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내가
tvN 드라마
‘무인도의 디바
’에 푹 빠져 있습니다
. 천상의 가창력을 가진 한 소녀 서목하
(박은빈
)가 무인도에 고립됐다 구출돼 원래 꿈이던 가수의 길을 향해가는 씩씩한 명랑 처녀 극복기입니다
. 하지만 저는 극중 목하의 성장보다 두 청소년의 아빠에게 눈길이 더 갑니다
. 서목하와 정기호
(문우진
)의 아빠
, 서목하와 정기호가 섬을 탈출하도록 만든 장본인인 둘은 서로의 존재를 모르지만 공통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 바로 가정폭력 가해자들입니다
. 그들은
‘부모
’란
‘위력
’으로 자녀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서슴치 않습니다
. 그러면서 자위합니다
. 사랑해서 잘 되라 그런 것이라고
.
가정 내 폭력과 자매애를 다룬 영화 ‘세자매’에서 가장 인상 깊던 장면은 ‘둘째 딸’역을 맡은 배우 문소리가 자식들에게 폭력을 가했던 하지만 이제는 늙은 아버지에게 “사과하세요!”라 소리치는 모습이었습니다. 사과해야죠. 사과해야 합니다. 하지만 어른은, 그 대상이 권력을 가진 자일수록 사과하지 않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 사회는 주변의 사사로운 폭력은 용납하지 않지만 권력을 가진 자의 폭력에 대해선 너무도 관대합니다.
드라마와 영화를 본 사람들은 서목하와 정기호의 아빠, ‘세자매’속 문소리의 아빠에게 분노합니다. 그들은 보잘 것 없는 권력을 가진 서민이기 때문입니다. 극중 ‘자영업자’ ‘말단 경찰’ ‘회개한 목회자’는 나름의 권력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 권력 결코 크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들을 향해 마음 놓고 분노의 감정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드라마 속 인물들에게 분노했던 모두가 현실의 폭력에 대해서도 분노하는 것은 아닙니다. 국가와 조직의 권력자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그 과정에서 타인에게 수많은 유무형의 폭력을 휘두르기 일쑤지만 아무도 그들에게 사과하라 외치지 않습니다. 권력을 가진 자의 폭력에 대해선 모두가 숨죽이고 받아들입니다. 오히려 그 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합니다.
권력이 ‘성공’이란 이름으로 포장돼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성공한 자가 성공하지 못한 자에게 휘두르는 폭력에 대해선 모두가 “그럴만하다”고 수긍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성공을 꿈꾸기 때문입니다. 나도 성공하면 언젠가 무소불위의 권력, 아니 폭력을 휘두르며 살아도 된다는 판타지에 빠져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공의 사다리 그 끝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은 한정돼 있습니다. 성공을 꿈꾸던 내가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성공이란 판타지에 속아 성공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폭력에 노출된 채 한평생 살아갈 대다수 사람들이 자신에게 저질러진 폭력을 애써 묵과한 채 일생을 살아갑니다. 분노하지 않고 사과하라 외치지도 않습니다.
물론 성공한 모든 이들이 폭력을 휘두르진 않습니다. 하지만 성공의 또 다른 이름인 ‘권력’이 ‘위력’이 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과정이 아닌 결과로만 평가하는 세상의 가치 판단 기준은 수시로 다양한 형태의 괴물을 만들어 냅니다.
이런 상황에선 감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해야 합니다. 사사로운 권력만이 아닌 큰 권력에 대해서도 그 안에 폭력이 내재된 건 아닌지 살펴야 합니다. 그래야 피해자가 피해자로 남지 않고 가해자는 더 큰 가해자가 되지 않습니다.
사회 변화는 한 두 사람의 힘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다수의 인식이 일정한 가치를 공유할 때 비로소 변화의 태동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 시작은 사과하는 것부터입니다. 사과를 요구하는 것부터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과하세요.
김재범 대중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