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저녁, 홍익대 근처에서 강습을 듣고 나왔습니다. 날씨가 선선해 걷다보니 공룡 탈이 보이고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분장한 이들이 보였습니다. 오늘 코스프레 대회라도 열렸나 생각하며 날짜를 떠올려보니 이들은 핼러윈을 즐기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지난 27일 저녁, 홍대입구 지하철역 입장이 제한되고 있다. (사진=변소인 기자)
지난해 참사로 인해 올해는 핼러윈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을 거라 짐작했습니다. 그래서 잊고 있었는데 이날 홍대 부근에서는 각양각색의 코스튬 분장을 한 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이태원을 가보지 않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원래 이태원을 향하던 인원들이 홍대로 많이 넘어온 분위기였습니다. 이른 시간에도 평소보다 사람이 훨씬 많았습니다. 아마도 무거운 마음을 피해 이곳을 택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외국인들은 코스튬 분장을 한 이들과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며 핼러윈을 만끽했습니다.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삼엄한 경비였습니다. 이날 각종 조끼 차림의 사람들이 여기저기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요. 예년의 핼러윈 주간을 떠올려보면 경찰분장을 한 이들은 있어도 실제 경찰을 마주할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올해는 10보 걸을 때마다 경찰을 만날 정도로 경찰이 곳곳에 배치돼 있었습니다. 그들의 심각한 표정은 얼마나 중요한 임부를 부여받았는지 짐작케 했습니다. 사람이 없는 거리에서도 경찰은 주의를 경계하며 곳곳에 서있었습니다.
지하철역 홍대입구역에서 가장 번잡한 9번 출구는 지하에서 밖으로 나오는 이들만 이용할 수 있도록 조치했습니다. 지상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이들은 8번 출구를 이용해야 했습니다. 혼잡을 막기 위한 현명한 조처라고 생각됐습니다. 9번 출구 옆에는 기다란 경찰 펜스도 놓였습니다. 여차하면 펜스를 치기 위해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혼잡이 예상되는 골목에는 교통통제도 이뤄졌습니다. 자동차는커녕 오토바이조차 지나가지 못하도록 해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교통통제안내 표지판에는 '대규모 행사로 인해 혼잡하오니 27일~31일 12시~익일 3시에 통제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습니다.
경찰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마포구' 조끼를 입고 있는 이들은 상가를 돌며 보행에 방해가 되는 입간판 등을 이리저리 손봤습니다. '주차단속' 조끼를 입은 이와 '화재조사' 유니폼을 입은 소방관들도 바쁘게 오갔습니다.
무엇보다 업주 스스로 인원을 통제하겠다고 내걸기도 했습니다. 외국인들이 많이 오기로 유명한 한 바는 새빨간 배경에 노란글씨로 '인원통제'라고 적은 뒤 '핼러윈 주 안전을 위해 철저한 인원통제로 인해 수용 인원을 제한하고 있다'고 한글과 영어로 안내했습니다.
조끼들을 볼 때마다 지난해가 생각나 서늘한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작년에도 이렇게 철저하게 대비했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하니 비통하기도 했습니다. 별로 어렵지 않은 방법들이, 매뉴얼들이 다양하게 적용된 모습을 보니 원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사고 후 뒷북 행정,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는 대체 언제까지 계속돼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