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심수진 기자] 정부가 개인투자자들의 희망사항을 다수 반영한 자본시장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부터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납입한도 및 세제혜택 범위 확대, 상법 개정까지 두루 담았습니다. 투자자들은 정부 발표에 환영했지만 현실화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이 나옵니다. 대부분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인데다 이해당사자의 의견이 맞서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총선을 앞두고 표심 공략을 위해 선심성 정책을 쏟아낸 것 아니냐는 지적입니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전일 정부가 내놓은 금융정책 방안에 대해 국내 투자자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17일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공매도 금지 △대주주 양도세 완화 △금투세 폐지 △상법 개정 등이 담긴 대책을 공개했는데요.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을 해소하고 자본시장 역할을 강화한다는 취지입니다.
우선 불공정거래에 대한 사전감시와 사후제재를 강화하고, 다음달에는 금투세 폐지, ISA 비과세한도 및 납입한도 상향, 국내투자형 ISA 신설 대책을 시행하겠단 방침입니다. 앞서 시행을 2년 미뤄둔 금투세 도입은 폐지하겠다는 입장입다. 금투세 폐지를 요구했던 개인투자자들은 크게 환영하는 분위깁니다. 증권거래세의 경우 예정된대로 2025년 0.15%까지 인하합니다
정부가 폐지를 못박은 금투세는 총선을 앞두고 뜨거운 감자가 될 전망입니다. 금투세는 국내 주식·펀드 등 금융투자로 거둔 양도차익(이익+손실)이 5000만원을 넘을 경우 그 초과분에 20%(3억원 초과 시 25%)의 세금을 부과하는 내용입니다. 민주당이 전 정부에서 금투세를 신설했고, 지난해 2년 유예하기로 합의해 오는 2025년에 시행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법 시행을 1년 앞두고 윤 대통령이 증시 개장식에 참석해 금투세 폐지 계획을 밝혔고, 이날 발표된 금융정책에 이 내용이 담긴 겁니다.
금투세 폐지는 소득세법을 개정해야 가능해 국회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가 관건입니다. 정부가 여야 합의를 깨고 금투세 폐지를 결정한 만큼 야당의 동의를 얻기가 쉽지는 않을 전망입니다.
야당 입장에서도 총선을 앞두고 개인투자자 다수가 원하는 사안을 정면으로 반대하기도 난감한 상황입니다. 기획재정부는 이르면 이달 말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입니다. 정정훈 기재부 세제실장은 지난 16일 열린 사전브리핑에서 "총선 전인 2월에 국회가 열리면 그 때 처리될 수 있길 기대한다"라며 "국회 여야 기획재정위 의원들에게 필요성과 시급함을 설명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상생의 금융, 기회의 사다리 확대' 주제로 열린 네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부는 연내 상법 개정도 추진한다는 방침입니다. 소액주주 권익 보호를 위해 이사가 회사의 사업기회를 유용하지 못하도록 이사의 손해배상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현재 국회에는 이용우 민주당 의원과 박주민 의원이 이사 충실 의무의 대상을 각각 '주주의 비례적 이익과 회사', '회사와 총주주'로 바꾸는 내용을 담아 발의한 법안이 계류돼 있는데요. 정부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의 비례적 이익'으로 확대하는 것에는 선을 그었습니다. 충실의무 조항에 주주를 포함하거나 이 조항을 정비하는 것만으로는 주주 보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김봉진 법무부 상사법무과장은 "국민들께 실질적으로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이 필요하다"라며 "소액주주들이 생업을 종사하는 중에도 주주총회에 참여할 수 있는 전자주총 도입, 쪼개기 상장 방지를 위한 물적분할제도 개선 등을 추진하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ISA 세제혜택도 확대합니다. 납입한도는 현행 대비 두 배 확대해 연간 4000만원, 총 2억원으로 올리고, 배당·이자소득 비과세한도 또한 일반형, 우대형에 각각 200만원, 400만원인 기준을 400만원, 1000만원으로 2.5배 확대합니다.
문제는 금투세 폐지와 증권거래세 인하 등에 따른 세수 감소입니다. 대주주 주식 양도세 완화에 이어 금투세 폐지 등이 시행되면 연간 조단위의 세금이 덜 걷히게 됩니다. 정부는 금투세 폐지로 연간 세수가 약 1조5000억원, ISA 지원 강화로 2000억~3000억원 규모의 세수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또 앞서 국회예산정책처는 증권거래세를 0.15% 수준으로 낮출 경우 연간 2조원, 2027년까지 약 10조원의 세입이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이미 지난해 세수 결손 규모가 약 60조원에 달하는데 줄어들 항목이 더 늘어난 것입니다.
이날 대통령실은 감세 정책으로 인한 세수 부족 우려에 대해 경제 왜곡을 불러왔던 규제를 줄이는 쪽에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습니다. 동일한 형태의 자본 투자에 대한 세금이 다중적이라는 설명입니다.
총선을 3개월여 앞두고 감세 중심의 정책들이 쏟아져 표심 공략을 위한 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발표한 정책 대부분이 법 개정이 필요한데 당장 야당의 반발이 예상되고, 총선 이후로 잡힌 일정들은 과연 관련법이 제정 및 개정될 수 있을지,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른다는 우려가 큽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총선을 앞둔 시점에 개인투자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적인 레토릭에 불과하다"라며 "맹목적 부자감세로 역대급 세수펑크를 자초한 정부가 새해에도 이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심수진 기자 lmwssj0728@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