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민우 기자] 한국 인구소멸 속도가 14세기 중세 유럽의 흑사병 창궐 때 보다 3배가량 빠르다는 비유까지 나오면서 인구소멸에 대한 심각성을 더하고 있습니다. 올해 말 한국 합계출산율이 사상 첫 0.6명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더해지면서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효과를 보지 못한 저출산 정책에 대한 조속한 물갈이가 필요하다는 조언을 내놓고 있습니다.
4일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의 인구감소에 대한 경고가 국내외에서 잇따르면서 위기감이 더욱 고조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통계청 집계를 보면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입니다. 출산율은 2017년까지 간신히 1명 이상을 유지해 왔지만, 2018년 0.98명으로 1명 밑으로 추락했습니다. 이후 2019년 0.92명, 2020년 0.84명, 2021년 0.81명 등 매년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출산율 고작 0.7…연말 '첫 0.6명대'
올해 3분기(7~9월) 출산율은 0.7명으로 지난해 평균 대비 0.08명 더 추락했습니다. 통상 연말로 갈수록 출생아 수가 감소하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4분기에는 출산율이 처음으로 0.6명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한국 출산율은 OECD 꼴찌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계은행(World Bank) 통계를 보면, 2021년 기준 인구 1000명당 새로 태어난 사람의 비율을 의미하는 조출생률(Crude Birth Rate)은 5.1명 수준입니다.
이는 OECD 회원국은 평균인 11명보다 2배 이상 낮은 수치입니다. 세계은행이 집계하는 266개 국가 중에서는 홍콩(5명) 다음으로 낮았습니다.
4일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의 인구감소에 대한 경고가 국내외에서 잇따르면서 위기감이 더욱 고조되고 있는 분위기다. 자료는 OECD 회원국 조출생률. (그래픽=뉴스토마토)
"저출산 인구감소, 흑사병 능가…북한, 남침 가능성도"
미국 뉴욕타임즈(NYT)에서는 한국의 합계출산율에 따른 인구 소멸을 14세기 중세 유럽의 흑사병 창궐에 빗대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로스 다우서트(Ross Douthat) 칼럼리스트는 '한국은 소멸하는가(Is South Korea Disappearing)'라는 제목의 칼럼을 내고 "한국은 선진국들이 안고 있는 인구감소 문제에 있어 두드러진 사례연구 대상국"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다우서트는 "0.7 수준의 출산율을 유지하는 국가는 한 세대를 구성하는 200명이 다음 세대에 70명으로 줄어들게 된다"며 "이 같은 인구감소는 14세기 흑사병이 유럽에 몰고 온 인구감소를 능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14세기 중세 유럽에서 흑사병으로 인한 정확한 사망 통계는 집계되지 않았지만, 학계에서는 인구 10명 중 5~6명이 흑사병으로 사망한 지역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감소한 인구로만 보면 4억5000만명에서 14세기를 거치며 3억5000만명 수준으로 1억명 가량 인구가 줄었습니다.
흑사병으로 한 세기 동안 인구는 22.2% 줄었습니다. 그러나 다우서트가 설명한 인구 감소 시나리오에 따르면 한국은 현재 출산율이 유지될 경우 한 세대가 지나면 인구의 65%가 줄어들게 됩니다. 흑사병 대비 3배가량 빠른 인구감소가 나타나는 셈입니다.
다우서트는 "추가로 한 세대가 더 교체되는 실험을 수행하면 원래 200명이었던 인구는 25명 밑으로 떨어지고, 한 세대가 더 교체되면 스티븐 킹 소설 '스탠드'에 나오는 가상의 슈퍼독감으로 인한 급속한 인구 붕괴 수준이 된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의 남침 가능성도 제기했습니다. 그는 "현재 합계출산율 1.8 명인 북한이 어느 시점에서 남침을 선택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다만, 그는 "이처럼 낮은 한국의 출산율이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언급했습니다.
4일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의 인구감소에 대한 경고가 국내외에서 잇따르면서 위기감이 더욱 고조되고 있는 분위기다. 사진은 신생아실 모습. (사진=뉴시스)
"다양성 법적보호 준비해야"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출산율만 봐서는 안 된다. 장기화한 저출산 문제는 출산 가능 여성 수도 줄여왔기 때문"이라며 "절대적으로 줄어드는 출생아 수에 집중하면, 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을 수 있다. 정책 물갈이가 절실하다"고 말했습니다.
조동근 교수는 "현재 저출산에는 사회문화적 요인이 크다고 본다"며 "앞으로는 동거와 결혼이 크게 차이가 없는 쪽으로 문화가 바뀌어갈 것으로 보인다. 사실혼을 존중하는 등 법률적 보호 방안을 미리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그는 "한국은 결혼·육아를 위해 필요한 조건을 다 갖추고 결혼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한데, 이를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것"이라며 "현재 청년들이 가족을 꾸리는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인식조사 등을 통해 면밀히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피력했습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흑사병은 감염병으로 인구가 사망한 사태였기 때문에 저출산과 비교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타당한 비유는 아니다"면서도 "그러나 이 같은 비유는 인구 감소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한 의미를 가진다"고 말했습니다.
성 교수는 "단순히 사람 수를 늘린다는 식으로 저출산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결국 경제가 성장하면 출산율이 감소하는 것을 일부 받아들일 필요도 있다"고 부연했습니다.
그러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인구가 너무 급격히 줄고 있다는 것"이라며 "현재는 보육 시기 여성들의 경력단절 문제가 가장 부각된다. 일과 가정을 병립하는 정책이 가장 시급해 보인다"고 강조했습니다.
4일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의 인구감소에 대한 경고가 국내외에서 잇따르면서 위기감이 더욱 고조되고 있는 분위기다. 사진은 여성 취업박람회 모습. (사진=뉴시스)
세종=이민우 기자 lmw383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