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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세상 모든 엄마와 딸의 ‘3일의 휴가’
하늘에서 3일의 휴가 받아 내려온 ‘죽은 엄마’ 그리고 남겨진 딸
입력 : 2023-11-29 오전 6:10:15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참 이상합니다. 부모님은 꼭 바쁘거나 기분이 나쁘거나 상황이 좋지 않을 때. 꼭 그럴 때 연락하고 전화를 하십니다. 그리고 꼭 그러십니다. 별다른 얘기 없습니다. 그저 시답지 않은 말씀만 늘어 놓으십니다. 그런 부모님 말씀에 자식들, 대부분 냉랭합니다. 장성한 자식들, 귀찮고 성가십니다. 이유,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렇습니다. 아마 그래서 그럴 것입니다. 아빠이기에 엄마이기에. 내 부모님이기에. 그래도 되는 것이라고. 그래도 이해 받을 수 있으니. 그래서 그런지 부모님은 서운해 하지도 않으십니다. 부모이기에, 그러신 겁니다. 이 모든 걸 알게 된 순간.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입니다. 사실 ‘그래도 되는 건’ 없습니다. 아니 ‘그러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돌아가신 부모님은 여전히 그곳에서도 자식 걱정만 합니다. 그래서 더 슬픕니다. 아니 더 화가 납니다. 도대체 우리 엄마와 우리 아빠는 왜 그러시는지. 왜 그래야만 하는지. 그 관심, 그 사랑이 숨막히고. 그래서 더 미웠고 그래서 더 화가 났었는데.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사랑. 우리 아빠와 엄마이기에 내가 받을 수 있는 ‘봄날의 햇살’이었다는 걸. 돌아가신 뒤에야 알게 됐습니다. 그때 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 말씀 드리지 못했을까. 왜 그때 엄마의 아빠의 시답지 않다 느낀 그 말이 세상 가장 따뜻한 말이란 걸 몰랐을까. 영화 ‘3일의 휴가’가 이걸 가르쳐 줍니다. 왜 그땐 몰랐는지, 왜 그땐 몰랐었는지. 돌아가신 엄마가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세상 누구보다 미웠던 엄마입니다. 세상 누구보다 성가시고 서먹했던 엄마입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엄마와의 기억은 내게 세상 가장 따뜻했던 추억입니다. 그 추억을 내게 안겨 준 엄마의 사랑. 고맙고 감사합니다.
 
 
 
영화 ‘3일의 휴가’는 세대를 아우르는 동화입니다. 죽은 엄마와 만날 수 있단 슬플(?) 것 같은 예감입니다. 하지만 세상 무엇보다 따뜻하고 세상 무엇보다 유쾌하고 세상 누구보다 함께 보고 싶은 사람이 생각날 그런 얘기입니다. 바로 엄마, 어떤 무엇으로도 설명이 불가능한 ‘엄마’에 대한 얘기입니다. 그리고 ‘딸’에 대한 얘기입니다.
 
영화 '3일의 휴가' 스틸. 사진=쇼박스
 
영화는 시작과 함께 죽은 복자(김해숙)가 등장합니다. 죽은 이들은 사흘간의 특별 휴가를 받아 지상으로 내려올 수 있답니다. 그 시간 동안 자신이 가장 보고 싶은 사람 곁에 머물며 좋은 추억을 쌓고 올 수 있답니다. 복자는 3년 전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습니다. 서먹했던 딸에게 이별 인사 조차 못하고 급하게 떠나왔습니다. 하늘나라 가이드(강기영)의 휴가 설명에 복자는 찰나의 고민도 없이 ‘딸을 보러 갈 것이다’ 전합니다. 딸 진주(신민아), 어릴 적부터 정말 공부를 잘해 지금은 미국 유명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미국 우크라(UCLA) 대학으로 가자”며 가이드에게 요청합니다. 하지만 진주는 현재 시골의 한 백반집 사장님. 이 백반집, 복자가 죽기 전까지 운영하던 곳.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 인가. 복자는 어안이 벙벙합니다. 마당에서 끓는 솥단지, 그리고 낡은 시골집 방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 진주입니다.
 
영화 '3일의 휴가' 스틸. 사진=쇼박스
 
복자는 울화통이 터집니다. 갖은 고생 다해 공부 시켜 미국 명문대학 교수를 만들어 놓은 딸이 자신이 운영하던 시골 촌구석 백반집 사장이 되겠다 와 있습니다. 도대체 뭔 일인지. 화가 나 참을 수 없습니다. 문제는 복자가 딸 진주에게 말을 걸 수도 만질 수도 없단 겁니다. 물론 진주도 엄마 복자를 볼 수도, 말을 들을 수도 없습니다. 이제 ‘3일의 휴가’가 시작됩니다.
 
