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 (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북한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남북 관계에 위험한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해 12월에 남북관계가 "동족 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며 '대남 노선의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천명한 데 이어. 지난 15일 대한민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이라 규정하면서 "공화국(북)의 민족역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제거해 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같은 '대남 노선의 근본적인 방향 전환' 내용을 헌법에 넣으라고도 지시했습니다.
북한의 국가정체성 변경 천명
한 마디로, 통일이 국가성립의 기본전제였던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 정체성을 바꾸겠다는 겁니다. 외적으로는 '하나의 조선', 내적으로는 '두 개의 조선'이라는 김일성-김정일 선대의 전략에서 벗어나 내외 모두에서 '두 국가' 전략으로 바꾸고, 남북관계도 완전히 단절하겠다는 공식 천명입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50년간 이뤄진 남북 간 합의가 무위로 돌아갔다“며 김대중 대통령이 살아와서 다시 햇볕정책을 추진해도 북한이 호응해 오지 않을 것 같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만큼 이번 김 총비서의 천명은 남북관계사를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근본적입니다.
김 총비서는 "헌법에 있는 《북반부》,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이라는 표현들이 이제는 삭제돼야 한다"고도 했는데, 이 대목들은 약 50년 전 남북 정권이 분단 이후 처음 만든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의 고갱이인데요. 그의 지시는 7·4 성명 이후 온갖 부침 속에서도, 남북한이 어쨌든 같은 민족으로서 평화통일을 지향해야 한다고 전제해 온 그 기본 틀을 이제 부정하겠다는 겁니다.
북, 남북 간 '특수 관계'론도 부정
남북은 7·4 공동성명의 정신 아래 1991년 12월에 남북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로 규정한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했습니다. 이에 앞서 같은 해 9월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해 국제적으론 한반도내 두 개의 국가로 공인됐지만, 이 역시도 남북한은 '내적으로는 특수관계'라는 틀 안에 있는 것이었고 이는 현재까지 남북이 모두 인정해 온 화해·협력의 기본규범이 됐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면 집권한 이명박 대통령조차 이 합의를 남북 간 가장 중요한 합의라고 평가할 정도로 남한 보수세력도 인정했습니다. 이제 북한은 남북은 국가관계라며 이 '특수 관계'론도 부정한 겁니다.
김 총비서는 왜 이런 결정을 해야 했을까요? 우선 방어적 성격이 강합니다. 남북관계사 전체를 보면 힘이 강한 쪽이 통일을 강조했습니다. 북한 국력이 앞섰던 1970년대 초까지는 북한이 통일을 강조했고 상대적으로 남한은 수세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남한의 국력이 북한을 앞서기 시작하자 통일을 강조하면서 대북교섭에 나서기 시작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3년에 6.23선언(평화통일 외교정책에 관한 특별선언)을 하고 나선 것도 이런 배경이 깔려있습니다.
왜 하필 지금일까요? 이전 어느 남한 보수 정부와도 다르게 미일 (준)동맹을 노골화하고 최고지도자가 전면에서 직접 "북한은 주적"이라고 하는 윤석열정부 때가 국내외적 명분에 적합한 시기라고 봤을 겁니다.
북한이 9·19 남북군사합의로 파괴하거나 철수한 비무장지대(DMZ) 내 최전방 감시초소(GP) 복원 작업에 들어간 가운데 지난 12월 28일 경기도 연천군 DMZ에서 남측 GP(오른쪽)와 북측 GP가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 격변의 상황에서 단기적으로 '우발 충돌을 막기 위한 상황 관리' 외에 당장 다른 대안을 찾기 쉽지 않습니다.
'남북관계 특수관계론'은 독일에서 배워온 겁니다. 1972년에 동서독 정부가 기본조약을 체결하자 이 조약이 통일의 사명을 적시한 '서독 기본법'을 위반했다며 위헌소송이 제기됐습니다. 이에 대해 서독 연방헌법재판소는 이 조약이 "성질상 국제법적 조약이나 내용상 내적 관계"라고 판결합니다. 현실적으로 동독의 정치적 실체를 인정하면서도 국제법적 국가 승인은 배제해, 동서독 관계가 특수 관계라고 못 박은 겁니다.
독일의 통일 과정은 우리에게 여러 통찰을 주었습니다. 지금 북한의 행태는 과거 동독의 대서독 정책과 유사합니다. 동독 즉 독일민주공화국은 1949년 제정 헌법 1조에서 "독일은 불가분의 민주공화국이다"라고 규정, 동독과 전체로서의 독일이 동일하다는 '1민족-1국가'론을 채택합니다.
그러다 발터 울브리히트 초대 동독사회주의통일당(SED) 서기장이 1957년에 '1민족-2국가' 노선으로 바꾸면서 국가연합안을 제안합니다. 이어 1968년에 헌법을 개정해 "양 독일국가의 정상관계 수립과 공동협력 유지는 독일민주주의 공화국의 국가적 과업이다. 독일민주주의공화국과 그 시민은 …통일이 이룩되도록 노력한다"는 조항을 추가합니다.
서독, 통일 때까지 동방정책 기조 아래 특수관계론 유지
그러나 1969년 집권한 서독 빌리 브란트 총리가 '같은 민족'이라는 개념 아래 '동방정책'을 펼치면서 동서독 관계가 심화되고 체제 위기감이 커지는 상황이 되자, 에리히 호네커 동독 SED 2대 서기장은 1971년 당 8차 전당대회에서 동독과 서독은 물과 불의 관계라며 '통일 불가'를 선언합니다. 1974년에는 헌법을 개정해 기존 1968년 헌법의 '통일 조항'과 민족국가 용어를 삭제하고 이어 1976년 당대회에서는 당 강령에서도 통일 조항을 빼면서 동독에는 사회주의 민족, 서독에는 자본주의 민족이 존재한다는 '2민족 2국가 노선'을 선언하기에 이릅니다. 최근 북한 김정은 총비서의 민족-통일 폐기 발언 과정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서독도 초기인 1955년 할슈타인 원칙으로 동독의 국가성을 부정했습니다. 그러다 브란트 총리 집권기인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으로 이를 폐기했고, 이후 '특수 관계'론을 줄곧 유지했습니다. 호네커 서기장 시절의 통일조항 삭제와 '2민족-2국가'론 시기에도 마찬가지였고, 그 이후 상황은 우리가 다 아는 바입니다.
물론 동서독은 한국전과 같은 전쟁을 겪지 않았고 핵 문제도 없다는 점에서 한반도와 차이가 있죠. 그럼에도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분명합니다. 특수관계론을 기반으로 한 과정으로서의 통일론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겁니다. 헌법 3조(영토조항), 4조(평화통일)를 바꾸기 전까지는 피할 수 없는 의무이기도 합니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