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열 신임 외교부 장관이 지난 23일 가미카와 요코 일본 외무상과 첫 통화를 하고 한일관계 개선 흐름을 강화하기 위한 협력 필요성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취임한 지 20일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한중 외교 장관 사이 통화는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반면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26~27일(현지시간) 태국 방콕에서 중국의 외교 사령탑인 왕이 외교부장(중국 공산당 정치국원)을 만나 대북 문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행사를 촉구했는데요. 중국의 외교 우선순위에서 한국이 뒷전으로 밀린 듯한 모습이 연출되면서 한중 관계의 현주소가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대선 앞둔 바이든 '안정적 상황 관리'
지난 27일 미국 정부 고위 당국자는 설리번 보좌관과 왕이 부장이 총 이틀간 12시간에 걸친 마라톤회담을 갖고 북한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회담에서는 우크라이나와 중동, 남중국해, 대만 문제 등도 의제로 올랐습니다.
그는 "최근 북한의 무기 테스트와 북러 관계 증진, 그리고 그것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의도에 대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깊이 우려한다"면서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감안해 우리는 이런 우려를 중국에 직접 제기했으며, 양측 대표 간에 이런 대화가 계속되길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왕 부장은 "올해는 중미 수교 45주년"이라며 "이견을 돌출시킬 것이 아니라 구동존이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상대의 핵심 이익을 해치지 말고 실질적으로 존중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미 당국자에 따르면 설리번 보좌관은 "중국은 분명 대북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그들이 그 영향력을 (북한) 비핵화의 경로로 우리를 복귀시키는 데 사용하길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오는 11월 5일 미국 대선을 앞두고 중국에 '건설적 역할'을 요구하면서 상황 관리 국면에 들어간 겁니다.
두 사람은 양국 군당국 간 소통 재개를 포함해 지난해 11월 미중 정상회담 이후 관계 진전 상황을 평가하며 올해 봄 정상간 통화를 예고하기도 했습니다.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과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26~27일(현지시간) 태국 방콕에서 회담을 진행하기에 앞서 악수를 나누는 모습. 양측은 이틀간 12시간 이상 북한, 대만 등 다양한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사진=뉴시스)
돌파구 못 찾는 '한중 소통'
문제는 미국과 중국이 구체적으로 소통하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 정부는 한중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지난 10일 취임한 직후 카운터파트너인 각국 외교 수장과 상견례를 겸한 전화 통화를 가졌습니다. 취임 첫날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첫 통화를 가진 이후 가미카와 요코 일본 외무상, 페니 웡 호주 외교장관 등과 차례로 통화했습니다. 그런데 왕 부장과는 "상호 편리한 시기를 조율 중"이라고만 밝혔을 뿐입니다.
왕 부장은 조 장관 취임 직후 축하 전문을 보냈지만 박진 전 장관이 취임 나흘 만에 통화한 것을 비교했을 때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관련해 중국 관영매체인 환구시보는 "한중 간 외교 소통이 어렵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했습니다.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는 <뉴스토마토> 통화에서 이같은 상황이 '대만 문제'에 대한 윤석열정부의 입장이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이 교수는 "지난해 윤 대통령 방미 전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대만 문제를 언급한 것을 계기로 한중 간 갈등이 격화됐다"며 "우리 정부가 대만 문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표명해야 관계가 정상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지난해 4월 윤 대통령은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대만해협 일대 긴장에 대해 "결국 이런 긴장은 힘에 의한 변경 시도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우린 국제사회와 함께 이런 변경을 전적으로 반대한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11월에도 윤 대통령은 영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한 '텔레그래프' 인터뷰에서 뜬금없이 "한국 정부는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남중국해에서의 규칙에 기반을 둔 해양질서 확립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영국 방문과는 전혀 관계없는 내용이었습니다.
이후 중국 당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무시한 것으로 간주하며 윤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듯한 비판을 내놨습니다.
한미일 협력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중국이 한국과 소통하기 보다는 미국과의 소통을 선택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는데요. 이 교수는 "중국 입장에서 볼 때 한국과 소통해서 희망적 방향을 만들 수 있는 내용이 없다"며 "지난 2018년 남북관계 진전이 있었던 당시처럼 북한과 대화를 진행하는 등의 상황을 마련해야 미중 사이에 외교 공간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