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준익 기자]
삼성SDI(006400)가
현대차(005380)와 배터리 공급계약을 맺으면서 삼성그룹·현대차그룹의 '자동차 동맹'이 굳건해지고 있습니다. 기존 자동차 전장(자동차 전기·전자 장비)분야부터 최근 배터리까지 두 그룹간 협업이 다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데요. 향후 현대차의 자율주행차, 미래항공모빌리티(AAM) 등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서 협력 기대감도 커지고 있습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은 현대차에 디스플레이, 이미지센서, 차량용 반도체, 카메라 등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이재용(왼쪽) 삼성전자 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난 1월 16일(현지시간) 바라카 원자력 발전소 현장에서 열린 3호기 가동식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사진=뉴시스)
우선
삼성전기(009150)는 지난 9일 현대차·기아 1차 협력사로 선정됐습니다. 삼성전기는 현대차·기아 차량에 서라운드뷰모니터(SVM)용 카메라와 후방 모니터용 카메라 등 2종을 공급할 계획입니다. 삼성 계열사가 1차 협력사로 선정된 것은 현대차에 오디오를 납품하던 하만 이후 처음인데요. 삼성전기는 그동안 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그룹 계열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공급했다면 이제는 직접 납품하며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이번 협력을 계기로 삼성과 현대차 간 전장 동맹 결속은 더욱 단단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두 그룹은 1990년대 후반 삼성이 완성차 사업에 진출한 이래 갈등 관계에 가까웠습니다. 하만으로부터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카오디오를 공급받았던 현대차는 삼성전자가 2017년 하만을 인수하자 협력사를
LG전자(066570), 보스 등으로 교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2020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삼성SDI를 찾아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과 전격 회동하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이듬해에는 삼성디스플레이가 아이오닉 5에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를 공급하며 두 그룹 간 협업의 물꼬를 텄습니다. 하지만 협력 비중은 크지 않아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OLED 디스플레이 공급은 아이오닉 5의 디지털 사이드미러로 적용범위가 제한됐습니다. 센터페시아까지 아우르는 OLED 디스플레이를 공급한 게 아니었죠.
제네시스 GV60 실내.(사진=현대차그룹)
이후 삼성전자가 제네시스 GV60에 차량용 이미지센서를 탑재하면서 협업관계는 본격화됐습니다. 또 삼성전자가 2025년 현대차에 차량 인포테인먼트(IVI)용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엑시노트 오토 V920'을 현대차에 공급하기로 하면서 협력 범위는 한층 더 넓어졌습니다. 삼성디스플레이의 경우 차기 제네시스에 들어갈 OLED 디스플레이도 수주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앞으로 자동차가 '달리는 컴퓨터'로 진화함에 따라 삼성과의 협력은 더욱 다양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특히 차량용 반도체는 전기차를 비롯해 자율주행차 등 미래 모빌리티의 두뇌 역할을 하는 메인 부품입니다. 또 코로나19 이후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완성차 제조에 차질을 겪은 현대차 입장에서는 반도체 설계부터 생산까지 모두 가능한 삼성전자와의 협력은 이익이 될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 역시 현대차라는 대형 고객사를 확보해 수익 기반 확보와 함께 기술 경쟁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정 회장도 올 초 신년사에서 "현재 자동차에 200~300개의 반도체 칩이 들어간다면 자율주행차에는 2000개 정도가 들어간다"며 "우리는 자동차 제조회사지만 어떻게 보면 전자회사보다 더 치밀해지고 꼼꼼해져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밝혔습니다. 차량용 반도체와 그룹 내 관련 기술 내재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죠.
업계에선 현대차와 삼성의 다음 협력이 반도체로 진화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으며 삼성전자의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사업을 협력 대상으로 거론합니다. 차량용 반도체 파운드리 산업은 생산량이 적어 규모의 경제 달성이 어렵고 인증·투자비용이 높기 때문입니다. 현재 삼성전자는 테슬라가 2019년 개발한 자율주행 반도체도 생산하고 있습니다.
장홍창 한국자동차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미국·일본은 정부 주도로 파운드리 현지 공장을 유치하고 자국 내 노골적인 완성차· 팹리스(반도체 설계)·파운드리의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지만 한국은 자동차-반도체 업계간 협업이 미흡하다"며 "현대차와 삼성전자의 직접적인 협력 중개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황준익 기자 plusi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