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크게 작게 작게 메일
페이스북 트윗터
(인터뷰)‘노량: 죽음의 바다’ 정재영 “실제 ‘진린’, 장군님보다 ‘형’”
“중국말 대사, 그저 기계적으로 외워···중국 드라마 보고 또 봤다”
입력 : 2023-12-21 오전 7:00:23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강한 인상’, 지금까지 배우 정재영을 머리 속에 그리면 떠올려지는 이미지와 설명. 우선 데뷔 초기, 장진 감독 페르소나에 버금가는 존재감으로 활동해 왔습니다. 특유의 강한 인상, 하지만 장진 감독과 함께 한 데뷔 초반 필모그래피 탓에 코미디에 대한 감각이 남달랐습니다. 이른바 센 캐배우로 활동하면서도 반대로 특유의 페이소스가 짙은 코미디 장르에서 유명세를 떨쳐 왔습니다. ‘정재영이란 배우의 이름. 최소한 우리가 너무도 흔하게 들어서 그 값어치의 무게를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를 믿고 보는 배우가 된 것입니다. 그런 정재영에게 어떤 감독이 출연 제안을 했습니다. 일단 정재영이 필요하다고 하니 센 캐인 것만은 확실해 보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센 캐가 맞습니다. 그런데 그 감독이 누구이고 그 감독이 출연한 작품이 무엇인지. 그게 중요했습니다. 데뷔 27년차 베테랑 정재영. 국내 11000만 영화 실미도에도 출연했었습니다. 웬만한 베테랑 스타급 감독과의 작업은 그에겐 특별한 사건도 아니었습니다. 일단 그에게 출연을 제안했던 감독. 김한민입니다. 정재영은 살짝 놀랐답니다. “‘명량한산: 용의 출현을 만든 그 김한민이?”라고 말이죠. 그런데 진짜 놀란 건 따로 있었습니다. 김한민 감독이 앞서 만든 두 편의 이순신 장군 영화, ‘명량한산: 용의 출현’. 가만 생각해 보니 김한민 감독이 이순신 장군 영화 3부작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란 게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의 손에 온 것은 노량: 죽음의 바다시나리오. 정재영은 그 어떤 조건과 고민도 없이 출연을 결정했습니다. 단순하게 이순신 장군영화, 그리고 김한민 감독에 대한 관심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랬습니다.
 
배우 정재영. 사진=(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롯데엔터테인먼트
 
정재영이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 맡은 배역은 당시 명나라 장군이자 조선과 명나라 연합 수군 함대의 총사령관 진린입니다. 예전 드라마에서도 노량해전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은 꽤 있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명나라 장수들도 드라마란 특성에 따라서 한국어로 연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이제는 국내 작품이라고 해도 리얼리티를 위해 각 나라 언어로 연기를 합니다. 정재영은 당연히 중국어, 무엇보다 명나라 시절의 언어인 고어를 사용해 대사를 외웠습니다.
 
이 엄청난 작품의 출연 제안이 왔으니 거절하는 건 정말 말도 안된다 생각했죠. 근데 배역이 진린이란 명나라 장군이에요. 일단 전 이 배역에 대한 레퍼런스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어요. 명나라 말? 현장에서 중국어 선생님에게 들었는데, 우리가 쓰는 사극 속 어투보다 더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쉽게 설명하면 사자성어로만 이뤄진 대화체에요. 한국말로 해도 배역 설정과 만들어 가는 과정 때문에 제대로 될까 말까 인데, 이건 중국어 그것도 옛날 중국어이니 참나(웃음).”
 
배우 정재영. 사진=(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롯데엔터테인먼트
 
정재영은 태어나서 가장 열심히 공부를 해본 기간이 이번 영화 작업 과정이다고 할 정도였답니다. 일단 외웠답니다. 그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정재영은 외국어라고는 단 한 마디도 할 줄 모른답니다. 그런데 153분 러닝타임의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 대사량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진린을 연기해야 하니 문자 그대로 눈이 뒤집힐 정도였답니다. 지금도 중국말만 들어도 머리가 깨질 듯하다고 합니다.
 
우선 중국말 할 줄 몰라요(웃음). 누가 그 정도 대사량이라면 중국말도 좀 배웠겠다하는데, 이건 그냥 기계적으로 외우는 거라 말을 배우는 것과는 전혀 달랐어요. 그래도 어설프게 하고 싶진 않았어요. 외국인이 한국말을 하면 아무리 잘해도 뭔가 좀 어색하잖아요. 그런 느낌이 나는 게 싫어서 정말 중국 드라마 특히 삼국지를 보고 또 봤어요. 촬영 대 여섯 달 전부터는 중국어 선생님으로부터 개인 교습도 받고, 대사 녹음한 걸 거의 수시로 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머리에 쥐가 날 것 같네요(웃음).”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스틸. 사진=(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롯데엔터테인먼트
 
진린사실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 보기에 따라선 악역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는 이미 전세가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 쪽으로 넘어온 임진왜란 그리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철군 명령에 왜로 돌아가는 왜군들에게 길을 터주고 전쟁을 마무리하며 취할 것을 계산하는 실리주의를 주장하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이순신에 대한 존경심도 드러내는 묘한 이중성을 드러냅니다. 정재영의 생각은 이랬습니다.
 
