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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죽은 연애 세포 되살리는 ‘싱글 인 서울’
‘싱글 라이프’ 즐기는 남자-싱글이지만 둘이 되고 싶은 여자
입력 : 2023-11-16 오전 6:23:15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장르적으로 ‘로맨틱 코미디’. ‘로코’라 부릅니다. 하지만 굳이 따지면 ‘코미디’라 부르기보단 설레임이 더한 얘기입니다. 이걸 좀 더 현실적으로 그리고 어느 한쪽으로 끝까지 밀어 붙여 표현하면 ‘불륜 유발 장르’라 붙여 보고 싶습니다. 일단 현재 ‘기혼’이라면 이 영화 관람,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합니다. 딱딱하게 굳어 부서지고 바스러져 가루가 된 ‘연애 세포’가 되살아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영화관을 나서면 과거 연인 사이였던 ‘그녀’ 혹은 ‘그 남자’의 전화 번호를 뒤적이고 싶을 정도로 자극적입니다. ‘미혼’이라면, 그리고 현재 연애 중이라면 더 심각합니다. 현재 뜨겁게 사랑하는 그 사람이 아닌 이전의 연인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래서 이 영화가 과거만을 집착하게 만드는 영화란 표현은 아닙니다. 사그라지고 바스러져 흔적도 없이 사라진 감성을 자극하는 이 영화만의 문법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극적’이라 표현했지만 우리가 아는 그런 ‘자극’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아는 그런 자극의 표현으로 보자면 이 영화, 건조하다 못해 심심하고 심심하다 못해 너무도 지극히 일상적입니다. 그런데도 이 영화의 호흡, 죽은 세포 하나하나까지 살려내는 시나브로 다가오는 심폐소생술처럼 ‘마법’스럽습니다. 그 흔한 키스신 하나 없지만(형식적인 키스신이 딱 한 번 등장하는데) 점차 데워지는 가슴의 온도가 스스로도 모르게 상승합니다. 가장 놀라운 점은 이 영화의 제목입니다. 지극히 혼자임을 강조하는 제목은 역설적으로 ‘혼자라서’ 좋은 게 아니라 ‘혼자라도’ 좋다고 말하지만 결국에는 ‘둘도 더 없이 좋을 것’이라며 당신의 머리와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 줍니다. 이제 이 영화에 빠져 볼 시간입니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지금 싱글이고 지금 이별했고 지금 누군가 생각나고 지금 그 사람이 보고 싶고 지금 혼자 임이 실증났다면. 당신은 ‘싱글 인 서울’을 봐야 한다는 신호입니다.
 
 
 
제목 ‘싱글 인 서울’, 책 제목입니다. 이 책 작가는 박영호(이동욱). 잘생긴 외모 빈틈 없는 실력, 그리고 멋들어지고 깔끔한 싱글 하우스에서 사는. 폼 나는 싱글 라이프를 즐기는 30대 중반 정도의 남성. 그의 싱글 라이프 예찬론은 거의 성경말씀에 가깝습니다. 고상하고 멋들어진 그의 삶은 누군가에겐 주책이고 또 없는 자의 자기 만족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럴수록 영호의 싱글 라이프는 확고 부동합니다. 그에게 싱글은 ‘가장 진화한’ 삶이자, ‘가장 솔직한’ 삶이며, ‘가장 나다운’ 삶 그 자체입니다. 사실 솔직하게 영호, 그냥 답도 없는 답답한 2023년 솔로남의 자기 만족적 궁상처럼 보입니다.
 
영화 '싱글 인 서울'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물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표면적으론 참 멋집니다. SNS 시대에 딱 맞아 떨어지는 삶 그 자체입니다. 혼자 즐기는 고기집, 혼자 바라보는 거실 밖 휘황찬란한 야경. 그의 SNS에는 이런 이미지와 자기 허세의 끝판을 부리는 글이 도배돼 있습니다. 그는 돈 잘 버는 학원 논술 강사입니다. 하지만 가슴 속에선 작가를 꿈꾸는 욕망이 꿈틀댑니다.
 
영화 '싱글 인 서울'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이런 허세 가득한 영호의 잔잔하고 고요하고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 오늘과 다를 바 없는 내일의 삶에 돌멩이 하나가 던져집니다. 이름마저 작고 초라해 보이는 출판사 ‘동네북’의 출판 제안. 편집장 현진(임수정)은 ‘싱글 라이프 에세이’를 기획했고, 바르셀로나와 서울, 두 도시의 대표적 싱글 라이프 작가를 섭외해 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습니다. 문제는 섭외된 서울 작가가 갑작스럽게 하차하게 됐습니다. 싱글 라이프 찬양 작가가 임신을 했답니다. 웃음이 터질 만합니다. 출판사 편집회의에서 SNS 서칭 끝에 영호를 낙점했습니다.
 
