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외국인들이 처음 한국에 오면 가장 놀라는 것 중 하나가 서울에 빽빽하게 들어선 대규모 아파트 단지라고 합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는 보통 천편일률적인 모습을 한 대단지는 도시 외곽이나 빈민가에 위치하고, 대부분 영구임대라고 하죠. 미국에서도 뉴욕 등 주요 대도시의 초호화 아파트를 제외하고는 대단지 아파트는 우리나라에서처럼 흔하게 볼 수 있는 주거 형태가 아닙니다. 여러 사회·문화적 배경을 차치하더라도 해당 경관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히 있습니다.
일전에 로마에 여행 갔을 때 판테온 근처에 있는 숙소에 묵은 적이 있습니다. 근방의 건물도 대개가 평균 100년 가까이 된 터라 역사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문화적 자산에 가까워 보였는데요. 들어가니 오래된 세월을 방증하듯 엘리베이터도 협소하고, 수동이라 좀 생소했습니다. 그래도 내부는 리모델링을 잘해놓아 큰 불편함은 없었습니다. 외관은 유지하고 필요한 부분을 바꾸는 것이 그네들의 정서라고 합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부수고 짓지 못해 안달이 난 것 같습니다. 최근 정부가 30년 넘은 아파트에 대해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발표했죠. 아파트 공화국인 한국에서 재건축은 개인과 건설업자들이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분담금도 만만찮고 원주민들이 쫓겨나는 일도 비일비재하죠. 또 멀쩡한 아파트를 부수고 짓는 것도 얼마나 자원 낭비일까요.
공급자 중심의 정책으로선 '아파트 공화국' 탈출은 요원합니다. 사람마다 지향하는 삶의 방식과 주거 형태도 더 다양해질 겁니다. 1인 가구가 30%가 넘어가는 현 시점에서 84㎡가 국민평수라는 것은 옛말이 될지도 모르죠. 건설사에서 좋아하지 않을 말이겠지만 우선 100년 동안 살 수 있는 건물을 지으면 됩니다. 이미 우리나라 건축기술은 최고 수준이라던데 의지만 있다면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겠죠. 다양한 주택 형태에 대한 고려도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비용 낭비도 막고 건축을 삶의 흔적이 배있는 역사이자 문화재로 남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홍연 기자 hongyeon1224@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