이순신 장군님이나 조선군 입장에선 진린이 훼방꾼 같은 느낌일 수 있었을 거에요. 명나라 황제의 명을 대신해서 전쟁에 참여한 진린 입장에선 현실적인 것을 택할 수 밖에 없었겠죠. 명나라 군사들도 보호해야 하고. 근데 여전히 그럼에도 이순신 장군님에게 노야’(어르신)란 칭호로 부르는 모습을 보면 어떤 존경과 동질감이 있다고 할까요. 같이 전쟁터에서 평생을 살아온 인물로서 이순신 장군의 고뇌와 어려움이 느껴졌을 거에요. 참고로 실제 역사에선 진린이 장군님보다 2살 위입니다(웃음).”
 
배우 정재영. 사진=(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롯데엔터테인먼트
 
노량: 죽음의 바다속 백미는 몇 번을 되짚고 꼬집어 봐도 러닝타임 가운데 100분 동안 이어지는 해상 전투 장면일 것입니다. 무려 1000척에 가까운 조선과 왜 그리고 명나라 3국의 전함이 뒤엉킨 노량 앞바다. 이 속에서 정재영은 명나라 함대를 이끄는 사령관이었습니다. 후반 이후에는 칼을 들고 왜군과 백병전을 벌이는 액션까지 소화했습니다. 수십킬로그램이 넘는 갑옷과 투구를 입고 칼을 휘두르는 액션, 정말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찍은 분량의 10분의 1도 안 나온 것 같아요. 그나마 제가 신기전촬영 때 칼을 들어본 경험이 있어서 죽을 만큼 힘들지는 않았는데 그럼에도 토할 정도로 힘들긴 했어요. 해상 액션은 이미 알려진 대로 땅 위에서 찍은 건데, 기술이 진짜 대단한 것 같아요. CG로 만들어 진 바다 위 풍경을 만들기 위해 800명 정도가 투입됐다고 들었는데. 정말 사실감은 최고더라고요. 하하하.”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스틸. 사진=(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롯데엔터테인먼트
 
정재영에겐 가장 고민스럽고 힘든 장면이 바로 우리가 다 알고 있고 역사가 스포일러인 그 장면. 이순신 장군 최후의 순간이었습니다. 영화에선 이순신 장군의 최후를 알리는 장면이 바로 정재영이 연기한 진린의 절규로 그려졌습니다. 이 장면을 연기한 정재영은 자신도 당연히 알고 있지만 이순신 장군이 살아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고 합니다. 그 장면은 순수하게 진심이 전달되기를 바랐답니다.
 
그 장면의 비밀을 알려드리면 전 윤석이 형이 연기한 이순신 장군의 최후를 보지 못했어요. 제가 그 장면에서 보고 연기한 건 카메라였을 뿐이죠(웃음). 그런데 뭘까요. 그 장면에서 저는 명나라 사람인 진린도 아니고 조선 사람도 아니고 배우 정재영도 아니었어요. 그냥 제가 명나라 말로 전하지만 한국 사람이 한국말로 장군님의 죽음을 전하는 순간이 관객 분들에게 오롯이 감정적으로 전달이 됐으면 했어요. 그것만큼은 정말 순수하게 진심이었어요. 배우가 아닌 사람으로서.”
 
배우 정재영. 사진=(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롯데엔터테인먼트
 
그는 배우 인생에서 그리고 자신의 삶 속에서 너무도 큰 산 하나를 넘어 버린 것 같다며 후련하다는 느낌이랍니다. ‘진린이란 캐릭터가 마음에 들어서도, ‘노량: 죽음의 바다가 마음에 들어서도, 김한민 감독에 대한 함께 하고픈 배우적 욕심에서도. 그 어떤 것에서도 이 작품에 출연을 결정한 이유는 없었답니다. 단지 한국영화사에 뚜렷한 족적으로 남겨 될 이 작품에 자신이 함께 했었다는 영광을 누려 보고 싶다는 생각에 조금의 고민도 없이 선택을 했고 그 선택에 가슴이 뜨거워 지는 경험을 했다고 행복해 했습니다.
 
당분간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국내에서 나올 수 있을까요. 절대 나올 수 없을 겁니다. 저 스스로가 이런 거대한 프로젝트에 함께 했다는 의미와 이런 작품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탤 수 있었단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죠. 저 스스로의 만족감과 기대감? 정말 크죠. 물론 저 스스로의 연기에 대해선 여전히 불안해요. 지금도 저로 인해 이 작품에 누가 되지만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혹시 장군님이 꿈에 나타나지 않으실까 싶은데. 하하하.”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김재범 기자
SNS 계정 : 메일 페이스북


- 경제전문 멀티미디어 뉴스통신 뉴스토마토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