영화 '싱글 인 서울'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동네북’ 제안에 시크한 느낌으로 만남의 장소에 나타난 영호. 알고 보니 이런 우연이. 영호와 현진. 대학 선후배 사이였습니다. 둘다 현재는 싱글, 영호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자신의 일에 철두철미한 프로의 냄새가 강한 남자. 하지만 현진은 직업적으로는 프로페셔널 할지 몰라도 일상에선 구멍투성이. 특히 연애에 대해선 서투르다 못해 극단적인 ‘금사빠’. 이른바 ‘플러팅’(추파 던지기) 늪에 빠지기 일쑤. 상대방의 예의를 자신에 대한 호감으로 착각만 합니다. 작가를 꿈꾸는 남자 영호의 눈에 삶 자체로 소설을 쓰는 현진의 허술함과 착각은 헛웃음만 자극합니다. 
 
영화 '싱글 인 서울'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이제 예상은 두 사람 관계에 쏠립니다. 까칠한 남자 영호, 그리고 조금은 허술해 보이는 하지만 사랑스러운 여자 현진. 두 남녀의 관계를 통해 이 영화의 장르 ‘로맨틱’이 펼쳐질 것을 예상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영화는 예상 밖으로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로맨틱’을 창조해 냅니다. ‘영호’의 까칠함. 그리고 그 배경을 통해 현진이 영호의 곁에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 그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 과정이 결코 극적이지도 또 드라마틱하지도 않습니다. 보는 관점도 시각 그리고 감성적측면에 따라선 무미하고 또 지극히 건조해 보입니다. 두 사람의 관계, 뜨겁지도 않고 사랑스럽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싱글 인 서울’의 묘미가 거기에 있습니다. 뭘 만들어서 이들 관계의 깊이를 그려주려 하지 않습니다. 연애, 그 감정의 본질 만을 건드립니다. 영호가 가진 마음의 벽이 무엇인지, 현진이 바라보는 ‘그것’은 무엇인지. 단지 그것만을 따라가다 보면 두 사람이 바라보는 한 곳이 등장합니다. 그걸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은 결국 자신의 가슴 속 어딘가에 자리했던, 있었는지 모를 연애 세포의 숨결이 되살아나고 그 숨결이 내뱉는 호흡에 따라 가슴이 두근거리는 뜀박질을 경험하게 됩니다.
 
영화 '싱글 인 서울'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싱글 인 서울’은 지극히 작위적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얘기의 핵심. ‘첫사랑’에 대한 기억입니다. 그래서 작위적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결단코 ‘작위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첫사랑’은 일종의 방아쇠일 뿐입니다. 딱 한 발자국일 뿐입니다. 그걸 내딛지 못하고 머무는 사람들의 감정이 이 영화에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싱글’이고 그래서 ‘서울’입니다. 거대 도시 ‘서울’에 사는 무미하고 건조한 모두의 삶에 사실은 뜨겁고 가슴 설레던 기억과 추억 하나씩은 모두 품고 있을 겁니다. ‘싱글 인 서울’은 지금 사랑하고, 과거에 사랑했고, 그래서 사랑했던. 하지만 지금은 혼자이지만 결코 혼자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머무는 모두의 자화상 같은 얘기입니다.
 
영화 '싱글 인 서울'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뜨거운 사랑이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뜨거워지는 사랑이 나오지도 않습니다. 뜨거운 키스신과 뜨거운 그 이상이 담겨 있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이 영화가 뜨거운 건, 아마 그것 때문일 듯합니다. 과거이든 지금이든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이든. 혼자도 좋지만 사실 둘도 괜찮다는. ‘싱글 인 서울’은 둘을 꿈꾸는 혼자만의 삶과 혼자만의 삶을 위해 둘이 되고 싶은 뜨거운 러브 라이프에 대한 보고서라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지금 당신이 혼자라면 그리고 지금 당신이 둘이라면. 이 영화는 따뜻하게 데워줄 연인의 손길입니다. 오는 29일 개봉.
 
영화 '싱글 인 서울'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P.S 동네북 출판사 멤버들. 출판사 대표 진표(장현성), 윤정(이미도), 병수(이상이), 예리(지이수), 진표의 아내이자 현진의 친구 경아(김지영). 이런 친구들과 동료가 있단 것만으로도 분명 삶이 조금은 윤택할 듯합니다. 더불어 홍 작가로 등장하는 배우 이솜, 그의 존재가 고맙고 행복하게 다가옵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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