홍사빈. 그는 여전히 그리고 인터뷰 당일까지. 송중기가 아닌 치건으로서 그를 기억하며 묘한 기억을 전했습니다.
 
극중에선 첫 만남이 중국집 장면이잖아요. 실제로 중기 선배님 첫 촬영이기도 했어요. 근데 사실 지금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설명하기 힘든 묘한 감정이 있어요. 제 기억에는 송중기선배님이 있는 게 아니라 치건만 존재하는데, 뭐랄까 되게 신경을 쓰이고 불편한 느낌이 남아 있어요. 그 장면 촬영에서도 힐끗힐끗 보이는 느낌이었는데 저 사람 뭐지싶은 신경 쓰임이 있었는데, 그게 고스란히 카메라에 잡혀서 너무 마음에 들었죠. 아마 중기 선배님도 그러셨을 거에요. 서로가 의식하면서도 의식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있어야 하는 장면이었는데. 그게 너무 잘 나타난 것 같았거든요.”
 
배우 홍사빈. 사진=샘컴퍼니
 
홍사빈은 촬영을 하면서 언제쯤 스스로가 연규안으로 빠져 들었다고 느꼈을까. 홍사빈은 화란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미세하지만 감정적으로 목소리 톤이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인터뷰 동안 화란연규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다시 화란연규로 돌아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배우가 작품을 끝내고도 배역에 빠져 나오지 못하는 그런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홍사빈은 온전히 이 배역을 이해한 것을 넘어 이 배역의 본질 자체를 꿰 뚫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연규 자체가 되는 것을 넘어 이 인물을 온전히 받아 들인 것. 그 느낌이었습니다.
 
말씀해 주신 느낌 그대로라면 딱 그 장면에서 그렇게 해야 될 것 같았어요. 뭐냐면 극중에서 연규가 치건과 매운탕 먹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때 치건이 연규의 얘기를 다 듣고 난 뒤 자고 가라라고 하잖아요. 정말 무심하게 툭 던지고 가는 얘기인데, 그때 제가 저도 모르게 되게 작은 목소리로 고맙습니다라고 해요. 그거 즉흥적인 100% 애드리브였어요. 그냥 저도 모르게 나온 말인데 감독님이 그걸 살려주셨어요. 중기 선배님도 현장에서 못 들으신 대사인데 나중에 칸에서 그걸 보시고 너무 칭찬해 주시더라고요. ‘진짜 잘했다.”
 
영화 '화란' 스틸.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화란이 공개된 뒤 수 많은 호평도 있었지만 반대로 극중 여성 캐릭터에 대한 기능적 활용을 지적하는 평가도 많았습니다. ‘화란에서 홍사빈과 관계를 맺는 인물은 그의 엄마(박보경)와 그의 이복여동생 하얀(김형서)입니다. 특히 하얀에 대한 일부의 평가가 박했습니다. 홍사빈은 결코 그런 평가를 내린 것에 동의하기 힘들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의 단언처럼 김형서가 연기한 하얀은 연규의 존재 자체를 유지시키는 단단한 기둥이고 그 기둥을 통해 치건과의 관계성에 힘을 싣게 하는 동력이기도 합니다.
 
하얀에 대해 말씀해 주신 그런 평가에 저도 완벽하게 동의해요. 너무 중요한 배역이고 그건 중기 선배님도 마찬가지로 평가하실 거에요. 그리고 형서 배우가 굉장히 실력이 있는 아티스트이시잖아요. 사실 전문적인 배우가 아니시니 뱉어 내시는 대사의 방식이 저희와는 꽤 달랐어요. 근데 그게 너무 값지게 다가오는 거에요. 이런 리액션과 이런 상대를 도대체 어디서 만날까 싶을 정도였어요. 형서 배우의 하얀이 있었기에 홍사빈의 연규가 더 빛을 낼 수 있었다고 전 확신합니다.”
 
배우 홍사빈. 사진=샘컴퍼니
 
홍사빈은 인터뷰 말미에 자신의 취향을 언뜻 공개했습니다. 실소를 터트리게 한 그의 취향, 피가 나오는 잔인한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란 점이었습니다. 그런 배우가 화란에서 그토록 배역과 달라 붙어 연기했다고 생각하니 그의 소속사 대표(실제 대표는 배우 황정민의 아내이지만 실제적으로 소속 배우들의 대표는 황정민)의 뿌듯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게 됐습니다.
 
“(황정민이) 특별하게 말씀은 안 해주셨는데 중기 선배님을 통해서 되게 좋아하셨다고만 들었습니다. 하하하. 제가 사실 피 총 칼 이런 걸 별로 안좋아 해요. 하하하. 오디션에서도 그런 점을 말씀 드렸는데 절 선택해 주신 것도 되게 의외이긴 하죠(웃음). 제 일이 배우이니 싫다고 안하고 좋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취향만 그런 건데. 하하하. 앞으로도 즐거운 마음으로 다음 작품을 행복하게 기다려 보겠습니다. ‘화란처럼 행복하고 좋은 기억을 남겨 줄 인연을 기다리는 시간이 아주 즐거울 듯합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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