영화 '3일의 휴가' 스틸. 사진=쇼박스
 
‘3일의 휴가’, 죽은 엄마와 남겨진 딸의 얘기입니다. 모녀 사이의 얘기, 국내 상업 영화 ‘전매특허’와도 같은 신파극 설정이 예감됩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3일의 휴가’, 그걸 노리고 흘러가지 않습니다. 뻔한 ‘신파 설정’ 없습니다. 오히려 까칠한 모녀 관계 그리고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영혼’ 설정을 이용한 유쾌함이 넘쳐납니다. 오히려 초반부터 중반 이후까진 심심할 정도로 모녀 서사는 일반적 엄마와 딸의 가깝지만 멀고, 멀지만 또 가까운 그런 관계를 그려 나갑니다. 단지 차이는 딱 하나입니다. ‘죽은 엄마’와 남겨진 딸이란 점.
 
영화 '3일의 휴가' 스틸. 사진=쇼박스
 
‘3일의 휴가’ 속 다른 점은 딸 진주의 서사입니다. 진주는 죽은 엄마를 미워합니다. 미워하는 것인 것 애증인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죽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 보단 미움이 더 커 보입니다. 그 이유가 하나 둘 풀어지면서 진주가 엄마의 시골집에 머무는 이유가 하나 둘 풀어져 나가기 시작합니다.
 
영화 '3일의 휴가' 스틸. 사진=쇼박스
 
실타래처럼 꼬인 모녀의 관계, 오해가 이해가 되는 과정. 예상하지 못했던 과정과 방법이 해법이 됩니다. 시골 백반집 사장님이던 엄마의 음식 솜씨, 엄마의 레시피가 딸과 죽은 엄마를 이어주는 감정의 동아줄입니다. 맛있게 잘 익은 묵은 김치와 투박하게 숟가락으로 숭덩숭덩 떠 넣은 ‘스팸 김치찌개’의 매콤하고 시원한 맛, 딸을 위해 들척지근한 무를 이용해 ‘소’를 만들어 개발한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던 엄마의 특제 만두, 직접 콩을 갈아 만든 뜨끈한 손두부와 김치 그리고 막걸리 한 잔. ‘3일의 휴가’는 서사가 흘러갈수록 등장하는 메뉴 레시피처럼 깊고 진해집니다.
 
영화 '3일의 휴가' 스틸. 사진=쇼박스
 
깊고 진해지는 엄마의 메뉴, 엄마의 레시피는 딸 진주의 마음입니다. 어릴 적 지독하게도 가난하게 살던 엄마와 딸, 가난 속에서도 딸에 대한 사랑만큼은 너무도 뜨겁고 순수했던 그 마음. 그 오롯한 마음에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살아간 엄마의 삶. 그 삶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 그리고 알 수 없는 분노가 뒤섞여 진주는 엄마를 원망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갑작스럽게 떠난 엄마. 진주는 엄마를 향한 미안함과 설명할 수 없는 분노가 소용돌이치면서 스스로에게 벌을 주고 있던 겁니다. 그저 ‘한 번’ 이었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엄마의 안부 전화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했던 것. 잔뜩 싸온 반찬을 들고 온 엄마에게 마음에도 없는 날 선 불만을 쏟아냈던 기억. 그럼에도 시골집 동네 친구들에게 여전히 딸 자랑만 하며 활짝 웃는 엄마의 속을 몰라줬던 자신의 못됨을.
 
영화 '3일의 휴가' 스틸. 사진=쇼박스
 
딸 진주의 진심을 알게 된 복자는 죽어서도 결국 엄마로서의 삶을 선택합니다. 딸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립니다.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그리고 다음 생에도 복자는 딸 진주를 위한 삶을 택합니다. 그리고 둘은 서로를 향한 진심을 전합니다. 고마웠다. 사랑한다. 그리고 괜찮다.
 
영화 '3일의 휴가' 스틸. 사진=쇼박스
 
‘3일의 휴가’는 엄마란 단어 하나만으로도 냉정을 찾기 힘든 먹먹함을 만들어 냅니다. 초반 눈물을 배제하고 유쾌함과 웃음과 건조한 시선으로 끌어가던 얘기는 결국 마지막 지점에서 모녀의 진심을 관객에게 전하며 얘기의 마무리를 전합니다.
 
영화 '3일의 휴가' 스틸. 사진=쇼박스
 
‘3일의 휴가’는 그렇습니다. 그래도 되는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된다고 합니다. 엄마이기에 그리고 딸이기에. 결국에는 서로가 다 알고 있다고. 가슴 아파하지 말고 슬퍼하지 말고. 지금을 행복하게 살아가라고. 엄마의 시선으로 그리고 딸의 시선으로. 서로를 향한 마음을 전합니다. 이 영화 속 복자와 진주. 영화를 보는 우리입니다. ‘3일의 휴가’는 그렇게 우리의 얘기를 전합니다. 개봉은 12월 6일.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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